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가니카 호수 북쪽 해변 탐험/ 호수로 들어가는 루시지강의 발견/ 우지지로 귀환
내가 왕립지리학회에서 배운 지식으로 인해 백나일강의 위치를 오해했고, 그래서 루시지Rusizi강의 방향을 확인하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했음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설을 분명하게 부정한다. 진실은 우리는 그곳에 닿으려 최선을 다했고, 그리고 실패했다는 것이다.”
버튼의 『잔지바르』에서
“[나일강의] 한 지류인 루시지강에 대한 원주민들의 보편적 증언이 그 강이 진정으로 그 호수[탄가니카] 밖으로 흐른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가장 결정적인 주장이다.”
스피크
“그러므로 나는, 더 분명한 실제 관찰에 의한 증거가 그렇지 않다고 밝힐 때까지, 탄가니카 호수에 대해 나일강의 최남단 저수지가 되는 영예의 승인을 요구한다.”
핀들리Findlay[Alexander George Findlay; 영국 지리학자, 수로학자], 왕립지리학회R.G.S.
우리가 탄가니카 호수의 북쪽 해변을 방문하기로 결심했지만, 지지족Wajiji 대원들의 말도 안 되는 요구와 그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루시지강에 대한 의문을 풀지 않은 채 어쩔 수 없이 우니아니엠베Unyanyembe로 돌아갔다면, 우리는 고향에서 환영인사 대신 모두 낄낄거리고 수군대는 조롱을 받았어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버튼 대령은 지지족과 어리석은 야만인 추장 칸네나Kannena를 고용했다가 결국 의문을 풀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실패는 지리적 난제의 답을 찾을 때, 그런 사람들에게 지원을 받으며 예상되는 부정적 측면에 대해 우리를 경각시켰다. 우리는 함께 갈 충분히 훌륭한 선원들이 있었고, 그들은 완전히 우리 명령하에 있었다. 카누 한 대만 빌릴 수 있으면 모두 잘 되리라 생각했다.
사이드 빈 마지드에게 카누를 빌려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즉시 그의 카누를 필요하다면 어떤 용도로 써도 좋다고 너그럽게 허락했다. 각각 2도티씩 주고 두 명의 지지족 안내원을 고용하고 나서 우리는 우지지 항구에서 출발하는 항해를 준비했다. 우지지에 도착한 지 일주일 남짓 지났을 때였다.
나는 박사와 내가 함께한 탄가니카 호수 북쪽 절반과 루시지강 탐험이 어땠는지 이미 정식으로 발표했다. 그 탐험에 대해 이미 매우 많이 회자되고 쓰여졌다.
이 일을 착수하기 전에 리빙스턴 박사는 형편이 정말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경로를 택해야 할지 마음을 확실히 정하지 못했다. 그의 하인으로는 수시Susi, 츄마흐Chumah, 하모이다흐Hamoydah, 가드너Gardner, 할리마흐Halimah, 요리사이자 하모이다흐의 부인 등이 있었고, 내가 리빙스턴의 편지를 주인에게 직접 전하라고 해서 우니아니엠베에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라온 카이프-할레크Kaif-Halek가 추가되었다.
리빙스턴 박사는 이 몇 안 되는 대원들과 저능한 셰리프에게 약탈당한 창고에 남은 얼마 안 되는 테이블보 천과 구슬을 가지고 어디로 행군할 수 있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만일 리빙스턴 박사의 건강이 좋았다면, 평소 같은 강건함과 불굴의 정신을 지닌 상태였다면 즉시 답이 나왔을 것이다. 그는 사이드 빈 마지드에게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그를 우니아니엠베와 해안으로 데리고 가기에 충분한 만큼의 천을 빌렸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우니아니엠베이 있다고 하는 물건을 기다려야 했을 텐데, 그러면 기다리고 기다리며, 희망 고문을 당하며, 매일 전쟁이 끝나기를 희망하며, 매주 물건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길 바라며, 얼마나 오랫동안 어쩔 수 없이 우지지에 앉아 있어야 했을까? 그의 약한 몸이 피할 수 없는, 계속되는 좌절을 얼마나 오랫동안 견뎌냈을지 누가 알까?
여행가로서의 리빙스턴 박사의 방대한 경험을 당연히 존중하고 따라야 하겠지만, 나는 과감히 다음과 같은 방안들을 그에게 제안했다. 그는 그들 중 어느 것이든 채택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집에 가서 그가 너무나 누릴 자격이 있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그는 휴식이 매우 필요해 보였다.
두 번째는 우니아니엠베로 가서 그의 물건을 받아, 마니우에마Manyuema든 루아Rua든 어디로든 여행할 수 있도록 길잡이들을 충분히 구해 나일강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 안에 대해 박사는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세 번째는 우니아니엠베로 가서 그의 카라반을 접수하고 대원들을 모집해서, 무안자Muanza로 가거나 아니면 내 보트들을 타고 우케레웨Ukerewe 또는 빅토리아 은’이안자Victoria N'Yanza를 가로질러 우간다Uganda에 있는 음테사Mtesa의 궁전까지 가서 사무엘 베이커Samuel Baker 경에 합류하려는 시도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에 나는 내 보트들을 건조해야 하지만, 미람보와 보통 카라반 길을 택해 우간다까지 간다면 그에게 엄청난 조공을 요구할, 우수이Usui의 스와루루Swaruru를 비껴서 갈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음테사Mtesa의 땅에서 우니오로Unyoro의 왕인 캄라시Kamrasi의 땅까지 가면, 그곳에서 곤도코로Gondokoro에서 큰 규모의 탐험대를 거느리고 있다고 알려진 그 위대한 백인 사무엘 베이커에 대해 당연히 듣게 될 것이다.
네 번째는 우니아니엠베로 가서 자신의 카라반을 접수하고, 대원들을 모아 우지지로 돌아와서, 우구흐하의 길을 따라 다시 마니우에마로 가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루안다Ruanda를 통과해서 루시지Rusizi강을 따라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타라Itara, 우니오로Unyoro를 지나 베이커에게 가는 것이다.
어떤 방안이든, 그가 어떤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하든, 나와 내 대원들은 호위대로서, 짐꾼으로서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그를 도울 것이다. 만일 그가 집에 가는 것을 선택한다 해도 나는 그를 호위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가 원할 때만 여행하고, 그가 명령할 때만 캠핑하는 등 내가 그의 명령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그에게 알렸다.
여섯 번째. 내가 제안한 마지막 방안은 우니아니엠베까지 가는 길에 내가 그를 호위하도록 허락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물건을 받을 수 있고, 나는 최고급 천과 구슬, 총과 화약, 조리 도구, 의류, 보트, 텐트 등등 많은 물품을 인도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편안한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그동안 나는 해안으로 서둘러 가서 오륙십 명의 믿을 만하고 잘 무장된 대원들로 구성된 새로운 탐험대를 조직해서 그들을 통해 육체적 편리함을 제공하는 호사스런 생필품 등을 추가로 보낼 수 있었다.
오랜 고심 끝에 그는 마지막 안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비록 박사는 매우 많은 어려움과 불안과 수백 마일에 달하는 고된 행군의 원인을 제공했던 잔지바르에 있는 그의 대리인의 이해할 수 없는 무관심을 주저하지 않고 지적했어도, 마지막 안이 가장 실현 가능하고 최선으로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