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우리는 크위하라Kwihara 계곡에서 안절부절못하며 하루를 보냈다. 우리 시선은 계속 불행을 맞은 타보라로 향했다. 템베 3개가 큰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비드 빈 술리만Abid bin Suliman의 집이 파괴됐고 200개가 넘는 그의 상아가 ‘아프리카의 보나파르트’ 미람보의 차지가 되었다. 내 템베는 형태로나 방어 수단으로나 효율적으로 방어할 준비가 되어있다. 참호들이 집 바깥쪽을 에워쌌고, 시야를 가리는 원주민 오두막들은 모두 철거되었고, 적의 은신처로 쓰일 수 있는 나무와 관목은 모두 베어졌다. 6일 치 식량과 물이 충분히 확보됐다. 2주를 충분히 버틸 탄약도 있다. 벽은 두께가 3피트이다. 그리고 방 안에 방이 중첩된 구조라 도망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마지막 방을 빼앗길 때까지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다.내 이웃인 아랍인들은 용감한 척하느라 애를 쓰고 있으나 그들은 명백하게 자포자기 일보 직전이었다. 타보라가 적의 손에 들어가면 크위하라의 아랍인들은 이곳을 미람보에게 넘기고 일제히 해안지역으로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렸다. 실제 그들이 그런 계획을 하고 있고 그 계획이 정말로 실행된다면 나는 상당한 곤경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나를 두고 떠난다 해도, 미람보는 내 물건에는 손도 댈 수 없을 것이다. 리빙스턴의 물건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가 손대기 전에 집과 집 안에 있는 물건을 통째로 태워버릴 작정이다.
8월 24일
미국 국기는 여전히 내 집 위에서 펄럭이고, 아랍인들은 여전히 우니아니엠베에 있다.오전 10시경에 타보라에서 심부름꾼 한 명이 와서 미람보에 대항하는 그들을 도울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나가서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들을 도울 경우의 장단점에 대한 긴 토론이 끝나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과연 신중한 결정일까? 도우러 가는 것이 좋을까? 내가 죽으면 그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그들은 나를 다시 버릴까? 크하미스 빈 압둘라흐의 운명은 어떠했나?’ 나는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당신들은 자신들의 템베 안에서 미람보의 부대 정도는 완전히 여유 있게 상대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들이 미람보를 크위하라로 유인해 보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그런 경우라면 나는 기꺼이 싸워 그를 제거하겠다.’
미람보와 그의 최고 부하의 머리 위에는 우산이 씌워져 있고, 미람보는 니암웨지족 짐꾼처럼 머리가 길고 턱수염이 있다고 한다. 만일 미람보가 온다면, 그의 우산을 드는 대원들 위로 총알이 비처럼 쏟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행운의 총알이 미람보만을 맞히길 바랄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대로라면 나는 은제 탄환을 만들어야 하지만, 현재 수중에 은이 없다. 대신 금으로 총알을 만들 수는 있다.
정오 무렵 나는 내가 없는 동안 집을 지키라고 100명을 남겨두고 셰이크흐 빈 나시브를 만나러 갔다. 이 연로한 양반은 나름 자신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소한 철학의 교수님이라고 불릴 만하다. 그는 일반적으로 격언 등을 인용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매우 신중한 성격이다. 나는 그가 절망에 빠져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의 격언들은 그를 버렸고, 그의 철학은 재앙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는 내 말을 듣기는 했으나, 방어와 공격의 수단을 모두 갖춘 사람이라기보다는 초주검에 가까웠다.
나는 그의 2파운드 총에 탄환, 포도탄, 작은 쇠 산탄 등을 장전해 주고, 미람보의 사람들이 그의 문까지 오기 전에는 발포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오후 4시경에 미람보가 타보라에서 북서쪽으로 2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카지마Kazima로 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8월 26일.
아랍인들은 이날 아침 카지마를 공격하러 나갔다 그냥 돌아왔다. 미람보가 뻔뻔하게 아랍인들에게 훔친 소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하루 동안 휴전을 요구하며 다음 날 아침에 실컷 싸워줄 테니 그때 오라고 했단다.크위하라는 다시 평화로운 분위기를 되찾았고, 도망자들이 더는 좁은 크위하라로 두려움과 절망에 휩싸여 떼 지어 몰려들지 않는다.
8월 27일.
미람보가 밤에 철수했다. 아랍인들이 카지마 마을로 대거 몰려갔을 때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아랍인들이 요즘 여는 전쟁 위원회는 전투 준비모임이 되었다. 그들은 전쟁에 관한 회의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한데, 행동을 취하는 데는 매우 느리다. 그들이 북부 투타족Watuta족과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자 미람보가 선수를 쳤다. 그들은 미람보의 영토를 다시 침공하려고 회의를 했는데, 미람보는 우니아니엠베를 공격해서 마을을 불 지르고 사람들에게 칼을 휘둘러서 많은 가족을 몰살했고 최고 신분의 사람들을 죽였다.
우지지와 카라그와흐Karagwah로 가는 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굳건히 닫혀있는데, 아랍인들은 이야기와 논쟁으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영향력 있는 아랍인 중 다수가 잔지바르로 돌아가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우니아니엠베가 망했다고 말한다.
한편, 나는 아쉬운 대로 조금씩 나를 우지지로 데려가 줄 짐꾼들을 구하고 있다. 니암웨지족 짐꾼 구하기는 불가능한 것이 기정사실이라 우니아니엠베에 사는 자기 부족을 버린 은그와나족Wangwana을 세 배의 임금을 주고 고용하는 중이다. 보통 때라면 우지지까지 가는 짐꾼에게 5~10도티를 주면 되는데, 지금은 짐꾼당 30도티를 제안한다. 나는 50명을 원한다. 나는 경호원 한 명에게 약 60~70인분의 짐을 맡겨두고 떠날 생각이다. 개인 소지품도 모두 그대로 두고 작은 가죽 트렁크 한 개만 들고 떠날 것이다.
8월 28일
오늘은 미람보에 대한 뉴스가 없었다. 쇼는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셰이크흐 빈 나시브는 오늘 나를 방문했으나, 자신의 사소한 철학 말고는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이 지역을 조사해보고 나는 우코논고 북쪽과 우카웬디Ukawendi를 통과하는 남쪽 길로 카라반을 이끌어 쏜살같이 우지지로 가기로 했다. 셰이크흐 빈 나시브는 오늘 밤 이 결정을 통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