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7: 10



7장. 마렌가 음칼리, 우고고, 우이안지를 거쳐 우니아니엠베로 (10)



[6월 8일] 우리는 이제 ‘마군다 음칼리Magunda Mkali’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우이안지Uyanzi 라는 곳의 경계에 있었다. 마군다 음칼리는 뜨거운 땅 또는 뜨거운 들판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고고족이 사는 우고고 지역의 마을을 다 지나서 이제 우고고의 흙먼지를 발에서 털어내려던 참이다. 우고고에 첫발을 내디디며 우리는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매우 쾌적한 땅이리라 믿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우고고는 엄청나게 실망스러웠다. 알고 보니 정신적 고통과 혼란으로 가득한 쓰디쓴 땅이었다. 한 발 한 발 뗄 때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술 취한 술탄들의 변덕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모두 행복하다고 느꼈던 것은 기이한 일인가? 이제 많은 이들이 진정한 미개척지라 하는 곳이 우리에게 닥치리라 생각하니 우리의 열정은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해졌다. 아프리카에서 미개척지는 실제로 겪어보면 많은 경우 사람들이 사는 지역보다 더 호의적이다. 키란고지는 오늘 아침에 쿠두kudu 뿔을 우고고에서 보다 훨씬 더 활기차게 불어댔었다. 우리는 마군다 음칼리에 거의 다 왔다. 무니에카를 떠난 지는 3시간 됐고 우고고의 경계를 지난 지는 두 시간이 된 아침 9시에 우리는 마분구루 도랑Mabunguru Nullah에서 잠시 멈췄다. 그 도랑은 우고고와 마군다 음칼리의 경계를 이루며 이어진 산맥에서 시작돼 남서쪽으로 흐른다. 우기에는 급경사를 흐르는 탓에 건너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급류의 흔적들이 섬장암과 현무암 바위에 남아있었다. 바위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둥글게 닳았고 바위로 된 강바닥에 깊이 팬 웅덩이들이 있었다. 이 웅덩이들이 건기에는 저수지 역할을 했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미끌미끌하고 초록빛을 띠며 개구리가 바글거렸지만, 마시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오에 행군을 다시 시작했다. 니암웨지 부족원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노래를 불렀고, 은그와나족 병사들과 하인들, 짐꾼들도 그들과 소리지르기 경쟁이라도 하는 듯 시끄러웠다.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어둑어둑한 숲에 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가모요를 떠난 이후 보았던 어떤 곳 보다 훨씬 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땅은 더 웅장한 물결처럼 출렁였고, 암석이 노출된 산들이 곳곳에 있었다. 곳곳에 성채처럼 쌓여있는 섬장암이 숲에서 한층 더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게 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봉건시대 영국의 어느 지역 근처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바위들이 특이하고 환상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성채처럼 보였던 것은 모든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층층이 쌓인 둥근 바위들이었다. 머지않아 가장 큰 나무보다 더 크고, 끝이 뭉툭한 오벨리스크 모양으로 바람에 깎일 것 같았다. 바위 결정이 유리질로 바뀌며 바위들은 다시 거대한 물결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부서지고 갈라진 바위들이 솟아 여기저기에 작은 언덕과 웅장한 구릉 지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오후 5시, 행군한 거리가 20마일에 가까워지니 멈출 때가 됐다는 신호가 왔다. [6월 9일] 새벽 1시 달이 떠오르자 하메드의 뿔 나팔 소리와 목소리가 적막한 캠프에 울려 퍼졌다. 짐꾼들을 행군하라고 깨우는 소리였다. 셰이크흐 하메드가 완전히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고 그렇게 이른 시간에 행군하라고 미쳐 날뛸 이유가 없었다. 밤이슬이 심하게 내리고 있었고 서리처럼 차가웠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매우 불만스러운 중얼거림이 모든 방향에서 터져 나왔고 뭔가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셰이크흐 트하니와 나는 그가 우리보다 나은 정보를 얻었겠거니 생각하며 이 일이 잘한 일로 판명되든 잘못된 일로 판명되든 상관없이 그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모두 불만스러웠기 때문에 이날 밤 행군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진행됐다. 온도계는 12도를 가리켰고, 우리는 해발 4천5백 피트 높이에 있었다. 거의 알몸인 짐꾼들은 몸을 덥히려고 빨리 걸었고, 그러다 튀어나온 나무뿌리나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리거나 가시덤불을 밟아 발을 다친 사람이 많아졌다. 새벽 3시에 우리는 우니암보기Unyambogi 마을에 도착해서, 날이 밝아 혹사당한 카라반들이 최소한 앞은 볼 수 있을 때까지 휴식을 취하고 눈을 붙이려 바닥에 몸을 내던지듯 누웠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한낮이었다. 해가 이글거리는 빛을 내 얼굴 위로 내리쏘고 있었다. 곧 셰이크 트하니가 와서 하메드가 키티로 떠난 지 두 시간이 되었다고 알렸다. 그도 같이 가자고 권유받았지만 아주 어리석고 완전히 불필요한 짓이라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트하니가 내게 조언을 요청했을 때, 나는 이 모든 일이 완전한 멍청한 짓이라고 동의했다. 그리고 이어 오후 행군의 이유를 그에게 물었다. 나는 오후 행군은 물과 음식을 구할 수 있는 곳에 가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트하니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우니암보기에서는 물이나 음식을 구할 수 없는지 물었다. 트하니는 애써 묻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마타미아matamia와 힌디hindi, 마웨리maweri, 양 등이 풍부하고 우고고에는 알려지지도 않은 염소와 닭 등도 싼값에 구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대답했다.

“글쎄, 그렇다면,” 내가 말했다, “하메드가 자청해서 바보가 되려 하고 자신의 짐꾼들을 죽이려 한다고 해서 우리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나도 셰이크흐 하메드처럼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무척 많지만, 우니아니엠베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미친 사람의 장단에 맞추다 내 재산을 위험에 빠뜨리는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트하니에게 전해 들은 대로 마을에서 풍부한 먹거리를 구했고 근처에 있는 우물에서 마시기에 좋은 물을 찾았다. 양 한 마리의 가격은 1츄카chukka [shukka의 오타로 추정; 1 shukka는 1 yard]였고, 같은 가격에 닭 여섯 마리를 샀다. 마타마와 마웨리, 힌디 여섯 말을 1츄카에 구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드디어 우리는 풍요로운 땅에 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