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유력인사들은 내 불편한 심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내가 불쾌함이나 수모를 느낄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위해, 친구로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는데, 그들은 그런 동맹자를 유기하고 비겁하게 탈주했다. 퇴각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좋은 감정을 훼손했을 만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살람salaam’[오른손 바닥을 이마에 대고 허리를 깊숙이 굽히며 하는 인사법]을 하며 나를 맞았다.
그들 대부분이 자리에 채 앉지 않았지만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쟁은 오로지 당신들과 미람보 사이의 일이다. 나는 당신들이 작은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달아나리라는 의심이 든다. 전쟁은 내가 허비할 수 있는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당신들은 부상자를 그대로 들판에 버려두고 아픈 친구는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내버려 둔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나를 더는 동맹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지금까지 본 당신들의 싸우는 방식에 의하면 이 전쟁은 당신들 생각대로 그렇게 빨리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당신들이 만와 세라Manwa Sera를 굴복시키고 죽이기까지 5년이 걸렸다고 들었다. 분명 1년 안에 미람보를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 전쟁은 1874년 4월 현재까지 여전히 맹렬하게 이어지고 있다.) 나는 백인이다. 그리고 여러 스타일의 전쟁에 익숙하고, 전쟁에 대해 조금은 안다. 하지만 짐비조의 우리 야영지 같은 곳에서 당신들에게 벌어졌던 그 정도의 사소한 전투로 그렇게 달아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도망쳤기 때문에 당신들은 우니아니엠베까지 미람보를 초대한 셈이 됐다. 그는 반드시 올 것이다.’
아랍인들은 너도나도 나를 내버려둘 의도는 없었다고 말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음카시와의 니암웨지족이 ‘무순구’가 떠났다고 소리를 질렀고, 그 말로 인해 공포에 휩싸여서 상황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고 했다.
그날 늦게 아랍인들은 타보라로 철수했다. 타보라는 음푸토에서 22마일 떨어져 있다. 나는 느긋하고 차분하게 일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짐비조에서 도망친 후 둘째 날에 내 탐험대는 짐을 모두 싸서 마산기Masangi로 되돌아갔고 셋째 날에는 크위하라Kwihara까지 갔다.
다음은 내 일기장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수치스럽게 퇴각했던 당시의 내 심정과 생각을 무엇보다도 잘 보여줄 것이다.
1871년 8월 11일 금요일. 크위하라.
봄보마Bomboma의 마을 짐빌리Zimbili에서 오늘 도착했다. 나는 상당히 실망했고, 실망은 거의 절망에 가깝다. 그러나 한가지 위로는 내가 아랍인들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나를 맞으며 베풀었던 친절을 빚졌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의무에서 벗어났으므로 마음껏 내 길을 좇을 자유가 있다. 그 정도의 소소한 희생으로 의무를 다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물론 이 일로 내 목숨을 잃었다 해도 합당한 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아랍인들의 환대에 상응하는 내 의무였기도 했지만, 리빙스턴에게 가기 위해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야 하는 상황에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미람보와의 전쟁으로 막힌 길로 가면 한 달 만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내가 거들어 그 길이 열리면 돕지 않는 것보다 빨리 갈 수 있는데 도움 요청을 거절할 이유가 있나? 이 일은 우지지로 가려는 두 번째 시도였는데, 두 번째 시도 역시 실패다. 나는 또 다른 경로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북쪽 경로는 어리석은 선택일 것이다. 내가 있는 이곳과 우지지 사이에 미람보의 동맹이자 도적 떼인 투타족Watuta 말고도 그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는 무리와 수이족Wasui 있다. 남쪽 경로가 가장 현실적인 것 같다. 그런데 남쪽 지역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곳에 관해 물으니 모두 ‘물 부족’과 강도질을 일삼는 자비라족Wazavira이 심각한 장애물이라고 대답했다.그러나 나는 새로운 경로로 행군을 감행하기에 앞서 새로운 대원들을 구해야 했다. 음푸토로 데려갔던 대원들은 끝까지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한다. 동료 중 다섯 명을 전쟁에서 잃어 여행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니암웨지족을 구했으면 하는 희망은 부질없다. 전쟁 중에 짐꾼으로 카라반을 따라가는 일은 그들의 관습에 반한다. 그래서 지금 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나는 지금 해안지방으로 철수할 좋은 핑곗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미 엄청나게 많은 돈을 쓴 상황에 내 양심은 그런 행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 얻은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실제로 철수를 하느니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8월 12일, 토요일.
