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5: 6



5장. 우크웨레, 우카미, 우도에를 거쳐 우세구흐하로 (6)



사냥 중에 겪은 불행한 모험들


두 번째 날 아침, 행군하는 것 보다 네 번째 카리반을 기다리는 편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버튼은 나를 위해 카올레Kaole와 잔지바르에 사는 반얀 사람들의 약속을 충분히 시험해보았다. 그는 약속한 물품들을 받는데 11개월을 기다렸었다. 내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는 시간이 그렇게 초과되면 안 됐다. 만일 우니아니엠베에서 내 카라반이 그렇게 오래 지체된다면 회복 불가하게 완전히 망하는 것이었다. 네 번째 카라반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사냥감을 모는 즐거움을 좇기로 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사냥에 있어서 초보자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아메리카와 페르시아에 있는 대평원에서 총을 조금 쏘아봤다. 나는 그럼에도 내가 총을 꽤 잘 쏜다고 생각했고 사냥터에서도 사냥감이 적당한 거리에 있다면 약간의 수렵물을 캠프로 가져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리 일행은 탁 트인 공터에서 높이 자란 수풀을 헤치며 1마일을 걸어 밀림 속 빈터에 다다랐다. 사냥감이 숨을 만한 장소를 여기저기 샅샅이 뒤지고 구석에 숨어 사냥감을 기다렸는데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러다 작은 영양들과 하테비스트가 자주 다녀서 생긴 좁은 오솔길을 만나서 그 길을 따라가게 되었다. 길은 밀림으로 이어졌고 밀림을 가르는 물줄기를 따라 아래로 나있었다. 한 시간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 길을 놓쳤고,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려 했으나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주머니 속에 나침반이 있었다. 나침반을 이용해 캠프를 설치한 평원의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아프리카 밀림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는 끔찍하게 힘든 일이었다. 옷이 다 찢겼고 손도 다 긁혔다. 서둘러 사냥을 나가느라 플란넬 파자마 차림에 캔버스 천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있었다. 예상대로 몇 걸음 못 가서 아카시아 호리다acacia horrida 가지가 오른쪽 무릎께에 걸려서, 파자마가 거의 다 찢겨나갔다. 이 경우는 비슷한 백 가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이어서 땅딸막한 콜쿠왈 [kolkuall: 선인장 같은 다년생 식물]이 어깨에 걸렸고, 옷이 찢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몇 야드 더 가니 가시가 많은 알로에를 닮은 식물이 파자마의 다른 쪽 다리를 푹 찢어 망가뜨렸고, 거의 동시에 밧줄처럼 튼튼한 메꽃 줄기에 걸려 넘어져 가시덤불 위에 침대에 누운 자세로 뻗었다. 어쩔 수 없이 냄새 맡는 사냥개처럼 네발로 걸었다. 햇빛 때문에 쓴 토피 [인도의 차양용 모자, 사파리 헬멧이라고도 불린다]는 시시각각 쓰기 어려워졌고 피부는 점점 손상됐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옷은 점점 더 누더기가 되어갔다. 이런 온갖 고생이 전부가 아니었다. 얼얼한 냄새를 풍기는 식물이 있었다. 강한 고약한 냄새 풍기는 것도 모자라 얼굴을 강하게 후려쳤고, 얼굴은 고춧가루를 뿌린 듯 계속 화끈거렸다. 빽빽한 밀림에 갇힌 뜨거운 공기는 숨을 막히게 했다. 온몸의 모든 구멍에서 땀이 흘러내렸고, 누더기가 된 플란넬 파자마는 비에 홀딱 젖은 꼴이 되었다. 마침내 평원으로 돌아와 편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위급한 일이 아니라면 아프리카 밀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 맹세했다.

