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7: 9



7장. 마렌가 음칼리, 우고고, 우이안지를 거쳐 우니아니엠베로 (9)



이제 무콘도쿠를 지나면 무혼고를 줘야 할 술탄은 단 1명만 남았는데, 바로 키우예흐Kiwyeh의 술탄이었다. 그는 매우 악명이 높아서, 짐꾼을 직접 통솔할 수 있는 화물 주인들은 대부분 키우예흐를 거치며 뻔뻔함과 터무니없는 요구를 견디느니 고생스럽더라도 험한 지역을 가로질러 가는 편을 택할 정도였다. 그러나 짐 나르는 것 말고 다른 부담과 책임이 없는 짐꾼들은 직접 자신의 두 다리를 써야 하고 부리나케 도망쳐야 할 적대적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갈증을 견디며 힘든 오후 행군을 하기보다 키우예흐를 거쳐 가는 쪽을 선호했다. 그리고 자주 짐꾼들이 선호하는 쪽으로 경로가 결정됐다. 고용주가 셰이크흐 하메드처럼 소심하고 결단력 없는 사람일 때 특히 더 그랬다.

6월 7일이 무콘도쿠를 떠나는 날로 정해졌다. 떠나기 전날 두 아랍인은 경로를 상의하러 내 텐트로 왔다. 각 카라반의 키란고지(가이드)와 니암웨지족 베테랑 짐꾼들을 모두 불러서, 무콘도쿠에서 우이안지로 가는 길이 세 갈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남쪽 길이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선택되는데, 이미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었고 키우예흐를 거친다. 이 길에 대해 하메드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 술탄은 나빴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카라반 당 20도티를 청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카라반은 아마도 60도티를 내야 할 것입니다. 키우예흐 길은 절대 가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가 말을 이었다. “카우예흐를 가려면 오후 행군을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내일모레나 돼야 그곳에 도착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중간 길이다. 내일 무니에카Munieka에 도착하고, 내일모레 오후 행군으로 마분구루 도랑Mabunguru Nullah에서 우니암보기Unyambogi 근처 캠프까지 가면, 그 다음 날 두 시간 만에 물과 음식이 풍부한 키티Kiti에 도착한다. 그런데 가이드들도 아랍인들도 이 길을 알지 못했고, 오직 나이든 내 짐꾼 한 명만 이 길을 알고 있었다. 하메드는 이렇게 큰 카라반의 안내를 나이든 니암웨지족 한 사람의 손에 맡겨두고 싶지 않으니 결정하기 전에 세 번째 길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고 했다. 세 번째는 북쪽 길이었다. 이 길은 처음 두 시간 동안 많은 고고족 마을을 지나서 밀림을 만나고, 세 시간을 더 가면 심보Simbo에 도착하게 된다. 심보에는 물은 있지만, 마을이 하나도 없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시작해서 여섯 시간을 가면 물이 있는 곳에 도착할 것이고, 그곳에서 짧은 휴식을 취하고 오후에 여섯 시간 행군하면 세 시간 거리에 마을이 있는 지점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길 역시 많은 사람이 알지 못했는데, 하메드는 “셰이크흐 트하니, 신사분께 이 길이 최선이라고 전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셰이크 트하니를 통해 하메드의 결정을 듣고 나서, 함께 우고고 지역을 행군했으니 그들이 심보를 거쳐서 가기로 결정했다면 내 카라반도 따라서 같은 길로 가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여러 경로의 장단점에 대한 지도자들 간의 논의가 끝나자마자 짐꾼들 사이에 이야기가 돌았고, 심보 길로 가는 결정에 완강히 저항하는 불평불만으로 시끄러웠다. 긴 오후 행군을 해야 하며 물이 거의 없을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에 심보 길에 대한 반감이 모든 카라반으로 번졌다. 뒤이어 심보에서 쿠수리Kusuri로 가려면 물이 없고 음식도 구할 수 없는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를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와 불만은 더 커졌다. 하메드의 짐꾼과 그를 따르는 아랍인들의 짐꾼이 함께 뭉쳐, 행군을 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하메드가 계속 그 경로를 고집한다면 짐을 내려놓고 떠날 테니 알아서 옮기라고 했다.

