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14: 우지지에서 우니아니엠베까지 우리의 여정 4
오전 10시경에 우리는 늙은 추장 키린도Kirindo의 마을에 도착했다. 그는 리빙스턴 박사를 향한 특별한 친절로 유명하다. 반면에 아랍인들에게는 적대적이었다. 아랍인들에게 이런 일은 불가사의였지만, 박사에게는 단순했다. 그는 오직 친절하고 거짓 없는 말만 한다. 반면에 아랍인들은 최소한 추장인 그를 사람도 아닌 듯 대한다.
키린도의 마을은 리우체Liuche강의 어귀에 있다. 이 강 어귀는 매우 넓다. 강은 에스키노메네eschinomenae (pith tree)[Aeschynomene로 추정; 자귀풀속 나무] 숲을 통과하며 서서히 사라진다. 이곳은 해안을 따라 육지로 가는 팀과 호수 위로 가는 팀이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는데, 모두 카누로 1.5마일 떨어진 다른 쪽으로 건너가기 위해서였다. 리우체강 어귀는 우카란가Ukaranga 만을 형성한다. 만의 이름 우카란가인 이유는 반대쪽, 즉 우리가 우리 동료를 옮겨주려는 곳이자 호수에서 몇 백 야드 떨어진 곳에 우카란가의 마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짐은 가장 큰 카누에서 내려졌고 작은 배에 깔끔하게 실렸다. 그리고 선택된 몇 명의 노 젓는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아 박사와 함께 물가에서 멀어졌다. 박사는 우카란가에 캠프를 설치하는 것을 감독할 것이었다. 나는 다루기 힘들고 심술 궂은 당나귀들을 묶어 큰 카누의 바닥에 싣기 위해 남았다. 이것은 전복의 위험을 막아 굶주린 악어들에 의해 꿀꺽 삼켜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조처였다. 악어들은 우리 주변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다음에는 염소 떼가 실렸고, 탈 수 있는 만큼의 최대한의 대원들이 탔다. 나를 포함해 약 30명이 아직 남았고, 카누는 우리를 태우고 가기 위해 다시 돌아올 것이었다.
비록 우리가 위험할 정도로 하마 떼와 근접했기는 했어도 모두 안전하게 우카란가에 도착했다. 넓은 강 어귀를 건너는 일은 네 시간 만에 완료됐다. 당시 리우체 강은 범람한 상태였다.
다음날 우리는 우지지에서 떠날 때와 같은 순서로 남쪽으로 우리 길을 따라갔다. 호수로 가는 팀은 해안에 최대한 가까운 거리를 유지했지만, 바람이나 날씨가 허락하면 우리는 과감하게 탄가니카 호수 해안을 들쑥날쑥하게 만드는 많은 작은 만들에서 멀리 항해했다. 해안들은 최근 내린 비로 아름다운 초록색을 띠었고, 호수의 물들은 위의 파란 하늘을 충실하게 반사했다. 하마들이 엄청 많았다. 이날 눈에 띈 하마들의 귀 아래 주변과 목에는 붉은 원들이 있었다. 괴물처럼 생긴 녀석이 다소 늦게 물에서 나왔다가 자신에게 다가온 카누를 보고 놀랐고, 그래서 물로 뛰어들었는데, 녀석의 몸통을 다 모여주는 멋진 다이빙이었다. 우리는 말라가라지강 입구와 리우체강 입구 중간쯤 물가에서 한 캠프를 보았다. 그것은 사와힐리 부족원Msawahili 인 모함메드 빈 그하리브Mohammed bin Gharib의 것이었다. 그는 리빙스턴이 내게 해준 모험과 여행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했었는데, 중앙 아프리카의 회교도들 중에서 가장 친절하고 가장 좋은 사람 중 한 명으로 꼽았었다. 그는 내게도 친절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보기 드문 얼굴이었고, 평범하지 않는 특징이 보였는데, 바로 성실함이었다.
해안의 초목들은 전진할수록 진짜 열대 지방임을 느끼게 했다. 둥근 지점을 돌 때마다 새로운 아름다운 풍광이 나왔다. 우리가 말라가라지강의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부드러운 백악 같은 돌과 함께 대부분 그런 돌로 형성된 절벽들이 보였고, 파도가 기이한 변덕을 부렸다.
우리는 우카란가에서 18마일을 노를 저어 오후에 말라가라지강 어귀에 도착했다. 해안을 따라 오는 팀은 매우 지친 상태로 오후 5시경에 도착했다.
