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3: 탄가니카 호수 탐험 5
간밤의 손실로 매우 침울한 분위기였지만, 우리는 여섯 째 날을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시작했다. 우리는 키그웨나Kigwena강, 키쿠마Kikuma강, 키순웨Kisunwe강 등에 의해 형성된 여러 낮은 곶 가까이로 해안을 따라 항행했고 흥미로워 보이는 만이 있으면 만 안쪽으로 카누의 진로를 틀었다. 수상에서 여행하는 동안 풍경이 매일 비슷했다. 오른쪽에 우룬디의 산맥이 솟아 있었다. 종종 계곡들이 보였고, 강과 시내들은 그 계곡들을 통해 위대한 호수로 물을 방출했다. 산기슭에는 충적토 평원들이 있었고, 평원에는 기름야자나무와 감사한 플랜테인 나무가 풍부했고, 그 나무 그늘 아래 수십 개의 마을이 무리 지어 있었다. 종종 우리는 띠처럼 생긴 길고 좁은 자갈밭과 모래 해변들을 지났는데, 물고기와 각 공동체에서 생산된 생필품들을 파는 장터들이 즉흥적으로 형성되어있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여러 산에서 내려온 많은 시내에 의해 형성된 넓은 늪 같은 습지를 지나갔는데, 마테테와 파피루스가 무성했다. 이제 산맥은 물에 점점 더 가까워졌다. 산맥의 경사면들은 갑자기 물가로 내려왔다 깊은 습곡들 안으로 물러났고, 경사면 기슭에 으레껏 충적토 평원이 보였다. 평원의 폭은 1마일에서 8마일에 달했다. 거의 항상 우리는 전복되어 걸신들린 악어의 먹이가 되는 대참사에 두려움 없이 맞서며 밀려오는 파도 가까이로 힘차게 삿대질을 하며 나아가는 카누들을 목격했다. 때때로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를 앞서가는 카누를 보면, 대원들은 그 배를 따라잡으려 노래를 부르고 합창을 하며 스스로 한껏 힘을 냈다. 우리가 어떻게 노력하는지 목격하기 때문에 원주민 대원들이 자신들의 임무에 전력을 다하는 것일 거다. 게다가 완전한 알몸으로 서서 노를 젓는 원주민들은 한가할 때 우리에게 비교 해부학을 연구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한다. 우리는 또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근처를 지나가는 카누들을 바라보며 물가에서 전나로 게으르게 누워있는 어부 무리를 보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한 카누 소함대를 지나쳐갔다. 배의 주인들은 낚싯대와 낚시 바늘을 부지런히 놀리며 천막 안에 조용히 앉아 있거나, 그들의 그물을 던지거나, 또는 둘이 긴 저인망 그물을 얕은 물 가까이로 끌어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물에서 겁 없이 즐겁게 놀고 있고, 엄마들은 나무 그늘에서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으로 나는 큰 강이 흘러드는 근처가 아니라면 이 호수에는 악어가 많지는 않다고 유추한다.
우리는 키순웨Kisunwe강에 의해 형성된 키순웨의 낮은 돌출부를 지나서 사오 마일 떨어진 무렘브웨Murembwe 곶이 보이는 곳에 왔다. 키순웨 곶과 무렘브웨 곶 사이에 있는 땅은 저지대였는데 모래와 자갈이 있는 해변이었다. 해변에 인구가 많은 것은 그 너머 지역의 인구도 많음을 의미하는데, 해변 가까이에 수십 개의 마을이 있다. 키순웨 곶과 무렘브웨 곶 사이 중간쯤에 마을이 모여있는 곳이 있는데, 비카리Bikari라고 불린다. 그리고 무트와레[추장]가 있는데, 그는 홍가를 받는 버릇이 있다. 우리는 어떤 악의적 경향이 있는 공동체와도 실랑이를 벌일 시간이 조금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지족Wajiji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는 마을은 모두 피했다. 그러나 심지어 지지족 안내원들도 때때로 잘못 알았고, 그래서 우리를 위험한 곳으로 인도한 적이 한 번보다 많다. 무쿤구로부터 두 번째 캠프였음에도 안내원들은 비카리에서 멈추는 것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플랜테인 나무의 시원한 그늘에서 쉬는 것을 허접한 카누 안에서 나무 조각처럼 앉아있는 것보다 무한히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좋은지 싫은지 말하기도 전에 비카리 사람들이 해안으로 와서 커다란 목소리로 우리를 불러냈다. 만일 우리가 멈추지 않으면 그 위대한 와미Wami강의 복수가 있을 거라며 우리를 위협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딱 사이렌 소리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완강하게 그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위협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들은 돌에 의지했다. 따라서 온 힘을 다해 우리에게 돌을 던졌다. 돌 하나가 내 팔에서 1피트 떨어진 곳까지 날아와서, 나는 그 대가로 총알을 그들의 발 가까이 보낼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명백하게 그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이런 식의 적대감의 표현은 환영인사나 다름없고, 그런 신호를 거의 매번 마을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보았기 때문에 우리는 무렘브웨 곶까지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그 곶은 같은 이름을 가진 강의 삼각주인데, 가시투성이 정글, 몸을 찌르는 사탕수수, 빽빽하게 자라는 갈대와 파피루스 등에 의해 잘 보호되고 있었다. 가장 대담한 룬디족 부족원이라도 꽁무니를 빼고, 특히 호락호락하지 않는 습지 너머에 그의 동족이 매우 무례하게 도전장을 던진, 총을 가진 이방인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더욱 뒷걸음을 칠 그런 곳이었다. 우리는 카누를 이 곶의 기슭에 깨끗한 모래가 있는 좁은 지역에 댔다. 우리의 임시변통 요리사 페라지가 불을 피워 우리에게 공급할 매우 맛있는 모카 커피를 제조했다. 여전히 위험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상당히 행복했고, 우리의 식사에 약간의 윤리학으로 맛을 더했다. 윤리학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에워싼 이교도들에 비해 무한히 더 우월한 존재로 우리를 고양시켰다. 우리는 이제 모카 커피와 윤리학에 의해 통제되며 조용히 그들을 경멸하며 그들의 꼭대기를 내려다 보았다. 그들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 하나도 섞여있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박사는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했던 몇 가지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무르익은 경험들을 가진 남자의 분별력을 지녔음에도 그 일들을 아랍인들과 혼혈들의 현명하지 못한 행동 탓으로 돌리는 데 실패하지 않았다. 그 의견에 나는 완전히 동의한다.
