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2: 우지지에서의 대화: 리빙스턴의 탐험과 고난과 상심 12
리빙스턴은 자신이 루알라바강이 북쪽으로 흐르는 것을 위도 7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추적했고, 그 강이 나일강이라는데 눈곱만큼의 의심도 없지만, 나일강의 수원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아직 나일강에 대한 의문이 풀리고 끝이 났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박사는 수원이 4개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그 중 둘은 북쪽으로 흐르는 웨브의 강(루알라바강)과 남쪽으로 흐르는 강(잠베지강)을 태어나게 했다. 그는 이들에 관한 같은 이야기를 원주민들에게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수원들에서 100마일 내지 200마일 떨어진 곳까지는 여러 번 갔었는데, 항상 일이 생겨 보러 갈 수가 없었다. 수원을 직접 본 사람들에 의하면, 물이 돌이 하나도 없는 한 둔덕의 양쪽에서 솟아오른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둔덕을 개미총이라고도 했다. 이 수원들 중 하나는 한쪽에 서있는 사람이 다른 쪽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다고도 했다. 이 수원들은 발견되어야 하고 그들의 위치도 측정되어야 한다. 박사는 그것들이 반그웨올로Bangweolo 호수로 흘러 드는 하천들의 남쪽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박사는 ‘헤럴드’로 보내는 편지에서 “어엿한 규모로 물이 솟구치며, 가까이 모여있고, 네 개의 커다란 강의 수원인 네 수원들의 이야기는 나일강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수원들에 대해 이집트의 사이스Sais에서 미네르바의 보고 담당관이 모든 여행자의 아버지 헤로도투스Herodotus에게 해주었던 상세 설명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라고 말한다.
헤로도투스Herodotus의 일부를 덧붙인다. (II.28) [Herodotus의 번역문 중 Book II의 28절부터 34절까지. 검열 문제라며 Cary의 번역을 Macaulay의 번역으로 대치한 부분이 있는데, 차이를 느끼지 못해 Cary의 번역문 그대로 번역함]
*** 헤로도투스의 이야기 ***
[28] [...] 나일강의 수원에 관해 내가 만나서 이야기해본 사람들은 이집트인이든, 리비아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누구도 조금이라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집트 사이스Sais에서 만난 미네르바[이집트의 네이트 여신은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 여신, 로마 신화의 미네르바 여신에 해당]의 보고를 지키는 담당관(네이트Neith 또는 헤로도투스는 아테나라고 부르는 여신의 보고 담당관: ho grammatisteis toin hiroin xreimatoin teis Atheinaieis [‘나는 아테네인들의 비서’라는 뜻])만은 예외였다. 그가 수원에 대해 완벽하게 잘 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는 진심으로 나를 우습게 여기는 듯 보였다.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테바이스Thebais[혹은 Thebaid; 고대 이집트 상 이집트 지역; 현재 아비도스에서 아스완까지의 지역]의 시에네Syene[현재 아스완]市와 엘레판티네Elephantine[나일강에 있는 엘레판티네 섬] 사이에 봉우리가 뾰족한 두 산이 있습니다. 이 산들의 이름은 크로피Crophi와 모피Mophi입니다. 나일강의 바닥이 없는 수원들은 이 산들 사이로부터 흐르고, 그 물의 반은 북쪽으로 이집트 땅으로 흐르고, 나머지 반은 남쪽으로 이디오피아 땅으로 흐릅니다.” 그는 이집트의 왕인 프사메티쿠스Psammitichus[Psammetichus]가 실험을 통해 나일강의 수원들은 바닥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줄을 수천 패덤fathom[바다나 광산에서 쓰이는 길이의 단위; 약 6피트. 즉, 약 1,8미터]을 감아서 아래로 떨어뜨렸으나 바닥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담당관의 지론은 그러했는데, 만일 정말 그가 진실을 말한 것이었다면, 내 생각에 그 실험은 그 안에 공기나 물의 강한 소용돌이가 있고, 그래서 내려진 측연선sounding-line이 바위들에 부딪히며 바닥에 닿을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 것 같았다. [29] 나는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더는 어떤 것도 배울 수 없었다. 