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안으로 여행하는 도중 우리에게 일어났던 특정 사건들의 기록 이외에 돌아가는 행군에 대해 반복해 전달하며 독자들을 괴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3월 17일.
우리는 크왈라흐Kwalah강까지 왔다. 마시카Masika 철의 첫 비가 이날 내렸다. 아마도 나는 해안에 도착하기 전에 백분병에 걸릴 것이다. 지난해 마시카는 3월 23일 바가모요에서 시작해서 4월 30일에 끝났었다.
다음날 나는 우니암웨지 경계에 있는 투라Tura 서쪽에서 탐험대를 쉬도록했다. 그리고 20일에 투라 동쪽에 도착했다. 그 후 곧 우리는 커다란 총성을 들었고, 박사의 하인인 수시와 하모이다흐가 우레디Uredi와 다른 내 부하 한 명과 함께 케이프 식민지 관측소의 토마스 맥리어Thomas MacLear 경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과 내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을 들고 나타났다. 그 편지는 다음과 같다.
크위하라, 1872년 3월 15일
친애하는 스탠리에게,
만일 당신이 런던에 도착했을 때 전보를 보낼 수 있다면 로데릭 경의 안부에 대해서는 제발 자세히 알려주었으면 합니다. 당신은 정확히 어제 ‘내가 그 수원들에 대해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하지만 이해하게 되면 즉시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 말 그대로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가파른 언덕에는 튼튼한 심장을 가지고 가라’라는 스코틀랜드 속담보다 더 좋은 말을 해주었더라면 싶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어차피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떠나기 전에 열병이 안전한 형태인 간헐적으로 바뀐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여전히 지속적 형태의 열병을 앓았다면 나는 너무 걱정스러워서 당신을 가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선하신 구세주이자 모든 인간의 아버지께 당신을 보살펴달라고 맡기며 마음이 편안합니다. 당신께 감사하는
데이비드 리빙스턴
나는 카부이레Kabuire부터 다시 카젬베Cazembe까지, 그리고 이어서 바우그웨올로Baugweolo 호수까지 하나로 이어졌던 행군에서 한 관찰들을 옮겨 적으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일했고, 그래서 매우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내 큰 그림들은 풀스캡판[인쇄 용지 크기 중 하나] 종이로 여섯 장이나 됩니다. 다시 복사하려면 많은 날이 소요될 것입니다. 1869년에 아파서 우지지에 있을 때에도 나는 할일을 다 했습니다. 고국에서 사람들이 약간 암중모략을 하더라도 나는 비난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몇몇 아랍 편지들이 도착했고, 나는 그것들을 당신에게 전달합니다.
D. L.
1872년 3월 17일
P.S. 나는 오늘 아침 출판자인 ‘Mr. Murray, 50, Albemarle Street’에게 필요하면 당신이 그 일기장을 보낼 때 서적 우편book post로 보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그네스Agnes에게 보내도록 도와달라는 문서를 하나 작성했습니다. 당신이 그를 방문하면 그가 정직한 신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즐거운 여행을 기원합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
헨리 M. 스탠리 씨에게, 그가 어디에서든 발견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