우리는 커피와 윤리학에 대한 토론을 끝내고 항해를 이어갔다. 무렘브웨 곶을 떠나 센타케이Sentakeyi 곶을 향해 키를 돌렸다. 8에서 10마일정도 거리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기를 바랐다. 은그와나족은 올바른 의지로 노를 저었다. 하지만 열 시간 넘게 노를 저었고, 밤이 다가오고 있었고, 센타케이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달빛 밝은 밤이었고, 우리가 언제라도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한두 시간 더 노를 젓는 것에 동의했다. 오후[오전으로 추정] 1시경에 아무도 없는 지점을 찾아 해안에 배를 댔다. 가로 30피트 세로 10피트 정도 되는 깨끗한 모래톱이 있었고, 모래톱의 끝에 진흙 제방이 10에서 12피트 높이로 솟아있었고, 양쪽에는 떨어져 나온 바위덩어리들이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의 정적을 유지함으로써 눈에 띄는 것과 그로써 발생하는 귀찮은 상황을 몇 시간 동안은 피할 수 있고, 휴식을 취한 후에 여정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리 주전자는 차를 위해 끓고 있었고, 대원들은 자신들을 위해 작은 모닥불을 지폈고 검은 흙을 빚은 항아리에 포리지porridge를 끓이기 위해 물을 채웠다. 그때 우리 불침번들이 야영지로 다가오고 있는 검은 형체들을 발견했다. 소리쳐 부르니 그들이 즉시 앞으로 나와서 원주민임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와케Wake”라고 인사했다. 우리 안내원들이 우리는 은그와나족이고 아침까지 야영을 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만일 그들이 어떤 것이든 팔 것이 있으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거래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들은 이 말을 들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몇 마디 말을 더 나누고 갔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는 동안 그들이 캠프에 대해 주의 깊게 살피고 있음을 알아챘다. 떠나며 그들은 아침에 음식을 가지고 다시 와서 우리와 친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차를 마시고 있는데, 보초들이 두 번째 무리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들도 첫 번째 무리처럼 인사하고 관찰하는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이들도 과도하게 신이 나서 갔다. 그리고 또 내 예상대로 세 번째 무리가 뒤를 이었고, 그들의 행동도 앞선 다른 무리들과 같았다. 이 상황으로 볼 때 마을에서 마을로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두 척의 카누가 평소와 달리 황급히 이리저리 지나갔음을 눈치했다. 우리에게는 이 상황을 수상히 여길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떤 구실로든 해가 진 후 누군가를 방문해 환영인사를 하는 것은 (적어도 우지지와 잔지바르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관례적인 행위가 아니다. 총에 맞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데 캄캄한 밤에 캠프 주변을 배회하는 것, 이렇게 오고 가는 것, 우룬디의 많은 지역에서는 매우 일상적인 사건일 은그와나족 작은 무리의 도착에 대해 이렇게 과한 기쁨을 표현하는 것 등 모두 매우 의심스러웠다. 박사와 내가 이런 움직임들은 적개심의 서곡이거나 신호라는 결론을 내고 있는 동안 매우 난폭하고 떠들썩한 네 번째 무리가 우리를 방문했다. 우리의 저녁식사는 이 때까지는 끝이 났고, 우리는 지금이 행동을 취할 적시라고 생각했다. 네 번째 무리가 요란하게 기쁨을 표시하고 떠났을 때, 대원들은 서둘러 카누로 갔고,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마지막으로 보초들이 올라탔고, 우리는 조용히 배를 저어 나갔다. 우리의 행동이 성급했다고는 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카누가 우리를 둘러싼 어둡게 변한 빛으로부터 미끄러지고 있을 때 나는 박사의 주의를 몇몇 어두운 형체로 돌리게 했다. 그들 가운데 몇 개는 우리 오른쪽에 있는 바위 뒤에 웅크리고 있었고, 다른 것들은 좋은, 혹은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바위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우리가 있던 곳의 왼쪽에서 의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즉시 한 목소리가 우리가 좀 전까지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모래톱 가장자리에 솟은 진흙 제방 꼭대기에서 우리를 소리쳐 불렀다. “아슬아슬하게 비꼈습니다.”라고 박사가 소리쳤다. 우리는 약탈자가 되려 했던 자들을 혼란스럽게 해놓고 떠나서 쏜살같이 호수를 가로질러 이동했다. 여기에서 다시 내 손은 앞으로는 이방인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경고로 좋은 총알 몇 발을 그들에게 박아두고 싶은 것을 참았다. 필요하면 주저 없이 사격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박사가 내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