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9: 계속된 우니아니엠베에서의 삶과 고난 5



9월 8일

저녁 무렵 셰이크흐 빈 나시브는 음푸토에 있는 아랍인에게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곳이 미람보와 그의 투타족 동맹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을 알리는 편지였다. 편지에는 또한 크위하라 사람들에게 공격을 대비해 철저히 준비하라고 명령을 내리라는 경고가 쓰여있었다. 미람보가 성공적으로 음푸토를 점령한다면, 곧바로 크위하라로 진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9월 9일

어제 미람보는 음푸토를 공격하다 심각하게 타격 당하고 패했다. 그는 작은 니암웨지족의 마을 하나를 공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음푸토를 공격하다 그의 주요 부하 3명을 잃는 등 심각한 손실을 보고 후퇴했다. 마을 사람들은 철수하는 그의 부대를 우만다Umanda의 숲까지 추격했고, 그곳에서 그는 참패하고 수치스러운 꼴로 싸움터에서 줄행랑을 쳐야 했다.

그곳에서 죽은 미람보의 주요 부하들의 머리는 크위쿠루의 음카시와 보마로 운반되었다.

9월 14일

아랍 소년 셀림은 그를 떠나지 않는 열에 들떠 의식이 혼미했고, 쇼는 다시 앓아누웠다. 이들 둘이 내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나는 제대로 간호사 역할을 해야 했다. 나를 도와 그들을 돌봐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압둘 카데르에게 쓸모 있는 법을 가르치려 했다면, 그는 머리가 우니암웨지 담배의 사악한 연기로 꽉 찬 듯 뿌예져서, 내 마음의 평화가 완전히 무너져 결국 격노할 때까지 접시를 깨고 다 만든 맛있는 음식을 뒤집어엎는 등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했을 것이다. 지금 정식으로 내 요리사로 일하는 페라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해도, 그의 나무토막 같은 머리로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서, 부엌의 셰프 역할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9월 15일

우니아니엠베에서 지낸 지 거의 석 달이 되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번 달 23일까지는 출발하기 바란다.

내 병사들은 밤새도록 아침 9시까지 죽은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며 춤추고 노래했다. 지금쯤 그들의 뼈는 윌리안쿠루 숲에서 하얗게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항아리 2~3개에 가득한 폼베로 밤새도록 왕성한 신체 활동으로 발생한 맹렬한 갈증을 달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나를 불러 그 독한 술을 한 항아리 더 사야 하니 천 1슈카를 기부해달라고 했다.

오늘 나는 각 병사와 파가지pagazi에게 길을 정해 주느라 바빴다. 최대한 그들의 수고를 덜어주려 모든 짐의 무게를 70파운드에서 50파운드로 줄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긴 행군이 가능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지난 이삼 일 동안 10명의 짐꾼을 고용할 수 있었다.

아직도 매우 심각한 환자가 2~3명 있다. 그들이 무엇이라도 조금 운반할 수 있기를 아무리 기대해봐야 거의 아무 소용도 없다. 하지만 실제로 떠나는 날이 오기 전에 누군가가 그들을 대신하리라 기대한다. 이제 떠나는 날이 이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 같다.

9월 16일

우리는 일을 거의 끝마쳤다. 오늘부터 5일째 되는 날, 우리는 신의 뜻에 따라 행군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두 명의 길잡이와 더불어 아스마니Asmani와 마브루키Mabruki라는 이름의 짐꾼 두 명을 더 고용했다. 만일 인간이 거대한 체구만으로 누군가를 겁에 질리게 할 수 있다면, 분명히 아스마니의 외모가 적격일 것이다. 그의 키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6피트가 훨씬 넘고, 어깨너비는 보통 사람 두 배는 됐다.

나는 내일 험악하고 불운한 이곳을 떠나게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작별 만찬을 제공할 생각이다.

9월 17일

만찬이 끝났다. 나는 수송아지 두 마리를 잡아서 구웠다. 그 밖에도 양 3마리, 염소 2마리, 닭 15마리, 쌀 120파운드, 인도 옥수숫가루로 만든 커다란 빵 20덩이, 달걀 100개, 버터 10파운드, 연유 5갤런이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쓰였다. 대원들은 친구와 이웃들을 초대했고, 약 100명의 여자들과 아이들이 만찬에 참석했다.

