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4: 우지지에서 우니아니엠베까지 우리의 여정 1




검은 곰 가죽과 화려한 페르시아 카펫과 깨끗한 새 매트 위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편안한 사람들마냥 차를 마시고 ‘소풍’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니 고향에 있는 느낌이었다. 리빙스턴은 루시지Rusizi강에 갔던 우리의 여행을 고집스레 ‘소풍’이라 불렀다. 회상하기를 즐기던 옛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비록 우리 집은 겉보기에 초라하기 그지없고, 우리 하인들은 겨우 알몸의 미개인들이었지만, 우니아니엠베로부터의 온갖 사건사고로 가득했던 행군 끝에 그를, 그러니까 리빙스턴을 만났던 곳은 이 집 근처였다. 박사에게 탄가니카 호수의 서쪽 저 멀리 있는 매혹적인 지역들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은 곳은 바로 이 베란다였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처음으로 그에 대해 알게 된 바로 그 장소이기도 했다. 그를 향한 경탄이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내 비용으로 내 호위를 받으며 우니아니엠베에 가야겠다고 내게 알릴 때 나는 우쭐해진다. 이 집의 오래된 진흙 벽과 다 드러난 서까래와 케케묵은 초가 지붕과 이 기이하게 생긴 오래된 베란다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게 역사적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을 때 스케치를 해서 이 초라한 건물에 영속성을 부여하려 애써왔다.

리빙스턴을 향한 경탄이 커지고 있다고 방금 말했다. 사실이다. 어떤 유명한 인물을, 특히 본성의 윤곽을 그리거나 또는 견해를 상술할 목적으로, 인터뷰하듯 매우 침착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인터뷰하려 했던 그 남자는 나를 정복했다. 나는 그를 인터뷰하고 그의 이야기를 상세히 보도하고 그의 삶과 외모에 대해 그리고, 그러고 나서 안녕을 고하고 행군해서 돌아가려고 했었다. 특히 그가 마음이 맞지 않거나 그가 무뚝뚝한 사람이었다면, 즉시 다투게 되었을 거고, 그랬다면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리빙스턴은 진실하고 고귀한 기독교도였고, 너그러웠고, 정직했다. 영웅처럼 행동했고, 나를 그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나를 만나서 반갑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신은 내게 새 생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라고 했던 말을 증명하려는 듯 건강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이장열로 앓아 누워 생사를 오갈 때, 그는 아버지처럼 나를 돌봤다. 그래서 우리는 한 달 넘게 같이 지내고 있다.

그의 얼굴은 그의 본성의 발현이고 그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선 자체이고, 그의 목표는 매우 높다. 이래도 내가 이 남자를 좋아하는 것을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의 목표가 너무 숭고해서 때로 충동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박사님, 가족들은 당신을 너무나 보고 싶어합니다! 제가 당신을 저와 함께 집으로 가도록 꾀어보겠습니다. 당신을 해안까지 가는 동한 한 걸음도 빠뜨리지 않고 모시겠다고 약속합니다. 당신은 타고 갈 가장 좋은 당나귀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 당나귀는 우니아니엠베에 있습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넌지시 알려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즉시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나일강의 수원들은 내버려두십시오. 일단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서 쉬십시오. 한 일 년 쉬고 건강을 회복하고 나서, 다시 돌아와 일을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니요, 나도 가족이 매우 많이 정말 보고 싶습니다. 내 아이들의 편지들은 내 마음을 매우 흔들리게 합니다. 그러나 나는 집에 가서는 안됩니다. 내 일을 끝내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지금까지 붙잡아두는 유일하게 아쉬운 보급품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나일강 탐험을 끝냈어야 합니다. 베이커Baker의 호수나 페데릭Petherick의 나일강의 지류와 이어지는 곳까지 나일강을 추적해서 말이죠. 만일 내가 한 달만 더 갈 수 있었으면 ‘내 일은 끝났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박사의 흥미로운 발견들을 방해해 박사를 되돌아 오게 했던 부하들 중 몇 명은 아직 우지지에 있었다. 그들은 정부의 엔필드 라이플총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임금을 받을 때까지 총을 가지고 있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이 어디로 가자고 하든 따라가야 한다는 계약임을 알고 잔지바르에서 영국 영사에게 60달러씩을 이미 받았다. 그런데 그들은 가자는 대로 가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를 훼방하고 좌절시켰다. 몇몇 대원이 봄베이 정부가 제공한 무기들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박사를 상대로 거둔 승리를 만끽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었다. 나는 박사의 친구인 아랍 족장sheikh들이 그들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총을 포기하라고 충고하는 것을 들었고, 그 반역자들의 완고함을 목격했었다. 어느 날 나는 사이드 빈 마지드Sayd bin Majid의 집의 부르자니burzani에 있게 됐는데, 이 기회를 활용해 고집스러운 노예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한편 아랍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한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내가 리빙스턴을 살아있는 채로 찾아서 다행이라고, 만일 그들이 박사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다치게 했다면, 해안으로 가서 그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부대와 함께 돌아왔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무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길 바라며 리빙스턴의 총들이 반납되는 것을 보기를 매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 달이 더 지났음에도 여전히 무기는 반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총을 압수하는 것에 대한 허락을 구했고, 허락이 떨어졌다. 리빙스턴 박사의 용감한 하인 수시와 함께 열 명 남짓한 무장 대원들이 즉시 파견되었고, 우리는 몇 분 안에 별 다른 문제 없이 총들을 수중에 넣었다.

박사는 우니아니엠베로 나와 동행하기로 결심했다. 1870년 11월 1일 잔지바르에서 발송한 그의 비품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내가 호위를 책임졌기 때문에 우지지에서 우니아니엠베로 가는 몇 개의 경로를 잘 살피는 것은 내 의무였다. 박사 같은 사람을 호위하는 동안 내게 달려있는 어려움과 책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 경우에는 내 개인적 감정도 개입되어 있었다. 만일 리빙스턴이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내 부주의로 해라도 입게 된다면 “아! 그가 스탠리와 동행하지만 않았더라면 지금 살아있을 텐데.”라는 말이 즉시 나올 것이었다.

나는 직접 만들어둔 도표를 꺼냈다. 그 도표에 대해 완전히 자신이 있었다. 한 경로를 그렸는데, 그 경로는 홍가를 1도티도 내지 않고, 정글보다 나쁜 일은 만나지 않으며, 빈자족Wavinza과 약탈꾼인 흐하족Wahha을 모두 피할 수 있는 길이었다. 이 평화롭고 안전한 경로는 물길로 남쪽으로 우카란가Ukaranga와 우카웬디Ukawendi의 해안을 따라 톤그웨Tongwe 곶으로 이어졌다. 톤그웨 곶에 도착하면 우리는 이타가Itaga와 술탄 임레라Imrera의 마을 반대편에 있는 우카웬디의 루사와Rusawa의 구역에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내 옛 경로를 따라가야 한다. 그 경로는 내가 우지지로 올 때 우니아니엠베에서 지나온 길이다. 나는 경로를 박사에게 설명했고, 그는 즉시 실행 가능성과 안전을 인정했다. 그리고 임레라에 도착하면, 내가 그러자고 제안했듯이, 내 도표가 맞는지 맞지 않는지 입증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