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2: 우지지에서의 대화: 리빙스턴의 탐험과 고난과 상심 16
돌아오는 길은 길고 박사를 지치게 했다. 그 여행은 이제 그에게 어떤 흥미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서쪽으로 가며 이미 그 길을 갔었다. 그때는 높은 기대와 열망이 있었고, 임무에서 벗어나 쉴 수 있다고 약속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마음이 조급했다. 하지만 지금은 실패하고 좌절 당해 돌아가고 있었다, 거의 끝이 보였는데. 같은 길을 걸어 되돌아 가야 했다, 수포로 돌아간 기대들과 꺾인 희망들을 안고 자신의 마음을 갉아먹으며. 그 노련하고 용감한 영혼이 거의 굴복했고, 강인한 신체가 거의 망가졌지만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리빙스턴은 거의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상태로 우지지에 10월 16일에 도착했다. 그의 대원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돌아오기로 하긴 했지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오륙 개월 더 걸리는 것뿐. 어쩔 수 없었으니까 실패라고 생각할 필요 없어. 우지지에 물건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을 고용해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라고 자신을 격려하며 기운을 내려 노력했다. 이런 말들과 희망으로 모든 것이 결국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자신을 속이려 애썼다. 하지만 안전하게 지켜주리라 믿으며 물건을 맡겨뒀던 사람이 상아를 위해서 모든 물건 꾸러미를 다 팔아버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가 받았던 충격은 어땠을까?
리빙스턴이 우지지로 돌아오던 날 밤, 그의 가장 성실한 대원 중 두 명인 수시와 츄마흐가 비통하게 울었다. 박사가 무엇 때문에 우는지 묻자, 그를 기다리던 저주스러운 소식을 전했다.
“우리 물건이 모두 팔렸습니다, 나리. 셰리프Sherif가 상아를 위해 모든 것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셰리프가 그를 만나러 왔고 뻔뻔스럽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리빙스턴을 도둑의 손을 잡을 수는 없다고 말하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셰리프는 코란의 계시를 받았고, 그 계시에 의하면 하킴Hakim(아랍어로 박사)이 죽었다더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리빙스턴은 이제 빈털터리였다. 그는 자신과 대원들을 약 한 달 동안 먹여 살릴 여유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아랍인들에게 구걸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박사는 더 깊은 이야기를 했다. 스피크가 탄가니카 호수의 고도가 겨우 해발 1,800피트라고 하는 것은 펜의 미끄러짐에 불과한 앤 도미니Anne Domini의 습관적 필체로 인한 착각임에 틀림없다. 탄가니카의 고도는 그가 주장하듯이 끓는 점을 이용해 측정한 고도는 2,800피트이고, 기압계로 측정한 고도는 3,000피트를 조금 넘는다.
박사는 불만이 많았다. 왜냐하면 그가 잔지바르의 사람들에게 짐을 맡길 사람으로 자유민을 보내달라고 그렇게 빈번히 간청했는데, 노예들을 보내주었기 때문이었다. 박사의 물자 공급을 맡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매우 작은 노력으로도 선하고 믿을 만한 자유민을 구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리빙스턴 박사에게 온 편지를 받고, 편지를 루드하 담지Ludha Damji에게 전달하고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면, 박사에게 부정직하고 무능한 노예가 파견된 것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박사는 니그로 자유민 한 명이 노예 한 명보다 백 배는 더 능력 있고 믿을 만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박사가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수 세기 전에 돼지치기 에우마에우스Eumaeus가 율리시스Ulysses에게 말하기를, “무엇이든 인간을 노예로 만들면 그 인간의 가치의 반을 가져가는 것으로 주피터가 확실하게 정했습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우지지에서 며칠을 행복하게 보냈다. 그 시간은 탄가니카 호수 항해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리빙스턴은 내 요리사가 제공하는 다른 식단의 음식을 섭취하며 매일 건강이 호전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쥬피터와 머큐리가 바우키스Baucis와 필레몬Philemon의 오두막집에서 받았던 것과 같은 저녁식사를 대접을 할 수는 없었다. 순결한 미네르바의 열매들도 없었고, 체리 피클도, 엔다이브도, 무도, 말린 무화과도, 대추 야자도, 향기로운 사과와 포도도 없었다. 대신 우리에게는 내가 직접 만든 치즈와 버터가 있었고, 방금 낳은 달걀, 닭, 구운 양고기,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 기름진 커드와 크림, 기름야자Guinea-palm로 만든 와인, 가지, 오이, 고구마, 땅콩, 콩, 우카란가Ukaranga 산 흰 꿀, 우지지 숲에서 딴 자두처럼 생긴 향기 좋은 신그웨singwe, 밀 빵을 대신할 옥수수 스콘과 축축한 빵damper 등이 있었다.