만찬이 끝나고, 원주민들의 맥주인 폼베가 5갤런짜리 항아리들에 담겨 제공됐고, 사람들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심지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춤을 추고 있다.

9월 19일

오늘 내가 약간 열병의 공격을 받아서 우리의 출발이 연기됐다. 셀림과 쇼는 모두 회복됐다.

저녁 8시경에 셰이크흐 빈 나시브가 와서 내 건강이 아주 좋지 않으니 내일 떠나지 말라고 간청했다. 트하니 사크흐부리Thani Sakhburi는 한 달 더 있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말했다. 나는 답으로 그들에게 ‘백인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않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이미 가겠다고 말했으니 나는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셰이크흐 빈 나시브는 나를 하루 더 머물게 하겠다는 기대를 결국 접고, 내가 고집불통에다 죽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는 편지를 세이드 부르그하쉬Seyd Burghash에게 꼭 쓰겠다고 일침을 놓으며 떠났다.

밤 10시경에 열이 내렸다. 템베 안에 있는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자고 있다. 내 위치와 목표에 대해 생각하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이 몰려왔고, 주변 어디에도 나와 공감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고 느껴졌다. 내 마음을 덮친 모든 불길함을 몰아내려면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불길함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신의라고는 없는 이곳 아랍인들이 걸핏하면 해대는 경고가 마음에 각인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는 우울함의 원인과 외로움의 원인은 아마도 근본이 같을 것이다. 내 방을 구석구석 채운 어둠을 희미하게 밝히는 양초 한 자루만이 기운을 내라고 애처롭게 응원한다. 돌담 안에 갇힌 느낌이다. 그러나 내가 왜 몰상식하고 아둔한 아랍인들과 그들의 경고와 푸념에 사로잡힌 듯한 느낌에 시달려야 하나? 문득 이 글을 쓰며 이 모든 것 뒤에 어떤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들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아랍인들이 나중에 언젠가 미람보와 전쟁을 할 때 나를 꾀어 그들을 돕도록 할 수도 있으리라는 속셈으로 나를 머물게 하려고 그 모든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닐까!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나는 엄숙하게 영원한 맹세를 했다. 살아있는 리빙스턴을 찾거나, 죽었다면 시신을 찾을 때까지 이 탐색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그가 살아있거나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그 맹세는 내 안에 조금이라도 생명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는 한 지켜질 것이다. 나는 내 결심을 깨라는 유혹에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죽은 자든 산 자든 나를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오직 죽음만이 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 심지어 죽음조차 나를 막을 수 없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고, 죽을 생각이 없고, 죽을 수 없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게 말한다. 아마도 그것은 영원한 내 낙관적 성격일 수도 있고 혹은 풍부하고 왕성한 생명력에서 태어난 자연스러운 확신일 수도 있다. 또는 누구에게나 있는 과한 자신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그를 찾으리라고 오늘밤에 내게 말하고 있다. 나는 또박또박 ‘그를 찾아라! 그를 찾아라!’라고 쓴다. 쓰인 단어들도 기운을 북돋운다.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기도를 한 셈인가? 나는 오늘 밤 평온하게 잠들 것이다.





나는 내 일기를 그대로 옮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글들은 그곳에서 쓰였고 ‘우니아니엠베에서의 내 생활’의 부침을 설명한다. 아무리 상세히 당시 내 생활을 다시 쓰더라도 그 글들이 훨씬 더 있는 그대로 잘 설명하고 심지어 가장 생생할 것 같았다. 일기 속에는 그때 있었던 일들이 일어났을 때처럼 정확하고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내가 느낀 대로 담겨있다. 그 기록들은 나와 대원들이 수없이 앓았던 열병에 관해 이야기하고, 우리에게 있었던 위험, 작은 기쁨, 곤혹스러운 일, 쾌락 등을 지금 벌어진 듯 생생히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