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2: 우지지에서의 대화: 리빙스턴의 탐험과 고난과 상심 9



룬다 또는 론다Londa의 지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카젬베가 다스리는 구역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을 때, 박사는 참베지Chambeze라고 불리는 강을 건넜었다. 그런데 그 강은 상당히 중요한 강이었다. 이름이 남쪽에 있는, 영원히 그의 이름과 연관될, 크고 아름다운 강과 비슷해서 리빙스턴을 오해하게 만들었고, 따라서 그는 참베지강이 마땅히 받아야 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강은 잠베지Zambezi강의 수원일 뿐이고, 그러니 결과적으로 이집트에 있는, 그가 찾고 있는, 그 강의 수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잘못은 포르투갈 정보의 정확성을 전적으로 믿은 탓이었다. 그는 이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수 개월 동안 지루한 노동이 수반되는 여행을 해야 했다.

카젬베의 땅에 도착했던 1867년 초부터 우지지에 도착했던 1869년 3월 중순까지 그는 포르투갈 여행자들의 오류와 오보를 정정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참베지강에 대한 이야기에서 예외 없이 ‘우리만의 잠베지’라고 했다. 즉, 모잠비크Mozambique의 포르투갈 영토를 통과해 흐르는 잠베지강이란 뜻이었다. 그들은 “니아사에서 카젬베로 갈 때, 우리만의 잠베지강을 건널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직접 말로도 듣고 그들의 책과 지도에서도 본 단정적이고 반복적인 정보는 당연히 혼동을 일으켰다. 박사는 자신이 본 것과 그들의 설명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정보가 정확하기를 바라는 진실한 바램으로, 그리고 그 자신도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으로 전에 여행했던 지역을 다시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심란한 사람의 영혼처럼 복잡한 수계water system의 여러 하천에서 물이 공급되는 여러 지역들을 반복해서 횡단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질문을 멈춰야 할 것 같은 순간까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그 남자는 미쳤어. 그의 머리 속에는 물에 대한 생각 밖에 없어!”라고 말을 할 것 같을 순간까지 반복해서 새로운 부족을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룬다와 룬다 인근 지역에서 수행된 박사의 반복된 고생스러운 여행은 보람이 있었다. 몇 가지 이론을 의심할 여지 없이 입증했다. 우선 참베지강은 포르투갈의 잠베지강과는 완전히 다른 강이라는 것을 밝혔다. 두 번째로 남위 약 11도에서 시작한 참베지강은 다름아닌 위대한 나일강으로 흘러 드는 가장 남쪽 지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유명한 강의 길이는 2천 마일이 넘는 것이고,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긴 미시시피강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잠베지강의 진짜 원래 이름은 돔바지Dombazi이다. 라세르다Lacerda 박사와 그의 포르투갈 후계자들이 카젬베에게 와서 참베지강을 건너고, 강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들은 매우 당연하게 ‘우리만의 잠베지’라고 썼고, 더 이상의 조사도 없이 그 강이 잠베지강 방향으로 흐르는 것으로 지도에 그려 넣었던 것이다.

박사는 발견 대상이 풍부한 그 지역을 연구하는 동안, 카젬베의 북동쪽에 있는 호수를 탐험했다. 원주민들은 그 호수를 리엠바Liemba라고 불렀는데, 리엠바는 호수의 동쪽과 남쪽이 경계가 되는 지역의 이름이다. 그는 호수의 북쪽 가장자리를 추적하다, 그 호수가 다름아닌 탄가니카 호수이거나 탄가니카 호수의 남동쪽 끝이라는 것을 알았다. 박사의 지도에서 이 호수는 이탈리아의 윤곽과 매우 비슷해 보인다. 이 엄청난 규모의 물의 남쪽 끝의 위도는 남위 약 8도 42분이다. 모양은 남북으로 길고, 길이는 365 지리 마일geographical mile [적도에서 경도 1분까지의 거리. 약 1,854미터]에 달한다. 탄가니카 호수의 남쪽 끝에서 그는 마룬구Marungu를 가로질러 모에로Moero 호수가 보이는 곳으로 갔다. 길이가 60마일에 달하는 이 호수의 남쪽 수원까지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걸으며 그는 남쪽에서 호수로 흘러 드는 루아풀라Luapula라고 불리는 강을 발견했다. 루아풀라강을 따라 남쪽으로 가며 그는 그 강이 반그웨올로Bangweolo 호수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호수는 표면적으로는 탄가니카 호수의 크기와 비슷했다. 그는 반그웨올로 호수로 흘러 드는 하천을 찾기 위해 탐험하며 그때까지 발견한 하천들 중에서 가장 주요한 강은 참베지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참베지강을 수원에서부터 반그웨올로 호수까지 추적했고, 호수의 북쪽 끝에서 나오는 하천의 이름은 루아풀라이고 그 강은 모에로 호수로 흘러들어 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위도 3도에 해당하는 지역을 통과하며 북쪽으로 흐르는 강[참베지]은 이름이 놀랍게 비슷하더라도 잠베지라는 이름의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다시 카젬베의 구역으로 돌아갔다.

카젬베 왕의 구역에서 그는 늙고 수염이 하얀, 모함메드 빈 살리Mohammed bin Sali라는 이름의 혼혈을 발견했다. 그는 왕에 의해 죄수나 다름없이 갇혀있었는데, 그 지역에 그가 나타나고 머물게 되면서 일어난 의심스러운 사건들 때문이었다. 리빙스턴이 힘을 써서 모함메드 빈 살리는 풀려났다. 우지지로 가는 길에 박사에게 혼혈을 위해 애썼던 것을 후회할 쓰디쓴 이유가 발생했다. 그는 매우 배은망덕한 철면피임이 밝혀졌다. 박사의 몇 안 되는 대원들의 마음을 더럽혔고, 자신의 첩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몸을 팔게 해서 그들의 환심을 샀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그들을 자신에게 구속된 일종의 노예로 만들었다. 박사는 두 명을 제외한 모두에게 버림을 받았다. 심지어 충성스러운 수시Susi와 츄마흐Chumah마저 모함메드 빈 살리의 서비스를 위해 박사를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곧 후회했고, 자신들의 충성심을 찾았다. 박사가 그 비열한 늙은이를 무리에 합류시킨 날부터 갖가지 혹독한 불행이 1869년 3월 우지지에 도착할 때까지 박사를 따랐다.

박사는 도착한 날부터 1869년 6월 말까지 우지지에 머물렀다. 그동안 보낸 편지에 날짜를 적었고, 그 편지들을 통해, 바깥 세상은 여전히 그의 생존을 의심했어도, 왕립지리학회 사람들과 그의 가까운 친구들은 그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마음을 안심시켰다. 박사에게 배를 타고 탄가니카 호수 주변을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은 그 시기였다. 하지만 아랍인과 원주민은 박사를 벗겨먹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만일 박사가 그 생각을 실천했더라면, 그에게 남은 물품으로, 중심 배수선의 시작점을 카젬베 구역의 먼 남쪽, 위도 약 11도 경에서, 참베지라고 불리는 강에서 이미 찾았어도, 더는 중심 배수선에 관한 탐험이 불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