마간가에 대한 어떤 소식도 없이 둘째 날과 셋째 날이 지나갔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재촉하려 쇼와 봄베이를 보냈다. 넷째 날 아침 그들이 돌아왔고, 이어 굼뜬 마간가와 그의 굼벵이 같은 족속들이 왔다. 질문은 변명만을 끌어낼 뿐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아파서 노동을 감당할 상태가 되기 전에 무리하게 힘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단다. 게다가 자신들이 어쩔 수 없이 캠프에서 하루 더 머물러야 하니, 먼저 킨가루Kingaru에 가서 캠프를 설치하고 그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넌지시 말했다. 나는 그 제안을 듣자마자 나는 캠프를 철거해서 5마일 떨어진 킨가루로 떠났다.


교활한 킨가루 추장


이번에 행군한 지형은 더 울퉁불퉁하며 기복이 심했고, 카라반은 처음으로 밀림을 통과해보는 것이어서 수레를 끌며 많은 문제를 만났다. 바위와 석판에서 피솔라이트 석회암이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쾌적하게 지낼만한 높은 지대로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생각이 맞는다고 인정하듯이 북쪽과 북서쪽에서 우도에Udoe의 보라색 봉우리들과 해발고도가 약 1,500피트에 달하는 딜리마 봉우리Dilima Peak의 정상 나타났다. 그러나 사발 모양으로 푹 패이고 키 큰 옥수수로 덮인 초록 골짜기를 지나자마자, 길은 약간 북서쪽에서 서쪽으로 방향이 바뀌었고, 우리 앞에 펼쳐진 땅은 여전히 물결처럼 너울거렸다.

길게 융기한 지대들 사이의 한 저지대에 킨가루 마을이 있었다. 주변 환경은 말라리아와 열병을 암시하는 듯 보였다. 곧 비를 뿌릴 듯한 구름, 덮칠 듯 위협적인 산등성이, 어둑어둑해서 다소 흐릿하게 보이는 울창한 숲 등이 그곳을 실제 이상으로 끔찍하게 느껴지도록 했을 수 있다. 그러나 도랑 주변에 썩은 물이 고인 웅덩이들이 있는 데다, 우중충한 나무에 둘러싸여 흠뻑 젖은 움푹한 곳에 자리 잡은 이 마을에 대한 내 첫인상은 결코 유쾌할 수 없었다.

캠프 장소를 정하고 텐트를 칠 새도 없이 마시카를 알리는 사나운 전령이 급류를 일으키며 비를 쏟아부었다. 이 비는 최근 동아프리카에 대해 불타오른 열정과 갓 태어난 사랑으로 솟아오른 내 사기를 꺾었다. 하지만 우리는 비가 그렇게 내리는데도 캠프 설치를 끝내고, 짐을 도난과 날씨에 안전하게 보관할 때까지 열심히 일했다. 그러고 나서 빗방울이 흙을 끈적끈적한 진흙으로 만들고, 캠프가 작은 호수와 강으로 바꾸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

밤이 다가오자 캠프 주변의 불쾌함이 절정에 달했으나 비가 멈추자 숲속 여러 마을의 원주민들이 팔만한 물건을 들고 캠프로 몰려들었다. 이들 가운데 맨 먼저 이 마을의 술탄인지 영주인지 추장인지 우두머리인지 하는 사람이, 의무라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인 양, 마을 어른다운 미소를 지으며, 수수 세 자루와 쌀 반 자루를 받아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웃는 표정과 흐릿한 눈, 주름진 이마 뒤로 사기꾼의 영혼이 보였는데, 최상의 교활함이었다. 나는 이 간사한 노인이 쓴 가면과 똑같은 가면을 쓰고 대답했다. “킨가루 추장은 나를 부유한 술탄이라고 불렀소. 만일 내가 부유한 술탄이라면 왜 추장은 내게 더 많은 선물을 가지고 오지 않소? 그런다면 풍성한 보답을 받을 텐데.” 그는 주름진 얼굴로 곁눈질하며 말했다. “킨가루는 가난한 마을입니다. 마을에 수수가 없습니다.” 나는 마을에 수수가 없다면 천 1 슈카shukka, 즉 1야드를 주겠다고 했다. 정확하게 그의 선물에 상당하는 대가였다. 그리고 겨우 작은 바구니 하나에 담긴 물건을 선물이라 부르겠다면 나도 내 천 1야드를 기꺼이 선물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조용히 내 논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