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6: 고별사 2
그날 밤 나는 한 소년에게 그 위대한 여행자가 커크 박사와 오스웰 리빙스턴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들려 영국 영사관으로 파견했다.
나는 미국과 독일 사람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그들은 리빙스턴 박사가 자신들의 가깝고 소중한 친척이었더라도 더 따뜻한 마음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H. A. 프레이저 대위와 제임스 크리스티 박사도 칭찬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두 신사는 자신들의 동포를 구하기 위해 사적으로 탐험대를 파견하려 했었고,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포기했던 것 같다. 그들은 이 칭송할만한 목표를 위해 500달러의 목돈을 기부했으나 그들이 그 돈을 재량껏 쓰라고 맡겼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다른 목적으로 더 많은 돈을 받고 고용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자신들이 하려던 일을 수행한 것에 대해 불쾌하게 여기기는커녕 내 가장 열렬한 칭송자가 되었다.
다음날 나는 커크 박사의 호출을 받았다. 그는 따뜻하게 내 성공을 축하해주었다. 토저Tozer 주교도 와서 내가 리빙스턴 박사에게 주었던 도움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이날 나는 또한 내 부하들을 해고하고, 그중 20명을 그 ‘위대한 주인’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다시 고용했다. 봄베이는, 비록 내륙에서 돈으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비웃는 듯 했고 내가 제일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조직적으로 모든 방법으로 나를 좌절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임금에 추가로 50달러를 선물로 더 받았다. 그리고 다른 대원들도 각자의 장점에 따라 20에서 50달러씩을 더 받았다. 이 날은 나쁜 감정들을 모두 묻고, 모든 가해 행위들을 용서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엾은 그들은 그들의 본성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우지지에서부터 해안까지 그들이 모두 훌륭하게 행동했다고 기억하기로 했다.
나는 전신 거울에 나를 비춰보고 나서야 내가 끔찍하게 야위고 변한 것을 알았다. 모두 내가 외관상 훨씬 더 늙었고, 머리가 세었다는 내 생각을 확인해주었다. 프레이저 대위는 인사를 건네자, “당신은 저를 아시나 봅니다, 선생!”이라고 말했고, 내가 이름을 말하기 전에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었다. 그는 심지어 이름을 말하고 나서도 또 다른 티크본Tichborne 사건[Tichborne case]이 벌어진 줄 알았다고 농담을 했다. 나는 심지어 1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즉 1871년 3월 23일부터 1872년 5월 7일까지 내 정체성마저 거의 잃을 정도로 그렇게 달라졌던 것이다.
헨 중위는 내가 온 다음날 아침에 정식으로 사임했고, 그 탐험대는 그 시간부터 미스터 오스웰 리빙스턴에게 맡겨졌다. 그는 그의 아버지에게 유용할 것만 남겨두고 다른 비품들을 팔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 탐험대를 해산하고 리빙스턴 박사의 요청에 따라 다른 탐험대를 준비하는 일에 착수했다. 나는 영국 탐험대에게 부족한 것을 미스터 오스웰 리빙스턴이 융통해 마련한 돈으로 샀다. 총기 50정 또한 모두 그에 의해 영국 탐험대의 비품들로 마련됐다. 그리고 탄약, 고고족에게 조공으로 줄 홍가 천, 그리고 탐험대의 식량을 위한 천 등도 그가 마련한 비용으로 준비됐다. 미스터 리빙스턴은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고, 그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나를 도왔다. 그는 1872년, 1873년, 1874년을 위한 항해력들과 전에 리빙스턴 박사의 것이었던 크로노미터를 내게 보내 짐을 꾸리도록 했다. 일기장 한 권, 편지 봉투들, 공책들, 편지지, 약, 과일과 생선 통조림, 약간의 와인과 차, 커틀러리, 식기류, 신문, 친서들, 특별 화물 등과 함께 모든 것이 공기가 통하지 않는 양철 상자들에 담겨 꾸려졌다. 또한 고급 미제 밀가루 100파운드와 소다 비스킷도 몇 상자도 함께 싸였다.
미스터 오스웰 리빙스턴이 그의 아버지의 카라반을 맡게 될 것이라는 것이 5월 19일 이전에 암묵적으로 양해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에 그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가 적절하고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들 때문에 우니아니엠베로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통지서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니아니엠베까지 카라반을 맡아줄 훌륭하고 유능한 리더를 구하는 것에 있어서 내 의무는 리빙스턴 박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었다.
몇 시간 안에 나는 셰이크흐 하쉬드Sheikh Hashid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아랍인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그를 100달러를 미리 주고 고용했다. 그 젊은 아랍 청년은, 비록 출중하게 똑똑하지는 않아도, 정직하고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니아니엠베에 도착 후 그의 고용을 연장할지에 대해서는 리빙스턴 박사에게 맡겨두었다. 그때쯤 되면 그가 상당히 믿을 만한지 박사가 판단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새로운 리빙스턴 탐험대의 대원들을 모두 모았고, 그들이 도시 주변을 배회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나는 50개의 모든 영혼이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대답할 때까지 그들을 한 안마당에 가두어두고 그곳에서 그들을 먹였다.
그러는 동안, 미국 영사의 도움으로 미국 영사관의 우두머리 통역관인 조하리Johari의 도움을 얻었다. 그에게 킨가니강의 범람한 평원을 가로지르는 동안 탐험대의 행동을 통제하라고 맡겼다. 그리고 그들이 킨가니Kingani강의 서쪽 강둑에서 행군을 시작하기 전에는 무슨 이유로든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미스터 오스웰 리빙스턴은 일을 철저히 하겠다는 약속에 대한 대가로 조하리에게 넉넉하게 팁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