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4: 우지지에서 우니아니엠베까지 우리의 여정 6



[육로 행군 시작] 1월 7일 우리는 캠프를 걷고 동쪽을 향해 갔다. 내게는 집을 뜻하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섭섭하기도 했다! 그동안 충분한 행복과 기쁨이 있었고, 내게는 최고로 즐거운 사교적 교류가 호숫가 해변들에서 있었다. 그동안 아름다운 경치도 충분히 보았다. 사이렌처럼 사람들을 조용한 휴식으로 유혹하는 경치였다. 평온한 풍경도 보았다. 그 풍경 안에는 불협화음도 떠들썩한 소란도 경쟁도 패배도 희망도 실망도 없고, 오직 휴식만 있었다. 나른하고 나태하지만 기분 좋은 휴식. 그리고 아주 조금 아쉬운 것들이 있었다. 열병이 있었다. 책이 없고, 신문이 없고, 나와 같은 인종이자 혈통인 부인이 없었다. 극장, 호텔, 레스토랑, 이스트 강의 굴, 민스파이, 메밀 케이크가 없었다. 세련된 미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날 따라 더 투명하게 보였던 호수와 양쪽 방향으로 멀어지며 더 파랗게 보였던 위대한 푸른 산맥에게 안녕을 고하기 위해 몸을 돌리고, 눈물 없이 한숨 한 번 내쉬지 않으며 그 끔찍한 단어[안녕]를 말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우리 길은 로아제리Loajeri강의 삼각주를 떠나 계곡을 지나도록 우리를 이끌었다. 계곡은 계속 좁아져 포효하는 강에 의해 질식당할 것 같은 작은 협곡이 되었다. 강의 저항할 수 없는 맹렬한 흐름이 우리가 숨쉬는 공기에 조차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이 좁은 협곡이 억압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질 무렵 마침 길은 언덕에 올랐고, 테라스 같은 산비탈을 지났고, 마지막으로 산에 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산에서 야영을 하려 멈추었다. 야영할 장소를 고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박사가 조용히 앞을 가리켰고 갑자기 죽은 듯 고요한 정적이 사방을 지배했다. 아침에 복용한 키니네가 뇌의 모든 주름에서 내게 작용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혹독한 악마는 여전히 남아있고 라일리 소총의 무게로 몸이 떨렸지만 박사가 가리키는 곳으로 기어서 갔다. 그리고 가파른 협곡 아래를 내려다보니, 반대편 비탈 위로 훌륭한 물소 한 마리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물소가 정상에 도착해서 자신의 적을 훑어보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견갑골 바로 뒤 척추 부근에 총알 한 방을 박아 넣는데 성공했다. 물소는 고통으로 깊은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맞았네, 맞았어!”라고 박사가 소리쳤다. “당신이 그 녀석을 쏘았다는 확실한 신호입니다.” 그리고 부하들은 고기를 먹을 기대로 한껏 소리를 질렀다. 두 번째 총알이 녀석의 척추에 박혀 녀석을 무릎 꿇게 만들었고, 세 번째는 녀석을 끝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식량이 또 공급되었다. 공급된 고기는 은그와나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잘려 불 위에 말려졌다. 그 고기는 그들을 우리 앞에 있는 무인 황무지를 너머 멀리까지 가게 해줄 것이었다. 박사와 나는 혀와 등의 혹과 그 밖에 훌륭한 부위 몇 조각을 소금에 절였다. 그리고 며칠 후 최고의 절인 쇠고기를 먹었다. 소총이 은그와나족 사냥꾼보다 더 많은 칭찬을 받았던 것을 밝히는 것은 결코 부적절하지 않다.

다음날 우리는 키란고지의 안내에 따라 동쪽을 향한 행군을 계속했다. 그는 유창한 말로 자신이 은곤도Ngondo, 욤베흐Yombeh, 품부루Pumburu 등의 구역에 대해 잘 하는 사람이라고 믿게 만들었었다. 그런데 그가 우리를 이끄는 길을 볼 때, 그는 그 지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카라반의 선두로 불려져 가보니 빠르게 흐르는 로아제리강으로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그 너머로 넘기 매우 힘든 산들로 형성된 산맥이 세 개 있었는데, 우리는 북동쪽 방향으로 그것을 건너야 했고, 그러면 우리의 길에서 상당히 벗어나게 됐다. 박사와 상의한 후 나는 카라반 선두에 서서 그 산등성이의 등마루를 따라 걸으며 길이 어떻게 나있든 상관없이 정동 방향으로 걸었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우리 경로와 교차됐고, 그 길을 한 동안 따라가니 로아제리강의 얕은 곳에 이르게 되었다. 로아제리강은 카쿤구Kakungu 봉우리 남쪽과 남동쪽에서 발원한다. 그 강을 건넌 후 카라흐Karah에서 카웬디 남부에 있는 은곤도와 품부루까지 이어진 주 경로에 이를 때까지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하며 걸었다.

9일, 캠프를 떠나서 곧 우리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떠나서 우리 앞에 있는 언덕 지대의 틈 사이로 지나갔다. 품부루는 카웬디 북부의 한 구역인 마니아 음센게Manya Msenge 사람들과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지역은 사냥감이 풍부했고, 물소와 얼룩말이 많았다. 눈에 잘 띄는 나무들 중에 hyphene[hyphaene로 추정] 야자나무와 보라수스borassus 야자나무와 원주민들에게 ‘마비아흐mabyah’라고 불리는 600파운드짜리 대포알과 비슷한 크기의 열매가 열린 나무가 있었다. 스와힐리어로 ‘마비아흐’, ‘음비아흐mbyah’, ‘비아흐byah’는 나쁜, 불쾌한의 뜻이다. 그 열매는 유럽인들에게 식용으로 권장되지 않았다.

10일, 나는 부하들의 선두에 서서 나침반을 손에 들고 3시간 동안 동쪽으로 길을 이끌었다. 아름다운 대 정원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풀이 매우 높게 자랐고 본격적인 우기여서 대 정원은 내 일을 매우 괴롭게 만들었다. 나침반을 손에 들고 내 목까지 오는 풀을 통과해서 길을 내며 탐험대를 이끌었다. 길이라는 표시는 조금도 없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지나간 적 없는 지역이었다. 우리는 북쪽으로 흐르는 작고 아름다운 시냇가에 캠프를 쳤다. 루구푸Rugufu강의 지류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