두 아랍인의 성향에 길든 하메드 키미아니Hamed Kimiani는 셰이크흐 트하니에게 달려가서 자신은 키우예흐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짐꾼들이 모두 떠날 것이라고 했다. 트하니는 자신에게는 모든 길이 다를 바가 없으니 하메드가 선택하는 길을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내 텐트로 와서 니암웨지족이 내린 결론을 내게 알렸다.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경로는 내 베테랑 짐꾼인 니암웨지족이 알려준 길이었다. 나는 내 텐트로 그 짐꾼을 다시 불러서 키티로 가는 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이야기해 보라고 명령했다. 나는 하메드에게 다음과 같이 내 뜻을 전했다. ‘내가 카라반의 대장이니 짐꾼들이 가자는 길이 아니라 내가 키란고지에게 지시하는 길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들은 내가 멈추라고 하면 반드시 멈추어야 하고, 내가 행군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반드시 행군이 일어나야 한다. 나는 그들을 잘 먹이고 혹사하지 않기 때문에 짐꾼이든 병사든 내게 복종하길 마땅히 기대한다. 당신은 조금 전에 심보 길로 가겠다고 결정했고, 우리 모두 거기에 동의했는데, 이제 당신의 짐꾼들이 키우예흐 길로 가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하자, 그 길로 가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키우예흐 길로 가서 20도티의 무혼고를 바쳐라. 나와 내 카라반은 내일 아침 키티 길로 갈 것이다. 그리고 우니아니엠베에서 당신들보다 하루 먼저 도착한 나를 찾았을 때 당신은 나와 같은 길을 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이다.’

하메드는 즉시 “결국 그 길이 최선의 길입니다. 그리고 신사 양반이 그 길로 가겠다는 결심이 확고하고, 우리 모두 지금까지 그토록 험한 고고족이 사는 지역을 함께 여행했으니, 알라신이시여, 앞으로도 같이 가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던 것으로 봐서, 이런 내 결심은 다시 하메드의 생각이 흘러가는 방향을 바꾸는 데 영향을 주었다. 지혜로운 노인 트하니는 이견이 없었고, 하메드는 길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텐트 밖으로 나가 이 소식을 전했다.