다음 날은 카라반을 넓은 말라가라지강 어귀를 건너 강의 북쪽으로 2마일 거리에 있는 우리 캠프로 이동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문명 사회는 이 강이 탄가니카 호수와 동쪽 해안 사이의 거리를 단축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강으로 거의 100마일을 이동할 수 있는데, 모든 계절에 우빈자에 있는 키알라까지 항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깊다. 선교사들도 또한 우빈자, 우흐하, 우갈라 등지로 개종 여행을 갈 때 이 강을 이용해 같은 덕을 볼 수 있다. 12월 30일에 길을 계속 따라갔고 카곤고Kagongo, 음비가Mviga, 키보에Kivoe 등의 그림 같은 곶들을 돌며 세 시간 동안 노를 저어 빠르고 탁한 루구푸Rugufu강의 입구에 있는 마을들이 보이는 곳까지 왔다. 여기에서 우리는 카라반을 항상 악어들이 득실거리는 강 어귀를 건너 이동시켜야 했다.
31일 아침, 우리는 카누 한 척을 대원들과 함께 강 건너편에 보이는 두세 마을로 음식을 구해보라고 보냈다. 4도티나 주고 48명인 우리 카라반이 겨우 4일 먹을 식량을 사왔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길을 떠났다. 떠나며 육로 키란고지[길잡이]에게는 우림바Urimba가 우리의 목적지라는 것과 되도록 호숫가에 가까운 길을 고수하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재량 것 최선을 다 해달라고 요청했다. 루구푸강 어귀에서부터 우림바까지 수로로 6일 거리 동안 마을도 없고, 결과적으로 음식도 구할 수 없다. 우리는 우지지로 가는 길에 닥치는 대로 경로를 선택하며 이 강을 상류지점에서 건넜었다. 육로 팀은 우지지를 떠나기 전에 8일치 식량을 확보했었고, 오늘 아침 4일분을 각자에게 나누어주었으니 굶주림의 위험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가파르고 돌출된, 산처럼 생긴 곶이 계속 이어져 있어 육로 팀과 우리 사이의 의사소통이 막힐 것이었다. 독자들은 우리의 이번 여정이 아랍인에 의해서도 사와힐리족에 의해서도 한 번도 시도된 적 없고, 호숫가 대원들의 모든 걸음은 그것이 그들을 어디로 인도할지 완전한 모르는 상태에서 취해졌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키보에Kivoe의 가파른 곶을 돌았다. 그 곶의 뾰족뾰족한 산등성이와 울퉁불퉁한 경사면, 물의 가장자리까지 이어진 우거진 내리막, 그 곳의 매우 아름답고 조용한 후미진 곳 등은 시인의 기질이 있는 사람에게 시적 표현을 분출하게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키보에 만의 삼각파도에도 불구하고 다음 곶인 미조하지Mizohazy 곶을 향해 가야 하는 처지였다. 바람과 파도 때문에 밤새 그 뒤에 머무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미조하지를 지나니 깎아지른 듯이 가파른 카보고Kabogo 곶이 있다. 카보고라는 이름에 미신을 신봉하는 원주민들이 지어낸 미스터리가 엮여 있었는데, 그 카보고는 공포스러운 카보고 강이 아니었다. 우리가 흐하족을 피해 도망치며 루구푸강을 건널 때 엄청난 천둥 소리를 내며 무시무시하게 포효했던 그 카보고 강이 아니라, 바로 우카란가에 있는 뾰족하게 튀어나온 카보고 곶이었던 것이다. 카보고 곶의 단단하고 험악한 바위에 많은 카누가 충돌해왔던 것이다. 우리는 접근을 급하는 카보고 곶의 험악한 바위 벽 가까이로 지나갔고, 탄가니카 호수의 잔잔함에 감사했다. 카보고 근처에 매우 훌륭한, 카누를 만들기에 좋은 음불레 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나무를 벨 특권을 두고 시비를 걸 시끄러운 입을 가진 원주민은 없다.
그 물가를 따라, 그리고 물가에서 약 3피트 위에 있는 카보고의 바위투성이 경사면의 매끄러운 표면 위에서 호수의 최고 수위의 흔적이 매우 분명하게 보였다. 그것은 우기 동안 탄가니카 호수의 수위는 건기에 비해 약 3피트 높고 건기 동안 물이 증발되어 보통 수위로 다시 내려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여정에서 우리가 지났던 많은 강은 듣던 대로 북쪽으로 향하는 어떤 흐름이 있는지 내가 직접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남서풍, 남풍, 또는 남동풍이 부는 동안에는 범람한 갈색 물이 북쪽으로 밀려가는 것이 명백했다. 하지만 한두 번 강들의 어귀를 지날 때, 북서풍과 북풍이 한 번 휙 불고 나면 북쪽으로 밀려갔던 흙탕물이 다시 강 어귀의 남쪽을 향하는 것을 봤다. 그것으로 나는 변덕스러운 바람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탄가니카 호수에 어떤 해류도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