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3: 탄가니카 호수 탐험 9



루시지강이 호수에서 나가는 강이냐, 호수로 들어오는 강이냐는 질문에 대한 영원한 답을 찾았다. 이 점에 관한 의문은 이제 더는 없었다. 루시지강은 크기로 말라가라지강과 비교될 수는 없었다. 말라가라지강은 카누에 불과한 매우 작은 배로 항해할 꿈도 꿀 수 없다. 루시지강에 대해 유일하게 주목할 만한 점은 악어는 엄청 많지만 하마를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점 또한 이 강이 깊지 않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루시지강의 동쪽에 있는 만들은 서쪽에 있는 만들과 같은 형태다. 곶과 곶 사이에 있는 여러 만들과 여러 모래톱의 폭으로 조심스럽게 판단하건대, 호수의 폭은 약 12에서 15마일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만일 단순하게 호수 북쪽의 형태와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이 만나는 부분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더라면, 우리는 스피크 대령이 그의 지도에 그렸듯이 호수가 한 지점에서 끝이 난다고 말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루시지강 탐험은 그 생각을 허물었다. 차마티Chamati 언덕은 서쪽 지역의 북단이고, 외관을 살펴본 결과에 의하면, 동쪽 지역의 라마타Ramata 산맥과 인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라마타 산맥은 차마타 언덕 맞은편에 있다. 폭이 1마일정도 되는 계곡이 그 두 산맥을 분리하고, 루시지강은 그 계곡을 통과해 호수로 흐른다. 차마티는 서쪽 지역을 끝내지만, 동쪽 지역은 북서쪽으로 수 마일 너머 계속 이어진다. 이 넓은 협곡에서 발생한 루시지강은 겉보기에 넓고 강력한 물줄기가 되어 넓은 호숫가 평야를 가로질러 자신의 원래 형태로, 수 많은 물길로 갈라져 흐른다. 그리고 호수에 가까워지며 세 줄기가 되고 위에서 상세히 설명했듯이 호수 안으로 흘러 든다. 호수의 북쪽 해안을 인내심을 발휘하며 조사하고, 루시지강이 호수로 흐른다는 것을 직접 관찰해서 의심을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 베이커 경이 고향으로 가져갔던, 탄가니카 호수와 앨버트 은’이안자 호수가 물로 연결돼있다는 원주민들 사이의 소문을 신봉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내가 여기에서 빠뜨려서는 안될 말이 있다. 박사와 내가 루시지강의 강한 흐름을 두고 의견을 달리해왔지만, [내 생각처럼] 강은 빠르고 힘차게 탄가니카 호수 ‘안으로’ 흘렀다. 그런데 모든 담수 호수들은 배출구가 있기에, 박사는 여전히 루시지강이 어떤 역할을 하든, 어딘가에 탄가니카 호수의 배출구가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한다. 박사는 자신의 의견을 내가 대신해서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그 주제를 잘못 해석하면 안되니까, 박사가 직접 설명할 기회가 있을 때까지 그대로 남겨둘 것이다. 그는 아프리카에 대한 방대한 지식으로 훨씬 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박사가 분명히 맞는다고 여겨지는 의견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사무엘 베이커 경이 앨버트 은’이안자 호수의 위도를 2도까지는 아니라도 1도는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그 여행가는 자신의 호수를 룬디족의 영역으로 한참 들어오게 그렸고, 루안다는 호수 동쪽에 위치시켰다. 그런데 실제로 루안다는 전부는 아니라도 많은 부분이 그의 지도에 우시게Usige라고 표시된 곳의 북쪽에 있어야 한다. 루힌가와 같은 영리한 사람의 정보는 무시돼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앨버트 호수가 탄가니카 호수에서 100마일 안에 있다면 그가 직접 보지는 못했더라도 분명히 그 호수의 존재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원래 루힌가는 무툼비Mutumbi 출신인데, 그 지역에서부터 지금 그가 다스리는 무기헤와까지 여행을 했다. 그는 우룬디의 위대한 왕인 음웨지Mwezi를 본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해 약 40세의 남자이고 매우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 일은 이제 끝이 났다. 우리를 무기헤와에 붙잡아둘 것이 더는 없었다. 루힌가는 지나치다 할 정도로 친절했고, 잡아 먹으라고 계속 소를 주었다. 무캄바도 같았었다. 그들의 여자들은 우리에게 우유와 버터를 풍부히 공급해주었고, 그래서 우유와 버터가 넘치게 많았다.

박사는 위도와 경도에 대한 관찰을 계속해서 무기헤와는 남위 3도 19분에 있다는 것을 밝혔다.

12월 7일 이른 아침에 우리는 무기헤와를 떠나 카탄가라Katangara 군도의 최남단을 지나 노을 저으며 무캄바의 지역과 우비라의 경계선 근처의 우아쉬Uashi의 산악 지대에 가까이 갔다. 그 경계선은 넓은 계곡일 것이고, 계곡 깊숙이 원주민들이 카누를 만드는 크고 아름답고 줄기가 곧은 나무 숲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카니아마벤구Kanyamabengu강을 지났다. 그 강은 키라불라Kirabula의 장터 근처에서 호수로 물을 방출하는데, 키라불라는 버튼과 스피크의 탐험의 끝 지점이었다. 우리는 호수의 서쪽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30분 더 가야 하는 카빔바Kavimba로 키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침을 요리하기 위해 멈추었다.

우비라의 왕 음루타Mruta가 사는 마을이 우리 캠프의 시계 안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좋은 징조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람들의 무리들을 목격함에 남쪽으로 계속 가기로 했다. 게다가 몹시 불행해 보이는 지지족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도착하기 며칠 전에 약탈을 당했는데, 비라족Wavira이 그렇게 여겼듯이, 홍가를 내지 않으려 했다는 이유였다고 했다. 이 같은 일들도 있고, 탄가니카 호수의 여러 구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전쟁으로 인해 그 지역이 전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카빔바에서 휴식을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비라족이 사람들을 모으기 전에 우리는 빠르게 보트에 올라 강풍과 맞서며 남쪽으로 향했다. 강풍은 남서쪽에서 불어오며 우리에게 몰아쳤다. 빠르게 일어나는 폭풍을 마주하며 약 2시간동안 힘들게 노를 저어 우리는 뱃머리를 작고 조용한 만으로 돌렸다. 그곳은 키 큰 갈대 속에 거의 파묻혀있었다. 우리는 밤을 보내기 위해 배에서 내렸다.

우리를 에워싼 위험들을 깨달았고 야만스럽고 무자비한 인간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최악의 적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시 덤불로 튼튼한 울타리를 만드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고 나서 할일을 마치고 앉아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우비라의 대담한 도둑들이 혹시나 노략질을 하지 못하도록 이미 카누를 지킬 보초는 세워두었다. 그러면 우리는 비참한 처지가 되어 매우 고통을 겪어야 할 테니까.

동이 트자 커피와 치즈, 도우라dourra 케이크 등으로 소박하게 아침을 때우고 쿠쿰바Kukumba 곶을 떠나 다시 한 번 더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우리 모닥불은 눈이 날카롭고 의심이 많은 쿠쿰바 어부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러나 철수하기 전에 취한 우리의 예방 조치들과 방심 없는 경비가 비라족 도둑들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안전 장치임이 증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