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2: 우지지에서의 대화: 리빙스턴의 탐험과 고난과 상심 7
어느 날 밤 나는 공책을 꺼내 그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그가 했던 여행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을 받아 적으려 준비했다. 그는 주저 없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고, 그것을 요약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데이비드 리빙스턴 박사는 1866년 3월에 잔지바르섬을 떠났다. 4월 7일 그는 탐험대와 함께 내륙을 향해 미킨다니Mikindany 만을 출발했다. 탐험대원 중 12명은 봄베이 출신 세이포Sepoy[인도 토민병]였고, 9명은 코모로Comoro 제도의 요한나Johanna섬 출신이었고, 7명은 해방된 노예였고, 시험 삼아 데려가는 2명은 잠베지 사람Zambezi men이었다. 그 밖에 낙타 여섯 마리, 물소 세 마리, 노새 두 마리, 당나귀 세 마리가 탐험대에 포함됐다. 그는 그렇게 30명의 대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 중 12명의 세이포는 탐험대의 경호 임무를 담당하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엔필드Enfield 소총으로 무장돼있었는데, 소총은 봄베이 정부가 박사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탐험대의 짐은 천 열 꾸러미와 구슬 두 자루였다. 그것들은 박사가 방문하려는 지역들에서 현금처럼 사용되며 그때그때 생필품을 구매할 용도였다. 그 거추장스러운 돈과 더불어 그들은 기구들을 담은 상자들을 가지고 갔다. 크로노미터[정밀한 경도측정용 시계], 공기 온도계, 육분의[두 점 사이의 각도를 정밀하게 재는 광학 기계], 인공 수평기 등과 같은 기구였고, 그 밖에 옷, 약품, 개인 용품 등을 담은 상자들이었다. 탐험대는 루부마Ruvuma강 왼쪽 기슭을 따라 올라갔다. 아무 길이나 선택했어도 그것보다 더 나쁠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움으로 가득 찬 경로였다. 리빙스턴과 일행은 매우 조밀하고 뚫고 지나가기 거의 불가능한, 강의 양쪽 기슭을 덮은 정글을 도끼로 길을 내가며 가야 했다. 그 길은 오솔길에 불과했다. 그 길이 어디로 났든 전혀 상관하지 않으며 그곳에서 가장 손쉽게 나오는 출구를 찾았기 때문에 가장 기이한 방식으로 빽빽한 초목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을 통과하게 됐다. 짐꾼들은 별 어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낙타들은 그들의 거대한 키 때문에 그들 무리가 도끼로 장애물을 제거하기 전에는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었다. 삼림 학자들이 사용하는 도구들은 거의 항상 필요했다. 그러나 세이포들과 요한나 섬 출신 대원들이 일하기를 거부해서 탐험대의 진척은 자주 지체됐다.
탐험대가 해안을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아 그들의 투덜거림과 불평이 시작됐고, 사사건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작정하고 행군에 대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들은 박사의 진척을 방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해안으로 되돌아가리라는 희망으로, 오래지 않아 결국 한 마리도 남지 않을 때까지 동물들을 잔인하게 대했다. 그러나 이 계략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들은 그 백인에 대항하도록 원주민들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가 기이한 짓을 한다며 매우 악의적으로 비난했다. 이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고 그런 사람을 대원으로 데리고 있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에 박사는 그들을 해고하고 세이포들은 해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무일푼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았다. 해안에 도착할 때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양식은 제공했다. 이들은 원주민들에게는 박사의 노예라고 일컬어지며 평판이 나쁜 무리였다. 이들이 부도덕함을 보여주는 최악의 행위는 처음으로 만나는 여자나 어린 남자애에게 총과 탄약을 들라고 시키는 짓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협박과 거짓 약속으로 꾀었다. 한 시간 동안의 행군은 그들을 피곤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겨우 한 시간 행군하고 나서 자신들의 고된 운명을 비통해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리더의 목표를 망치기 위한 새로운 계략을 꾸미기 위해 길 위에 누웠다. 밤이 다가오면 그들은 대개 반쯤 죽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캠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녀석들은 당연히 형편없는 호위대에 불과했다. 만일 떠돌이 원주민 부족의 공격을 받았더라면, 그들이 강하든 약하든 박사는 방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항복하거나 파멸당하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대안도 없었을 것이다.
박사와 그의 소규모 탐험대는 1866년 7월 18일에 한 히요우족Wahiyou 추장에게 속하는 마을에 도착했다. 그 마을은 로부마Rovuma강에서 남쪽으로 8일 행군하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니아사Nyassa 호수의 분수령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로부마강과 이 히요우족 마을 사이에 있는 땅은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곳이었는데, 리빙스턴과 그의 탐험대는 그곳을 지나오며 굶주림과 대원들의 탈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
1866년 8월 초에 박사는 음폰다Mponda의 지역에 왔다. 음폰다는 니아사 호수 근처에 사는 추장이었다. 오는 길에서 두 명의 해방된 노예가 그를 버리고 도망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박사의 부하 중 한 명인 웨코타니Wekotani가 그의 형제를 찾았다는 구실을 대며 고집스럽게 자신을 놓아달라고 했다. 박사는 곧 그 말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또한 가족이 니아사 호수의 동쪽에 산다고 했다. 게다가 음폰다가 제일 좋아하는 부인이 자신의 여자 형제라고도 했다. 박사는 웨코타니가 더는 함께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음폰다에게 데리고 갔다. 음폰다는 그가 완전 초면이었다. 박사는 그 감사할 줄 모르는 소년에게 충분한 천과 구슬을 주었고, 추장에게 그를 올바르게 대우하겠다는 확인 받은 후에 그의 ‘큰 형’이 그를 데리러 올 때까지 그를 지켜달라고 추장에게 맡겼다. 박사는 아무 때나 원하면 그의 영국 친구들이나 혹은 자신에게라도 편지를 쓸 수 있도록 웨코타니에게 편지지도 주었다. 읽고 쓰기는 봄베이에서 얻은 소양이었는데, 그곳에서 웨코타니는 학교에 보내졌었다. 박사는 또한 그에게 대개 그의 고향 사람인 니아사의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이웃 사람들에게 행해지는 노예 사냥에도 참여하지 말라고 명했다. 놓아달라는 요청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웨코타니는 박사의 또 다른 제자이자 자신의 친구인 츄마흐Chumah를 꼬드겼다. 그의 ‘큰 형’을 통해 부인과 많은 폼베를 구해주겠다는 약속을 미끼로 던지며 박사의 시중드는 일을 그만두고 함께 가게 하려고 애썼다. 츄마흐는 이 문제를 박사와 상의했고, 박사는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박사는 웨코타니가 단지 츄마흐를 자신의 노예로 삼으려는 속셈이라고 강하게 의심했다. 츄마흐는 현명하게 유혹을 피했다. 음폰다의 마을로부터 박사는 니아사 호수의 뒤꿈치처럼 생긴 곳이자 한 바비사Babisa 추장의 마을로 갔는데, 추장이 피부병 약을 요구했다. 그는 늘 그렇듯 친절한 마음으로 추장의 고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 마을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