한낮의 열기기 기세를 부리는 동안에는 우리의 베란다 아래 앉아서 우리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해 토론했고, 이른 아침과 초저녁에는 호숫가에 가서 호수 표면에 잔잔한 물결을 만들고 멀리 평평하고 하얀 물가 위로 소란스럽게 파도를 말아 올리는 선선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물가를 따라 오르내리며 산책했다.
계절은 건기였고, 날씨는 사랑스러우리만큼 쾌적했다. 그늘 속 기온은 절대 80도[화씨]를 넘지 않았다.
넓은 은빛 수면이 내려다보이는 시장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가르침을 주었다. 그곳에서 호수 근처에 사는 부족들의 대표 대부분을 매일 볼 수 있었다. 양과 소, 돼지 등을 몰고 나온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는 지지족Wajiji이 있었다. 어부들도 있었는데, 우카란가Ukaranga와 카올레Kaole에서, 반크웨Bangwe 너머에서, 심지어 우룬디Urundi에서 왔다. 그들은 도가라dogara라고 불리는 치어, 메기, 퍼치perch[농어과의 민물고기], 그리고 다른 물고기들을 가지고 왔다. 주로 우지지나 우룬디에서 온 야자유 상인들은 불그스름하고 버터 같은 굳기의 기름이 가득 든 5갤런짜리 거대한 항아리들을 가지고 왔다. 우빈자Uvinza와 우흐하Uhha의 소금 평원에서 온 소금장수들도 있었다. 우비라Uvira와 우소와Usowa에서 온 상아 상인들도 있었고, 우고마Ugoma와 우룬디에서 온 카누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잔지바르에서 온 찢어지기 쉬운 날염 천을 파는 노점상들도 있었고, 파란색 무툰다mutunda 구슬을 사미-사미sami-sami, 순고마찌sungomazzi, 소피sofi등과 교환해주는 중개상도 있었다. 소피 구슬은 두꺼운 토관 줄기의 조각처럼 생겼는데, 약 0.5인치 길이이고, 이곳에서 수요가 무척 많다. 시끄럽게 흥정하며 물물교환에 열중하고 있는 구흐하족Waguhha, 마니우에마족Wamanyuema, 고마족Wagoma, 비라족Wavira, 시게족Wasige, 룬디족Warundi, 지지족Wajiji, 흐하족Wahha, 빈자족Wavinza, 소와족Wasowa, 은그와나족Wangwana, 카웬디족Wakawendi, 아랍인들, 그리고 스와힐리족Wasawahili 등을 볼 수 있었다. 모자를 쓰지 않고, 거의 벌거벗은 젊은이들은 검은 피부와 양털 같은 머리를 가진, 그들의 백인 자매들처럼 사랑의 강렬한 눈빛에 어떻게 낯을 붉히는지 모르는 필리스Phyllis들과 사랑을 나눴고, 자식을 거느린 나이든 여자들은 나이든 여자들이 어디에서나 그러듯이 쑥덕거렸다. 아이들은 우리 나라 아이들처럼 놀고, 웃고, 싸웠다. 그리고 연로한 남자들은 자신들의 창과 활에 기대고 서서 다른 나라들에서 노인들이 그렇듯 우지지의 장터에서도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