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5: 집으로, 리빙스턴의 마지막 말과 마지막 작별 14



오후 3시에 우리는 가시투성이 정글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후 5시에 니암자가Nyamzaga 추장이 군림하고 있는 무할라타Muhalata에 도착했다. 내가 친구로 만든 한 고고 부족원이 매우 신뢰할 만했다. 그는 남남동쪽이자 쿨라비Kulabi의 남쪽 있는 물로와Mulowa 출신인데, 봄베이의 도움을 받아 조공 협상을 내게 유리하게 이끄는 것에 적극적이었다. 다음날 우리가 음부미Mvumi로 가는 길에 쿨라비를 지날 때, 고고족은 홍가를 위해 우리를 세우려 했었는데, 그가 자발적으로 더 많은 통행료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 추장에게 우리가 우고고 또는 카니에니이Kanyenyi에서 오는 길이라고 말하자, 추장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지나갔다. 고고족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무역을 하기 위해 온 카라반들에게서 금품을 강제로 걷지는 않는 것 같다.

쿨라비를 떠나서 우리는 헐벗은 붉은 비옥한 평야를 가로지르게 됐다. 평야 위로 우리 앞에 있는 우사가라의 산들에서 불어온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매우 사납게 불었는데, 산들은 검푸른 덩어리가 뒤죽박죽 되어 솟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벨 듯이 날카롭고 매섭고 거세게 부는 그 끔찍한 돌풍은 우리가 매우 얇은 거즈인양 우리 몸을 뚫고 들어와 통과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 엄청난 힘의 ‘페포peppo’ 폭풍과 용감하게 싸우며 우리는 무캄와Mukamwa의 지역을 지났고, 한 하천의 넓은 모래 바닥을 건너 우고고에서 마지막으로 조공을 부과하는 음부미의 영토로 들어갔다.

4월4일, 봄베이와 내 친구 고고 부족원을 고별 조공으로 8도티, 즉 32야드의 천과 함께 그 술탄에게 보내고, 우리는 정글을 통과해 행군했고, 5시간 후에 ‘마렌가 음칼리’의 무인 지대 경계에 있게 됐다. 물이 쓰고 거무스름한 경수인 지역이었다.

나는 캠프에서 세 명의 부하를 잔지바르로 파견했는데 ‘헤럴드’로 보내는 간결한 특전들과 영국영사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들려 보냈다. 그리고 영사에게 부하들을 돌려보낼 때 굶주리고 지치고 곰팡이에 시달리는 대원들이 감사할 만한 호사스러운 것들을 담은 작은 상자를 한두 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세 명의 전령에게 서두르지 않으면 해안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에게 따라 잡힐 수도 있으니 비가 오든 오지 않든, 강이든 홍수가 났든 어떤 이유로도 멈추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열렬히 “인샬라, 바나[신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주인님]”을 외치고 떠났다.

5일, 우리는 크고 열렬한 함성을 지르며 무인지대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은 영원한 정적과 고독이 있지만 고고족 마을들에서 겪어야 하는 불협화음의 거슬리는 소음보다는 훨씬 나았다. 9시간 동안 우리는 이 넓은 함수호의 정글들을 채운 사나운 코뿔소, 소심한 콰가quagga[얼룩말과 비슷한데, 멸종하였다고 함], 그리고 영양 떼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우리의 길을 고수하며 걸었다. 7일에 부슬비를 맞으며 음프와프와Mpwapwa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내 스코틀랜드 출신 조수 파쿼가 죽었다. 우리는 3월 14일부터 4월 7일까지, 즉 휴식을 포함해 24일 안에 영국 법정 마일로 338마일의 놀라운 행군을 수행했다. 그것은 하루 평균 14마일을 조금 넘었다.

파쿼를 맡겨뒀던 음프와프와의 추장 레우콜레Leukole는 파쿼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백인은 당신이 그를 남겨두고 떠난 후 회복되는 것 같았습니다. 5일째 되던 날 그는 일어나서 텐트 밖으로 걸어 나가려 하다 쓰러졌고, 그때부터 계속 상태가 나빠지더니 오후에 잠자리에 든 사람처럼 죽었습니다. 그의 다리와 복부가 상당히 부어있었고, 제 생각에는 넘어질 때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부러진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매우 고통스러운 사람처럼 비명을 질렀고, 그의 하인은 ‘주인님이 자신이 죽어간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커다란 나무 아래로 옮겨서 나뭇잎으로 그를 덮고 그곳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의 하인은 그의 물건과, 소총, 옷, 담요 등을 챙겨 키소크웨흐Kisokweh근처에 있는 한 니암웨지 부족원의 템베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또한 죽었는데, 그곳에서 3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그의 주인의 소총을 우니아니엠베로 가는 어떤 아랍인에게 10도티에 팔았습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입니다.”

그는 이어 내게 파쿼의 시체가 던져진 구덩이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뼈라도 찾아 제대로 된 무덤을 만들어주려고 빈틈없이 살폈지만 조금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우니아니엠베를 떠나기 전에 나는 50명을 고용해서 이틀 동안 돌을 나르게 했고, 그 돌로 쇼의 무덤 주위에 가로 5피트, 세로 8피트 크기로 단단하고 오래 갈 돌 더미를 쌓았다. 박사는 그것이 우니암웨지에서 죽은 첫 번째 백인의 무덤처럼 수백 년은 갈 것이라고 했었다. 우리는 운이 좋지 않았던 파쿼의 유해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많은 양의 돌을 모아서 시냇가에서 가까운 곳에 그럭저럭 더미를 쌓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