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2: 잔지바르에서 1




[Zanzibar: 아프리카 대륙 동쪽 해안에서 25~50km 떨어져 있는 섬. 현재는 탄자니아의 자치령]



1871년 1월 6일 아침, 우리는 아프리카 대륙과 풍요로운 잔지바르 섬 사이에 있는 해협을 따라 항해하고 있었다. 잔지바르 섬은 왼쪽으로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날이 밝아오면서 겹겹의 안개 장막 사이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던 섬이 마침내 선명히 시야에 들어왔다. 세상의 보석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만큼 아름다웠다. 지형이 낮아 보였지만, 그렇다고 평평하지는 않았다. 뜨거운 햇볕을 피할 그늘을 드리워줄 것 같은 코코넛 나무들이 섬 둘레에 늘어 서 있었다. 나무줄기 끝에 달린 잎들은 맥없이 늘어져 있지만 우아했다. 하늘로 솟아오른 코코넛 나무 꼭대기 너머로 들쑥날쑥 완만한 구릉 지대가 보였다. 그리고 움푹한 곳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눈에 띄었다. 초록빛 파도가 쉬지 않고 철썩거리며 밀려드는 좁은 모래사장을 빼면 그 섬은 두툼한 초록 양탄자로 덮여 있는 것 같았다.

움푹 들어간 해안에는 다우 배[dhow: 삼각형의 큰 돛을 단 아랍의 배]가 여러 척 있었다. 바람에 잔뜩 부푼 돛을 세우고 잔지바르만으로 빠르게 들어가고 나왔다. 남쪽 수평선 위로 대형 선박 여러 척의 돛대가 나타났고 그 배들 동쪽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평평한 지붕의 하얀 집들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잔지바르 시였다. 섬의 수도인 잔지바르 시는 아랍 건축의 특징을 모두 지녔으며, 상당히 크고 조밀한 도시로 빠르게 변모했다. 만 주변 해안에 늘어선 저택들 꼭대기에는 잔지바르 술탄 Seyd Burghash [Barghash bin Said와 동일 인물]의 핏빛 붉은 깃발과 미국, 영국, 북독일연합North German Confederation, 프랑스 등의 영사관 깃발이 펄럭였다. 항구에는 13척의 대형 선박이 있었는데, 잔지바르 군함 4척과 ‘님페’라는 이름의 영국 군함 1척, 미국 상선 2척, 프랑스 상선 1척, 포르투갈 상선 1척, 영국 상선 2척, 독일 상선 2척이었다. 이 밖에도 많은 다우 배가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코모로 제도Comoro Islands의 요하나Johanna섬과 마요테Mayotte섬에서 왔고, 일부는 무스카트Muscat와 쿠치Cutch에서 왔다. 인도, 페르시아만, 잔지바르 사이를 다니는 무역선들이었다.

잔지바르 미국 영사는 미국 해군 대령 출신인 Francis R. Webb였다. 영사는 나를 극진히 환대했다. 영사가 필요한 도움을 제때 주지 않았다면, 집주인 이름을 딴 ‘찰리의 집’이라는 곳에서 숙식하는 신세로 전락할 뻔했다. 그 숙소 주인은 너그러운 영혼인 척하며 돈 한 푼 없는 부랑자들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평판이 꽤나 좋지 않았다. 소탈한 외모 뒤에 숨겨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혹은 이 열대 섬 모래사장에 미국 군용 텐트를 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 또한 바람직한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마침 웨브 영사가 자신의 넓고 편안한 집을 내 집처럼 마음껏 사용하라 청했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주저 말고 요청하라 덧붙였다. 영사의 시의적절한 제안으로 못마땅한 선택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게 됐다.

잔지바르에서 지낸 지 하루 만에 아프리카 사람과 문화 전반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Burton과 Speke가 쓴 아프리카 탐험기를 탐독했기 때문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의 성격, 중요성, 규모 등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이를테면 책 속 정보를 바탕으로 했던 추측은 한마디로 터무니없었다. 아프리카의 매력에 대한 환상은 곧 연기처럼 사라졌다. 즐거움에 대한 기대는 희미해졌고, 언뜻언뜻 스친 생각의 단편들이 섞이고 뭉쳐서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도시 여기저기를 거닐었다. 이른바 ‘깨끗한 구역’에서는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과 하얗게 칠한 집들, 회반죽으로 포장된 거리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반얀 [Banyan: 인도양 무역을 하던 인도 상인] 구역’이라 칭한 곳에서는 거리 양쪽에 깊이 쑥 들어간 후미진 곳들이 있었고 그 안에 붉은 터번을 두른 반얀 상인들이 있었다. 그들 뒤로 조잡한 면직물과 복제화, 옥양목, 가정용 리넨 제품 등이 쌓여 있었다. 또한, 발 디딜 틈 없이 상아가 가득한 바닥들, 씨를 빼지 않은 목화가 엉성하게 쌓여 있는 어두운 구석들, 도기, 못, 겉만 번지르르한 모조품, 연장 등을 파는 상점들이 있었다.

‘니그로 구역’에서는 거리에서 매우 강한 냄새가 났다. 사실 엄청난 악취였다. 형편없이 허름한 오두막 문 앞에 앉아 땀을 줄줄 흘리며 수다 떨고, 웃고, 흥정하고, 누군가를 야단쳤다. 악취는 열기을 뿜어대는 누렇고 검은 몸뚱이와 양털 같이 엉겨 붙은 머리에서 나는 냄새였고, 동물 가죽과 타르, 오물, 채소 쓰레기 등 함께 섞인 냄새이기도 했다.

높고 튼튼해 보이는 집들이 나란히 서 있는 거리도 있었다. 지붕은 평평했고, 조각된 육중한 현관문에는 놋쇠로 만든 노커knocker가 달려있었다. 하인들은 다리를 꼬고 앉아 주인님의 어두운 현관을 지키고 있었다.

바닷가의 작고 얕은 만에는 다우 배, 카누, 보트 등 배가 몇 척 있었다. 조금 전 파도가 밀려 나가며 드러난 갯벌에 옆으로 누워있는 기이하게 생긴 증기 예인선도 한두 척 있었다.

‘코코넛 나무 한 그루’라는 뜻의 ‘M’Nazi-Moya’라는 곳도 있었다. 이곳에 사는 유럽인들은 저녁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그곳에 갔다. 날이 저물고 이글거리는 태양이 서쪽으로 지는 동안 바다에서 미끄러지듯 불어 드는 달콤한 공기를 쐬기 위해서였다.

죽은 선원의 무덤도 몇 개 있었다. 그들은 이 섬에 발을 내디딘 죄의 대가로 목숨을 지불했다. 중앙아프리카에 선교사로 파견된 성공회 주교 토저Tozer 박사가 사는 높은 집과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세운 학교도 있었다.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머릿속에서 서로 얽히고설켜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잠을 자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을 절대 구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프리카인과 아랍인을, 반얀과 아프리카인을, 힌디Hindi와 반얀을, 유럽인과 힌디를 절대 구별하지 못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