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3: 탄가니카 호수 탐험 7
우지지를 떠난 지 아홉 번째 날 아침, 동트기 약 두 시간 전에 우리는 무게레Mugere강의 넓은 삼각주를 지났다. 무캄바에 의해 통치되는 동쪽 해안 구역도 이 강의 이름을 따서 무게레라 불린다. 그 강의 세 어귀 중에서 가장 남쪽 어귀의 맞은편에서 물 색깔의 상당한 차이를 발견했다. 강의 어귀로부터 동쪽에서 서쪽으로 거의 직선으로 형성된 선이 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잘 구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남쪽 물은 밝은 초록색이고 깨끗했고, 북쪽 물은 흙탕물이고 북쪽으로 흐르는 흐름이 뚜렷하게 보였다. 첫 어귀를 지나 곧 둘째 어귀에 다다랐고, 그러고 나서 셋째 어귀에 다다랐다. 모두 넓이는 이삼 야드 정도였지만 모두 어귀를 지나 북쪽으로 물길을 따라 몇 로드rod[길이의 단위] 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물을 방출하고 있었다.
무게라강의 셋째 어귀 위로 깊이 휘어진 부분이 보였고 그 강가 너머에 여러 마을이 있었다. 그곳에 무캄바 추장의 구역이 있었고, 그 마을들 중 한 곳에 그가 살았다. 원주민들은 지금까지 백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우리는 상륙하자마자 큰 군중에 휩싸였다. 모두 긴 창으로 무장을 했다. 그것은 곤봉과 손도끼를 제외하고 군중 속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무기였다.
우리는 한 오두막으로 안내되었다. 박사와 나는 그 오두막을 공유했다. 그날 뒤이어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열병의 공격을 받아서 기억이 희미하다. 우니아니엠베를 떠난 후로 처음이었다. 무캄바가 몇 살쯤 됐을지 짐작해보려 했던 것, 그가 잘 생겼고, 게다가 우리에게 우호적이었다는 것 정도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극심한 고통으로 의식이 혼미한 시간 동안 나는 리빙스턴의 형체가 내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또는 보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의 손이 부드럽게 내 뜨거운 이마와 사지를 쓰다듬는 것을 느꼈다, 또는 느꼈다고 생각한다. 나는 바가모요에서 우니아니엠베까지 가며 여러 번 열병을 앓았었다. 하지만 길고 심한 두통과 몸살을 덜어주는, 또는 병들고 외로운 여행자의 침대를 필연적으로 포위했었을 깜깜하고 음울한 전망을 밝혀주는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세 달 동안 열병에 대해 면역을 누린 후에 걸린 이번 열병은 평소보다 더 심했지만, 나는 열병에 다시 걸린 것이 유감스럽지 않았다. 지금 내가 동반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훌륭한 사람의 매우 부드럽고 아버지 같은 친절을 받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열병에서 조금 회복되어 무캄바가 소, 양, 염소를 한 마리씩 선물로 가져와서 루시지강과 호수의 꼭대기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다. 늘 명랑하고 열의가 넘치는 그 음그와나도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그는 추장이 그를 통해 우리에게 루시지강이 호수 “안으로” 흘러든다는 말을 전하는데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호수의 북쪽 끝에서 수상으로는 이틀 걸리고, 육상으로는 하루의 거리에 있는 지점에서 루안다Ruanda or Luanda강이 루시지강에 합류한단다.
그래서 그 강이 호수 밖으로 카라그와흐Karagwah를 향해 흘러나간다는 단호하고 반복된 확신들에 의해 다소 고양됐던 우리의 희망은 빠르게 올라갔던 것만큼 빠르게 무너졌다.
우리는 무캄바에게 9도티의 천, 9푼도의 삼삼samsam, 룬그히오lunghio, 무주리오 은’지게muzurio n'zige를 홍가로 주었다. 우니아니엠베에 엄청 많이 있는 날염 손수건들이 있었다면 이곳에서 매우 잘 나갔을 것 같다. 그의 선물을 받고 나서, 추장은 18세가량의 자신의 아들을 장차 박사의 아들이 될 것이라며 박사에게 소개해주었다. 그러나 박사는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그런 관계를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런 일은 그로부터 더 많은 천을 끌어낼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무캄바는 박사의 뜻을 좋게 받아들였고, 계속 고집하지 않았다.
무캄바의 구역에서 둘째 날 밤에 박사의 하인 수시는 추장이 후하게 선물로 준 폼베pombe를 마시고 아주 제대로 취했다. 새벽녘에 날카로운 철썩 소리가 여러 번 들려 잠을 깼고, 계속 들어보니 우리 오두막에서 나는 소리였고, 박사가 내는 소리였다. 자정 무렵 박사는 누군가 그의 침대로 와서 그의 옆에 눕는 것을 느꼈고 그게 나라고 생각하며 친절하게 공간을 내주고 침대 가장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아침에 추워 잠을 깨서 팔꿈치에 기대 그와 동침한 사람이 누구인지 보니, 놀랍게도 다름아닌 흑인 하인 수시였고, 그가 박사의 담요들을 매우 이기적으로 돌돌 말고 침대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다. 박사는 그의 특징인 온화함으로 회초리를 드는 대신 “일어나지 않을래, 수시야? 네가 내 침대에 있다. 아이고, 나리, 그렇게 마시지 말라고 했거늘 어쩌다 이렇게 술이 취했습니까? 일어나거라. 일어나지 않을래? 이래도 일어나지 않을래, 이래도, 이래도.”라며 수시의 등을 찰싹찰싹 때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전히 수시는 꿍얼거리며 깨지 않았고, 그래서 찰싹거림도 수시의 두꺼운 피부가 느낄 때까지 계속됐다. 그는 결국 완전히 깨서 정신을 차렸고 심지어 그의 주인의 침대를 침범할 정도로 자신이 주인에 대한 헌신과 공감이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작은 주인’이라 불렸는데, 수시는 그 ‘작은 주인’ 앞에서 자신의 도덕적 결함이 충격적으로 폭로되자 매우 풀이 죽어 보였다.
다음날 해질 무렵 배에 올라 노를 저였다. 무캄바는 우리에게 작별을 고하러 와서, 호수의 꼭대기에 있는 그의 형제 루힌가Ruhinga의 땅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카누를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자마자 와루마샤니아가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 그동안 자신의 방어를 돕도록 우리 대원 두 명을 총과 함께 남겨달라고 했다. 9시간 만에 우리는 호수의 북쪽 끝에 도착했는데, 무캄바의 형 루힌가의 지역인 무기헤와Mugihewa에 속한 곳이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되돌아보고, 우리는 동서로 일직선으로 횡단하는 대신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대각선으로 횡단했다는 것을 알았다. 달리 표현하면, 동쪽 해변의 가장 북쪽 끝에서 최소한 10마일은 떨어져있는 무게레Mugere에서 서쪽 해안의 가장 북쪽 끝에 있는 무기헤와로 온 것이다. 우리가 동쪽 해안을 따라 계속 갔다면, 그리고 그렇게 호수의 북쪽 해변을 돌았다면, 우리는 와루마샤니아의 지역인 무카니기Mukanigi와 그의 동맹이자 친구인 심베흐Simveh의 우숨부라Usumbura 옆을 지났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대각선으로 항해했기에 곤란을 겪지 않고 호수의 가장 꼭대기에 도착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