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8: 우니아니엠베에서의 삶과 고난, 전쟁에 말려들다 6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우리는 아랍군 집결지인 음푸토에 도착했다. 다음 날까지 일을 멈추고 쉬라는 명령을 내렸다. 쇠고기를 먹고 체력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마음껏 소를 잡았다.

우리 군대의 인적 현황은 다음과 같았다.

셰이크흐 사이드 빈 살림 - 혼혈인 25명
크하미스 빈 압둘라흐 - 노예 250명
트하니 빈 압둘라흐 - 80명
무쏘우드 빈 압둘라흐 - 75명
압둘라흐 빈 무쏘우드 - 80명
알리 빈 사이드 빈 사시브 - 250명
나시르 빈 무쏘우드 - 50명
하메드 키미아미 - 70명
함담 - 30명
사이드 빈 하비브 - 50명
살림 빈 사이프 - 100명
순구루 - 25명
사르보코 - 25명
소우드 빈 사이드 빈 마지드 - 50명
모함메드 빈 무쏘우드 - 30명
사이드 빈 하메드 - 90명
헤럴드 탐험대 - 병사 50명
음카시와의 니암웨지족 - 800명
혼혈인과 은그와나족 - 125명
독자적 추장들과 그들의 추종자들 - 300명

트하니 빈 압둘라흐가 내게 준 숫자에 따르면 이렇게 총 2,255명이었다. 그리고 셰이크흐 빈 나시브가 고용한 발루치Baluch 사람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주었다. 이들 중 1,500명은 화승총으로 무장됐다. 총은 독일과 프랑스의 2연발 총, 영국 엔필드 소총, 미국 스프링필드 소총 등이었다. 그들은 머스킷총 외에 대부분 목을 베고 분풀이로 사체를 훼손하는 데 사용되는 창과 긴 칼을 갖추고 있었다. 화약과 탄환은 풍부했다. 몇몇 병사들에게는 수백 발이 제공되었고, 내 병사들은 60발씩 받았다.

요란한 나팔소리와 고마goma라고 불리는 북 50개가 울리는 낮은 굉음이 널리 퍼졌다. 무리의 수장을 상징하는 다양한 깃발을 휘날리며 우리는 줄지어 음푸토 요새를 떠났다. 회교 율법학자들이 우리에게 축복을 내렸고, 예언자, 점성술사, 코란으로 점을 치는 사람들은 가장 낙관적인 예언을 내놓았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대부대가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시 음푸토 요새로 두려움에 떨며 허둥지둥 뛰어들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람보와 싸우기 위해 음푸토를 떠난 날짜는 8월 3일이었다. 나는 이 아프리카 추장에게 승리를 거둔 후 바로 우지지로 떠날 수 있도록 내 물건을 모두 음푸토에 보관해두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닥치든 짐을 무사히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이기도 했다.

아직 우만다Umanda에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나는 간헐열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발작을 일으켜 내 해먹 위에 누워있었다. 간헐열은 그날 밤늦게까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음푸토에서 6시간 거리인 우만다에서 우리 전사들은 현자들이 그들을 위해 제조한, 주술적 힘이 담긴 약을 덕지덕지 발랐다. 약은 수수가루를 니암웨지족 주술사들waganga에게만 효능이 알려진 어떤 약초의 즙으로 반죽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