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6: 우고고를 향해 5



5월의 첫날, 이미 많은 강과 늪지대를 건너느라 기진맥진한 카라반을 이끌고 마카타 지역의 수렁과 물바다를 통과하느라 고군분투했다. 쇼는 여전히 처음 걸렸던 말라리아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병사 자이디Zaidi는 천연두에 걸려 심각하게 아팠다. 봄베이는 간에 병이 생겨 쓸모 없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다. 체격이 건장한 청년 마브루크 살레엠Mabruk Saleem은 봄베이를 따라 마카타 늪지를 헤치고 나갈 힘이 더는 없는 척하며 진흙탕에 누웠다. 힌디 재봉사이자 모험가인 압둘 카데르Abdul Kader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몸을 가진 자들 가운데 가장 병약했다. 그는 ‘힘’이 부족해 늘 어딘가 아팠다. 그가 프랑스어로 이 상황을 표현한 바에 의하면, 그의 ‘힘’은 일할 수 없고 무기력하고 꾀병을 부리지만, 늘 배가 고프다. ‘오! 하느님, 내 탐험대의 모든 대원이 이 사람 같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야 합니다.’라고 내 지친 영혼이 외쳤다. 솔로몬은 아마도 타고난 영감으로 지혜로운 것이지 세상을 관찰해서 지혜로워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경험으로 현명해지고 있다. 진흙과 습기가 게으른 경향이 있는 사람들의 신체적 에너지를 고갈시킬 때 그들을 다시 질서정연하게 제대로 (때로는 과하게) 일하도록 되돌리려면 개 채찍을 그들의 등에 휘두를 수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캠프에서부터 30마일 떨어진 곳까지 마카타 평원이었는데, 평원은 하나의 광대한 늪이 되어있었다. 물의 깊이는 평균 1피트 정도였지만, 우리는 3피트나 4피트 심지어 5피트 깊이 수렁에도 빠진 적도 있었다. 철썩철썩, 텀벙텀벙. 행군을 시작해서부터 물기가 없는 보마[보호구역]를 찾을 때까지 들은 유일한 소리였다. 같은 상황이 이틀 동안 계속되다 마침내 루데와Rudewa 강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루데와강 또한 빠르게 흘러든 빗물이 강둑까지 찰랑찰랑하고 세차게 흘러 건너기 어려운 강이다. 루데와 강의 지류를 건널 때 강의 서쪽 둔덕에 빽빽하게 자라는 눅눅한 갈대 너머로 풍경이 보였다. 물이 엄청나게 넓은 장판처럼 10~12마일까지 떨어진 우사가라Ugasara 산맥의 동쪽 면까지 펼쳐있는데, 물 위에 촘촘히 무리 지어 자라는 수풀 꼭대기가 올라와 있었고, 드문드문 있는 나무의 이파리들이 떠있었다. 불편함과 짜증스러움의 절정은 루데와 강 지류에서부터 5마일을 행군하는 동안이었다. 내가 직접 은그와나족Wangwana과 짐 실은 당나귀들을 몰고 나타나자 짐꾼들이 한 둔덕에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가 캠프냐고 묻자,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서 있냐고 묻자, “우우! 물이 너무 많아요!!”라고 말했다. 한 녀석이 허리를 가로질러 선을 그었다. 우리 앞에 있는 물의 깊이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녀석은 가슴께에 선을 긋고, 어떤 녀석은 목에, 또 다른 녀석은 그의 손을 그의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우리가 수영을 해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갈대 늪지를 5마일이나 수영해야 한다니! 그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들 말이 모두 옳을 리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은그와나족에게 당나귀를 몰고 전진하라고 명령했다. 4피트 깊이의 물을 가로질러 3시간 동안 첨벙대며 걸어서 마른 땅에 도착했고, 마카타 늪지 횡단을 마쳤다. 하지만 마음속에 잊히지 않을 인상을 남긴 이 끔찍한 늪지 때문에 누구도 여행 중의 고됨과 역겨움을 잊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늪지 횡단이 끝났음에도 우리는 그 과정을 여전히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며 마시카 철에 그곳을 지났던 것을 후회했다. 횡단을 마친 날부터 동물들이 거의 매일 두세 마리씩 죽어 나가 마침내 병약한 짐승 다섯 마리만 남았다. 은그와나족과 병사들, 짐꾼들은 다 꼽을 수도 없을 만큼 온갖 병에 걸려 아팠다. 나 또한 무덤 근처까지 갈 만큼 극심한 이질에 걸려서 결국 침상에 눕게 되었었다. 적절한 약을 먹지 않아서 훨씬 더 심하게 앓았던 것 같다. ‘콜리스 브라운의 클로로다인Collis Brown's Chlorodyne’이라고 불리는 조제약을 과신했었다. 결국, 뒤늦게 도버의 가루약Dover’s powder을 먹고 나았다. ‘클로로다인’에 대해 그렇게 많이 듣고 읽었지만, 설사나 극심한 이질의 경우에 어떤 증세이든 완화하는 효과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세 병이나 썼다. 마카타 늪지를 지나는 동안 이질로 희생된 목숨은 둘밖에 없었다. 짐꾼 한 명과 내 동반자인 불쌍한 작은 인도산 개 ‘오마르’였다.

마카타 계곡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진 나무는 오직 팔미라 야자수(Borassus flabelliformis [이 야자수의 학명])였고, 어떤 곳에서는 군락지라고 할 만큼 이 나무가 무리 지어 자랐다. 열매는 우리가 지나갈 때 익지 않았었다. 익었더라면 우리가 귀하게 여기고 즐겼을 것이다. 다른 식물은 여러 종류의 가시나무 덤불과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씨로 덮인 우아하며 늘 푸른 미모사가 있었다.

5월 4일 우리는 레헨네코Rehenneko라는 중요 마을로 향하는 완만한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이 마을은 우리가 우사가라에서 캠프를 설치했던 곳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마을이었다. 마을은 산기슭에 있었고 마을의 풍요로움과 산 공기는 우리에게 안락함과 건강을 약속해주었다. 사각형 모양의 땅에 사람들이 조밀하게 모여 살았다. 대나무와 수숫대로 지붕을 올린 원뿔 모양 오두막들이 두꺼운 흙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인구는 1,000명 정도 됐다. 주변에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마을들이 있었다. 그곳 주민들은 각자 독특한 자신들의 방식대로 살았지만, 그렇게 못마땅해 보이지는 않았다. 여러 시내에 흐르는 물은 깨끗하고 신선하고 수정처럼 투명했다. 시냇물은 마시는 물을 찾는 여행자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리는 소리를 내며 둥근 자갈과 깨끗한 모래 위로 물방울을 일으키며 흘렀다.

대나무는 레헨넨코 근처에서 유용한 크기로 자랐다. 텐트용 기둥이나 반기[인도 등에서 양쪽에 짐을 걸어 옮길 때 쓰는 막대기]로 쓸만했고 한 부대가 쓸 수 있을 만큼 수량도 넉넉했다. 산 비탈에는 건축 용도로 매우 좋은 목재가 될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졌다.

우리는 이 쾌적한 장소에서 4일을 쉬었다. 우사가라Usagara 산악지대를 오르면서 그들의 능력을 시험하기에 앞서 병나고 허약해진 대원들에게 체력을 약간 회복할 시간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