가능한 최대한의 연구를 수행하고 엘레판티네까지는 직접 가서 보고 그 너머 지역에 관해서는 전해오는 이야기를 통해 정보를 얻었음에도, 그 정도가 알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누군가 강의 상류로 엘레판티네 섬을 지나서 가려 하면 그 지역은 시작 지점에 끝까지 가파르기 때문에 보트의 양쪽에 로프를 묶고 소를 이용해 밭을 갈듯이 그렇게 앞으로 가야 한다. 로프가 끊어지면 보트는 강물의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그렇게 가야 하는 지역을 지나려면 4일이나 걸리고, 나일강의 이 부근은 매안데르Maeander강[터키에 있는 뷔위크 멘데레스Büyük Menderes강]만큼이나 바람이 많이 분다. 이런 방식으로 항해를 해야만 하는 구간이 12스코에니schoeni[schoenus의 복수;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하던 거리나 넓이의 단위]나 되고, 그 구간을 지나면 평평한 평원이 나온다. 그곳에서 나일강은 한 섬을 돌아 흐르는데, 그 섬의 이름은 타촘프소Tachompso이다. 이디오피아인은 엘레판티네 바로 위에 있는 지역과, 섬의 절반을 차지하고 살고 있다. 섬의 나머지 절반에는 이집트인이 산다. 이 섬 가까이에 거대한 호수가 있고, 호수의 가장자리에 이디오피아 유목민이 산다. 보트로 이 호수를 건너면,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나일강의 강줄기가 나올 것이다. 이 강에는 날카로운 바위들이 솟아있기 때문에 뭍으로 올라서 강 가장자리를 따라 40일을 여행하게 될 것이다. 그 지역을 지나면 다시 다른 보트를 타고 12일동안 항해를 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메로에Meroe라고 불리는 큰 도시에 도착할 텐데, 그 도시는 모든 이디오피아의 수도라고 일컬어진다. 그곳 주민들은 다름 아닌 바로 주피터와 바쿠스를 섬기는데, 그들은 매우 장엄하게 신들을 숭배한다. 그들은 또한 주피터의 신탁소를 가지고 있고, 신이 그들에게 경고의 신탁을 내리면 신이 어떤 나라에 대항하라고 하든 그들은 전쟁을 한다. [30] 이 도시를 떠나 항해를 계속하면, 엘리판티네에서 이디오피아인들의 수도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과 같은 시간이 걸려서 아우토몰리Automoli 사람들의 지역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이 아우토몰리 사람들은 아스마크Asmak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리스어로 ‘왕의 왼쪽에 서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24만 명에 달하는 이집트의 호전적인 부족인데, 다음과 같이 반감을 품고 이디오피아인들에게 갔다. 프사메티쿠스 왕의 지역에서 수비대의 요새들이 이디오피아인을 대비해서는 엘레판티네에 세워졌고, 아라비아인과 시리아인을 대비해서 펠루시안 다프내Pelusian Daphnae[현재는 이집트 Tahpanhes라고 함]에 하나가, 리비아를 대비해서 마레아Marea에 하나가 세워졌다. 그리고 심지어 내 시대에도 페르시아인의 요새들이 프사메티쿠스의 시대에 요새가 있던 같은 장소에 있다. 그들이 엘레판니테와 다프내에 수비대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위의 요새들에서] 3년간의 병역을 끝내고 이제 막 풀려난 이 이집트인들[아우토몰리]은 함께 협의해서 만장일치의 결론에 도달했는데, 모두 프사메티쿠스 왕을 배반하고 이디오피아로 가자는 것이었다. 프사메티쿠스는 이 소식을 듣고 그들을 추격해서 따라잡고, 많은 말로 말리고 제발 그들의 조상의 신들과 그들의 자손과 그들의 부인들을 저버리지 말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명이 신체의 사적인 부분을 드러내며 ‘이것이 있는 곳에서 자신들은 아이들과 부인들을 모두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사람들은 이디오피아에 도착하자 이디오피아인들의 왕에게 자신들이 헌신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왕은 다음과 같은 보답을 했다. 그에게 반감을 품은 이디오피아인들이 있는데, 그들을 추방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들이 이디오피아인들 사이에 정착함으로써 이디오피아인들은 더욱 문명화되었고 이집트인들의 풍습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