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6: 우고고를 향해 6



5월 8일, 맨 앞에 있는 언덕들을 휘감는 가파르게 경사진 길을 다 오르고 대원들과 동물들은 완전히 기진맥진했다. 정상에 오르니 장엄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풍경은 드넓은 마카타 계곡을 위대한 미술 작품처럼 전시하고 있었다. 빠르게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은사처럼 보였고, 햇빛은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은 물과 부딪혀 경쾌하게 반짝였고, 수천 그루의 야자수는 그 장면에 황홀함을 더했다. 성벽 같은 우루구루Uruguru와 우스와판가Uswapanga 산악지대는 푸르스름하게 어렴풋이 보였지만 산의 규모와 높이가 경외감을 일으켰고, 드넓은 경치의 적절한 배경이 되어주었다.

고개를 서쪽으로 돌리니 우리가 완전히 산악지대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산등성이 위에 다른 산등성이가 있었고, 봉우리 뒤에 다른 봉우리가 있었고, 산들이 서로 팔꿈치로 밀쳐내듯 가까이 있었다. 북쪽, 서쪽, 남쪽 멀리 있는 산 정상들은 유리로 변한 파도처럼 보였다. 이 모든 광경에서 우울하거나 무미건조하게 보이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이 입체모형 같은 경관에서 갑자기 변하거나 놀라운 대비를 이루는 것도 없었다. 한결같은 초록 나무숲이 모든 산등성이와 산봉우리를 덮고 있었다.

해안지방의 평지와 기복이 심한 지역을 성공적으로 행군한 대원들에게 우사가라 산악지대를 지나는 첫날은 적당한 막간 행사 같은 것이었으나 허약해진 상태로 짐을 싣고 걷는 동물들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 레헨네코에서부터 겨우 7마일밖에 안 되는 캠프에 도착하기 전에 당나귀 두 마리를 잃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마카타에게 진 빚의 첫 할부금을 갚은 정도에 불과했었다. 달콤하고 투명한 물은 산골짜기마다 풍부했다. 거대한 화강암 바닥 위로 흘렀고, 때로 질 좋은 붉은 사암 위로 흐르기도 했다. 사암의 무른 입자는 물에 씻겨 떨어져 나와 계곡을 따라 쓸려 내려가서 아래쪽 계곡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또 어떤 골짜기들에서는 물이 돌진하듯 흘러 화강암 바위와 석영 바위에 부딪혀 작은 천둥소리를 내며 포효했다.

5월 9일, 다시 여러 언덕을 오르내리며 계곡 속으로 점점 더 깊숙하게 들어갔다. 빛이 겨우 들어오는 깊이까지 들어가며 오르막 내리막 코스를 걷고 나니, 갑자기 무콘도크와Mukondokwa 계곡이 나타났다. 계곡은 좁고 답답했고, 무성한 줄기가 긴 갈대류의 풀과 여러 가시덤불 등으로 빽빽했다. 또한, 위성류tamarisk 나무가 사악한 메꽃 덩굴과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며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는데, 마치 메꽃 지지대인 듯 메꽃 넝쿨로 칭칭 감겨 있었다.

계곡은 폭이 4분의 1마일밖에 안 되는 곳도 있었고 1마일이나 되는 곳도 있었다. 계곡 양쪽에 급경사를 이루며 솟은 언덕들은 미모사, 아카시아, 위성류 옷을 입고 뱀처럼 구불구불 굽은 강과 계곡을 에워싸고 있었다.

무콘도크와 계곡의 넓은 곳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버튼 대령과 스피크가 1857년에 지나갔던 음부미Mbumi와 카데타마레Kadetamare를 잇는 길을 만나게 되었다 (카데타마레는 추장의 이름이므로 원래는 미손그히Misonghi라고 불러야 한다). 무콘도크와 강의 왼쪽을 따라 걸었다. 길목을 지날 때마다 방향이 남동쪽에서 서쪽, 북쪽, 북동쪽 등으로 바뀌었다. 한 시간쯤 가니 그냥 건널 수 있는 얕은 곳이 나왔다. 그곳에서 강을 건너 30분쯤 행군해서 키오라Kiora에 도착했다.

키오라 마을은 더러웠다. 마을은 바닥은 염소똥 천지였고, 20여 가구 밖에 안 되는 마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수의 아이들이 있었다. 좁은 빈터에 태양은 53도가 넘도록 맹렬히 내리쬈다. 파리, 아는 벌레, 처음 보는 벌레 등등 온갖 벌레가 가득했다. 나는 미리 통지받은 대로 이곳에서 세 번째 카라반을 만났다. 이 카라반은 바가모요에서 장비와 보급품을 매우 잘 갖추고 출발했었다. 그런데 대장이, 다른 사람도 아닌 백인 파쿼가 브라이트 병[현재의 신장염에 해당]으로 다리가 부어 병상에 누운 채 행군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파쿼는 내 목소리를 듣고 텐트 밖으로 비틀거리며 나왔다. 바가모요에서 출발할 때 영민하고 단정했던 내 동료는 첫눈에 몰라 볼 뻔했을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상피병(수종) 때문에 다리는 코끼리 다리처럼 육중했고 2주 동안이나 텐트 밖으로 나온 적이 없어 얼굴은 죽음이 드리운 듯 창백했다. 나는 키오라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바람이 잘 통하는 언덕을 캠핑 장소로 선택했다. 텐트를 치고 나서 동물들을 수습하고, 가시덤불로 보호구역을 만들었다. 남자 4명이 파쿼를 내 텐트로 옮겼다. 왜 병이 났는지 물었지만, 그는 모르겠다고 했다. 어느 곳에도 통증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오른쪽에 가끔 통증을 느끼지 않나?”하고 물었다. “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왼쪽 가슴이 쿡쿡 쑤시거나, 숨이 가쁘거나 하지는 않아?” “아니, 아픈 것 같기도 합니다. 때때로 숨이 가빠지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문제는 다리에 있고, 다리가 거대한 크기로 부은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식욕이 왕성한데, 이상하게 다리에 힘이 없단다.

파쿼에게 얻은 병과 병의 특징에 대한 빈약한 정보를 바탕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의학책을 뒤져서, 다리나 때로 몸이 붓는 증세는 심장이나 간, 또는 신장에 생긴 병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겨우 알아냈다. 하지만 그의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만일 잔지바르에서 매우 흔했던 상피병 때문이 아니라면, 머리가 아픈지, 등이 아픈지, 발이 아픈지, 가슴이 아픈지, 자기 몸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사람을 나 역시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나중에 걷지도 못하는 데다 당나귀 수레는 험한 마카타 계곡을 지나며 망가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짐이 되었지만, 아무튼 나는 키오라에서 그를 따라잡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키오라에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거기 있다가는 곧 죽음이 그에게 닥칠 것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산악지대에서 수레도 없이 못 걷는 환자를 운송할 수 있을지는 상황이 어떻게든 해결해줄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