6월 7일, 명백히 만장일치로 키티 길을 선택한 모든 카라반은 평소처럼 하메드의 키란고지에 의해 안내되었다. 나는 1마일 못 가서 우리가 심보 길을 벗어나 키티 길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을 알았었다. 그런데 어느새 교활하게 돌아서 우리 앞에 있는 능선에 이르는 좁은 골짜기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 길로 더 높이 있는 키우예흐 고원지대로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즉시 카라반을 멈추고 키티로 여행해본 적 있는 베테랑 짐꾼을 불러서 우리가 키우예흐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짐꾼들을 불러 모아 봄베이를 통해 의사를 전달했다. 무순구는 절대 마음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고, 내 카라반은 반드시 키티를 지나서 행군할 것이며 아랍인들이 따라오든 말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라고 봄베이에게 명령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 베테랑 짐꾼에게 어서 짐을 지고 키란고지에게 가서 키티로 가는 정확한 길을 알려주라고 명령했다. 니암웨지족 짐꾼들은 짐을 내려놓았다. 곧 반란을 일으킬 태세였다. 니암웨지족 병사들은 총을 장전하고 카라반 측면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처음으로 카라반을 이탈하려 한 짐꾼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나는 말에서 내려 채찍을 잡고 짐을 내려놓은 첫 번째 짐꾼에게 다가가서 다시 짐을 들고 행군을 계속하라는 몸짓했다. 더 이상의 조치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예외 없이 순순히 키란고지를 따라 갔다. 나는 트하니와 하메드에게 작별을 고하려 했다. 그러자 트하니가 “사히브(신사 양반), 잠깐 멈추시오. 나는 이런 하찮은 일로 시달릴 만큼 시달렸소. 나는 당신과 함께 가겠소.”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카라반은 내 카라반을 따라서 방향을 돌렸다. 하메드의 카라반은 그때 키우예흐로 가는 좁은 골짜기에 근처까지 가 있었다. 하메드는 자신의 카라반에서 족히 1마일은 뒤처져 있었는데 우리가 자신을 버렸다고 하며 아이처럼 울었다. 그는 카우예흐 술탄에게 당할 착취와 무례함에 대한 걱정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처지가 딱해서 빨리 카라반을 따라가서 모두 키우예흐의 술탄을 피하려 다른 길을 택했다고 전하라고 충고했다. 키티로 향하는 숲길에 도달하기 전에 나는 하메드의 카라반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등성이로 오르는 길은 험하고 가팔랐다. 가시투성이 식물의 가시가 우리를 가혹하게 벌했다. 동아프리카 아카시아는 이곳의 일반적인 아카시아보다 더 끔찍했다. 고무나무들은 가지를 뻗어 짐을 잡아챘다. 윗부분이 우산처럼 펼쳐진 미모사는 햇빛을 피할 그늘을 제공했으나, 그로 인해 빠른 전진을 방해했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서 반들반들해진 성장암과 화강암의 가파른 경사 길과 흙과 바위로 된 울퉁불퉁한 산길을 올라야만 했다. 멀리서 들리는 총성이 숲에 널리 울려 퍼져서 더욱 긴장했고 전반적으로 불만스러움이 고조됐다. 내가 내 카라반 바로 뒤에서 모든 움직임을 살피고 감독하지 않았다면, 내 니암웨지족 짐꾼은 한 명도 남지 않고 모두 탈주했을 것이다. 비록 우리가 오른 고원은 조금 전에 떠났던 함수호 보다 겨우 800피트 높았지만 오르는 데 2시간이나 걸렸다.

고원을 오르며 최악의 난관을 겪은 우리는 상대적으로 평평한 길을 만났다. 그 길은 정글과 숲, 탁 트인 작은 지역들을 지났다. 3시간 남짓 걸어 무니에카Munieka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무콘도쿠Mukondoku의 스와루루Swaruru의 사람들이 개간해 풍성하게 경작한 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캠프에 도착할 무렵 우리는 하메드를 제외하고 모두 쾌활함과 너그러움을 회복한 상태였다. 트하니의 사람들이 어쩌다 트하니의 텐트를 하메드의 나무와 너무 가까운 곳에 설치하게 되었다. 그 나무 근처에 하메드의 짐이 쌓여있었다. 정직하고 늙은 트하니가 자기 짐 한 덩어리를 훔쳐갈 수도 있다고 작은 셰이크흐가 생각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의 텐트가 가깝다고 격분하며 사납게 날뛴 것은 확실했다. 트하니는 자신의 텐트를 100야드 떨어진 곳으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하메드의 마음이 안정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트하니 말에 의하면 한밤중에 하메드가 와서 무릎 꿇고 그의 손과 발에 입을 맞추며 용서를 간청해서 당연히 기꺼이 용서했다고 한다. 트하니는 영혼이 온화하고 누구보다도 넓은 아량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하메드는 여전히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결국 자기 노예들의 도움을 받아 친구의 텐트를 처음 있던 곳으로 옮겼다.

무니에카 마을은 불쑥 솟은 성장암의 움푹 들어간 곳에서 물을 얻었는데, 물이 수정처럼 맑고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이는 심밤웬니Simbamwenni를 떠난 후로 경험하지 못한 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