그러리라 예상은 했지만, 내 대원들이 떠났다. 그들은 내가 미람보의 길로 우지지로 간다고 하며 그들을 고용했다고 했다. 이제 내게는 13명만이 남았다.이렇게 몇 안 되는 인원으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창고에 100명분이 넘는 짐이 쌓여 있다. 리빙스턴의 카라반 또한 여기에 있다. 그의 물건은 천 꾸러미 7개와 상자 12개, 그리고 구슬 주머니 6개가 전부다. 리빙스턴의 대원들은 이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를 모두 누리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만일 리빙스턴이 우지지에 있다면 그는 지금 탈출할 방법이 거의 없어 갇힌 상태나 마찬가지다. 나 또한 우니아니엠베에 갇힌 상태나 다름없다. 아마도 미람보와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우지지로 갈 수 없을 것이다. 리빙스턴은 그의 카라반이 지금 나와 함께 있기 때문에 물건을 받을 수가 없다. 또한, 잔지바르로 돌아갈 수도 없고, 나일강으로 가는 길은 막혀있다. 만일 그에게 대원들과 비축해둔 물건이 있다면 북쪽으로 이동해서 베이커Baker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룬디Urundi를 통과해서 루안다Ruanda, 카라그와흐Karagwah, 우간다Uganda, 우니오로Unyoro를 거쳐 곤도코로Gondokoro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양식을 구하는 경로가 막혔기 때문에 그는 짐꾼들을 구할 수 없다. 리빙스턴에게는 어떤 정력적인 사람을 뛰어넘는 역량이 있기 때문에, 호위대 없이도, 천이나 구슬 등 팔 수 있는 물건이 계속 공급되지 않더라도 아프리카를 여행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지나친 억측이다.
오늘 어떤 남자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 들었다. 리빙스턴은 니아싸Nyassa 호수에서 탄가니카 호수로 가던 길에 (사람들이 그가 살해당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무렵이다), 울람바Ulamba로 가던 사이드 빈 오마르Sayd bin Omar의 카라반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모함메드 빈 그하리브Mohammed bin Gharib라는 아랍인과 함께 여행하는 중이었다. 이 아랍인은 우룬가Urunga에서 오는 길이었고, 치-쿰비Chi-cumbi 또는 크와-치-쿰비Kwa-chi-kumbi라는 지역에서 리빙스턴을 만나서, 이후에 쭉 함께 여행했다고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마니우에마Manyuema 또는 마니에마Manyema까지 함께 갔단다. 마니우에마 는 니아싸의 북쪽에서 출발하면 40번 행군해서 갈 수 있는 곳이다. 리빙스턴은 도보로 행군했고, 미국산 모슬린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리엠바Liemba 호수를 보트로 건너다 천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에게 카누가 세 척 있었는데, 한 카누에 천을 싣고, 다른 카누에는 상자들과 함께 대원들이 타고, 세 번째 카누에는 그가 하인 두 명, 어부 두 명과 함께 탔다. 그런데 천을 실은 배가 뒤집혔다. 리빙스턴은 니아싸를 떠나 우비사Ubisa로 갔고, 거기에서 우엠바Uemba로 갔다가 다시 우룬구Urungu로 갔다. 리빙스턴은 모자를 썼고, 후장식 2연발 소총 한 정을 소지했는데, 총알이 발사될 때 굉장한 소리가 났다. 또한, 리볼버 2정도 가지고 있었다. 리빙스턴과 함께 있던 히요우족Wahiyow은 처음에는 제 주인에게 대원이 많았으나 몇 사람이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