1/02/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1: 아프리카를 향해: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라 2
나는 젊은 에드워드 킹 특파원과 같은 호텔에 묵었다. 킹은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꽤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이 일을 알게 된다면 자랑삼아 신문사에 떠벌일 사람이었다. 젊은 베넷 편집장의 계획과 내 임무에 관여하게 됐다고. 여행의 결과가 어떨지 그와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었지만, 과감히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수행할 임무에 대한 중압감으로 괴로워도 태연하게 수에즈 운하에 가는 척해야 했다. 젊은 킹이 마르세유 행 고속열차를 타러 가는 길에 역까지 배웅을 나와 우리는 역에서 헤어졌다. ‘킹이 곧 볼스 열람실에서 내가 중앙아프리카로 간다는 기사를 볼 텐데…… 누가 알아? 못 볼 수도 있지.’
중앙아프리카로 가기 전에 한 일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나일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갔다. 필레Philae 섬에서 베이커 탐험대 수석 엔지니어인 히긴보탐을 만났다. 내 역할은 그와 어떤 미친 프랑스 청년 사이에서 그들의 결투를 막는 것이었다. 프랑스 청년은 권총을 가지고 히긴보탐과 싸우려 했다. 왜냐하면, 페즈[이슬람 국가에서 남자들이 쓰는 모자의 일종]를 써서 이집트인처럼 보이자는 히긴보탐의 의견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워런 대위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공병 하사의 안내를 받아 여러 구덩이 가운데 한 곳에 들어가서, 솔로몬 사원의 초석 위에 티레Tyre 장인이 남긴 흔적을 보았다. 이스탄불에서 미국 총영사와 변리공사와 함께 스탐불Stamboul에 있는 이슬람 사원들을 돌아보았다. 영국 역사가 킹레이크Kinglake의 위대한 책을 끼고 다니며 크림 반도의 옛 전쟁터들을 둘러보았다. 오데사에서 리프란디 장군 미망인과 만찬을 했다. 트레비존드Trevizond에서 팔그라브라는 아라비아 여행자를 보았고, 티플리스Tiflis에서는 코카서스 지역의 민정장관 바론 니콜라이를 만났다. 테헤란에 있는 동안 러시아 대사와 함께 살았고, 페르시아를 지나가는 내내 인도-유럽 텔레그래프 회사에서 일하는 신사들에게 최고의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많은 저명한 사람을 본받아 페르세폴리스의 한 유적에 내 이름을 써서 남겨두었다. 1870년 8월 나는 인도에 도착했다.
10월12일 봄베이에서 ‘폴리’라는 이름의 바크[barque: 돛대가 세 개인 이상인 범선]형 범선을 타고 모리셔스 섬으로 향했다. 폴리는 느린 배라서 모리셔스에 도착하는 데 37일이 걸렸다. 배에는 스코틀랜드 레이트Leith 출신 윌리엄 로렌스 파쿼가 일등 항해사로 타고 있었는데 뛰어난 항해사였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를 고용했다. 임금은 바가모요를 향해 잔지바르 섬에서 떠나는 날부터 지급하기로 했다. 모리셔스에서 직접 잔지바르로 가는 방법이 없어서 세이셸 군도로 가는 배를 탔다. 세이셸 군도에서 가장 큰 마에섬에 도착한 지 삼사일 만에 운 좋게 나와 윌리엄, 아랍 청년 등 세 명의 통행권을 모두 받았다. 아랍 청년은 예루살렘 출신인데, 원래 잔지바르로 가는 어떤 고래잡이 미국 배에서 통역으로 일 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1871년 1월 6일에 잔지바르 섬의 한 항구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내 여정을 대략 소개했다. 독자들이 별로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많이 여행했지만, 이 책은 오직 위대한 아프리카 여행자 리빙스턴을 찾는 과정을 서술하기 위한 것이다. 고백하건대 이 여행은 저널리즘의 한 속성인 ‘이카로스의 비행’과도 같이 무모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시도를 ‘돈키호테적’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이제 난 그런 말을 반박할 수 있다. 독자들도 이 책의 ‘끝’에 도달하기 전에 무모한 시도가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병사’라는 단어를 이 책에서 사용한다. 동아프리카로 떠나는 여행자들은 잔지바르에서 무장 호위대를 고용하여 동행하고, 이 호위대는 자유로운 흑인이나 잔지바르 원주민, 또는 내륙의 해방된 노예들로 구성된다. 그들은 스스로 ‘아스카리askari’라고 칭하는데, 이 단어는 인도어로 ‘병사’란 뜻이다. 실제 병사처럼 무기와 장비를 갖추지만 그들은 하인임을 자처한다. 나 또한 하인이라고 생각하면서 ‘병사’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가식적인 태도임에도, 내가 그들을 하인이라는 뜻인 ‘와투마watuma’라 부르지 않고 ‘병사’라고 부른 것은 그저 고치기 힘든 버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병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점에 대해 용서를 빈다.
한편 지금 나는 내가 직접 경험한 모험과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고, 리빙스턴 박사를 만나기 전까지 가장 큰 관심사는 나 자신과 내가 한 행군들과 그 과정에 내가 맞닥뜨린 문제, 내 생각, 내 느낌 등이리라 생각한다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앞으로 때때로 ‘내 탐험’이나 ‘내 카라반’ 등 ‘나’를 강조해 쓰더라도 결코 내 소유와 권리라는 뜻은 아니다. 이 탐험은 ‘뉴욕 헤럴드의 탐험’이고, 나는 뉴욕 헤럴드의 소유주인 베넷 편집장에게 월급을 받는 고용인으로서 그의 명령으로 이 일을 맡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한마디 덧붙이면 나는 리빙스턴 박사를 찾는 과정을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그런 편이 일기 형식보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여행자들이 여행기에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실수로 받는 비난 또한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