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4: 우지지에서 우니아니엠베까지 우리의 여정 10



다음은 내 일기에서 인용했다.


1872년 1월 20일. 오늘은 쉬는 날이다. 사냥을 위해 밖으로 나갔을 때 나는 11마리의 기린 떼를 보았다. 음포크와 시냇물을 건넌 후 나는 그들 중 한 마리의 150야드 안으로 접근하는 데 성공했고, 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상처만 입혔고, 쓰러뜨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 중 한 마리의 가죽을 매우 갖고 싶었었다.

오후에 나는 마을 동쪽으로 나갔고, 얼룩말 여섯 마리의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들 중 한 마리에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그 녀석은 내 노력을 무색하게 하며 도망갔다.

그들은 얼마나 비범한 피조물인지! 그들의 크고 투명한 눈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그 두 번의 사격이 성공이었다고 맹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방향을 바꾸려는 발 빠른 말의 동작처럼 위엄을 잃지 않으며 멀어졌다. 그들이 달릴 때는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다소 인도의 춤이나 테베 발레리나의 몸을 기이하게 비트는 동작 같아 보이기도 했다. 몽환적으로 출렁이는 움직임, 심지어 긴 검은 털 술이 달린 꼬리도 그 동작에 가담하는 듯 보였다.

박사는 안달복달하다 실망한 젊은 사냥꾼을 어떻게 위로하는지 알았다. 그는 내 실패를 납 총알로 쏜 탓으로 돌렸다. 납 총알은 너무 물러서 기린의 가죽처럼 두꺼운 가죽을 뚫지 못한다고 했다. 대신 내 아연 물통을 녹여 그것으로 납 총알을 더 단단하게 만들라고 충고했다. 박사가 찬탄할 만한 여행 동반자라는 생각을 하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운이 나쁜 사람을 어떻게 위로하는지 아무도 그처럼 잘 알지 못했고, 낙심한 사람이 원래 마음을 되찾도록 하는 방법을 그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비록 나는 얼룩말을 죽였지만, 남아프리카 사냥꾼인 박사의 친구 오스웰Oswell과 박사는 오래전에 얼룩말 고기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맛있다는 결론에 이르지 못하지 않았나? 내가 물소를 쏘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을 것이다. 고기는 물소 고기가 최고였다. 그리고 물소 뿔은 견본으로 고국으로 가져갈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물소가 살집이 없다면? 만일 내가 아무 것도 못 잡고 돌아왔다면, 그것은 사냥감이 매우 다루기 어려웠거나 아니면 사람들의 소음 탓으로 사냥감이 놀란 거다. 누구도 벌써 경계하고 있는 동물을 몰래 뒤쫓아 갈 수는 없다. 진정, 그는 가장 배려가 있는 동반자였다. 그리고 그가 문자 그대로 진실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성공했을 때 그의 칭찬이 자랑스러웠고, 실패했을 때는 쉽게 위로를 받았다.

우카웬디에서 그의 오래된 카부유[호리병]이 깨졌을 때 마음이 찢어지는 상처를 받았었던 늙은 길잡이 이브라힘Ibrahim은 우지지를 떠나기 전에 마니우에마 출신의 한 노예에게 자신의 천을 투자했었다. 그 노예의 이름은 ‘울리멘고Ulimengo’인데, ‘세계’라는 뜻이다. 그런데 울리멘고가 음포크와에 가까워지자 약간의 천과 소금 한 자루가 전부인 자신의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종적을 감추었다. 그것들을 우니아니엠베에 가지고 가서 팔 생각이었다. 이브라함을 위로할 방법은 없었다. 그가 손실에 대해 과장되게 침울한 어조로 매일 슬퍼하자, 사람들은 공감은커녕 그를 비웃었다. 나는 그에게 왜 그런 노예를 샀는지, 그리고 같이 있는 동안 왜 그를 먹이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는 신랄하게 대답했다. “그는 내 노예가 아니었나요? 내가 그를 데려온 천은 내 천이 아니었나요? 만일 그 천이 내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살 수 있지 않나요? 당신은 왜 그렇게 말하는 거죠?”

그날 저녁 이브라힘의 마음은 다시 기쁨을 되찾았다. 울리멘고가 소금과 천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그 편협한 늙은이는 너무 기뻐서 춤을 추었고, 엄청 서둘러 기쁜 소식을 내게 전하려 왔다. “그 ‘세계’가 돌아왔습니다. 확실하게. 내 소금과 천도 그와 함께 있습니다. 확실하게.” 그 말에 나는 앞으로는 그를 먹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노예에게는 주인뿐만 아니라 음식도 필요하다고 대답해주었다.

박사는 밤 10부터 자정까지 카노푸스Canopus[남극노인성]를 관찰하느라 바빴다. 그 결과로 우코논고, 우탄다Utanda의 구역인 음포크와가 남위 6도 18분 40초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추측항법에 의한 내 지도에 표기된 위치와 박사의 관측 결과를 비교해보고 나는 3마일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남위 6도 15분에 표시해두었다.

다음 날은 쉬는 날이었다. 박사의 발은 신발을 신을 수 없을 정도로 염증과 통증이 매우 심했다. 내 발뒤꿈치들 또한 껍질이 벗겨졌다. 나는 과감하게 신발에서 원 모양을 도려내어 신고 걸을 수 있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