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5: 2



5장. 우크웨레, 우카미, 우도에를 거쳐 우세구흐하로 (2)


다리를 놓다


본격적으로 출발한지 나흘째 날 아침 “출발! 오늘 출발한다! 모두 짐을 실어라!”라는 키란고지의 활기찬 목소리가 캠프에 울렸고, 내 하인 셀림은 메아리처럼 그 말을 따라 했다. 나는 맡은 일을 빨리 하라고 내 대원들을 재촉하고 텐트 걷는 것을 힘껏 도우며 만일 먼저 떠난 내 카라반들이 앞장서서 장애물을 제거해준다면 3개월 안에 우니아니엠베에 캠프를 치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새벽 6시까지 이른 아침 식사가 끝났고, 당나귀와 짐꾼은 일렬로 고네라 캠프를 떠나고 있었다. 시간도 이렇게 이르고 시골 지역인데도 호기심 많은 원주민이 꽤 많이 모여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작별인사인 ‘크와헤리Kwaheri’를 전했다. 내가 타는 적갈색 말은 카라반 행렬에 병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아주 큰 일을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병참 장교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당나귀가 캠프를 떠날 때까지 기다리다, 쇼에게 후미를 맡기고 전속력으로 달려서 몇 분 안에 선두에 설 수 있었다.

길은 보행자를 위한 작은 오솔길을 지나 비옥한 땅으로 이끌었다. 모래가 많이 섞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서툰 솜씨로 곡식과 채소를 파종하고 모종해도 100배나 소출할 수 있는 놀랍도록 비옥한 땅이었다. ‘무화과 나뭇잎 의상을 입은 아담과 이브’에 비교될 만큼 아주 조금 몸을 가린 차림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성의 없이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분명 그들에게는 잘 갖춰 입은 차림새였을 것이다. 우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들을 지나쳤다. 그런데 그들은 웃고 낄낄거리고 집게손가락으로 이것저것을 가리켰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매우 낯설고 기이해 보이나 보다.

높이 자란 수수와 수박, 오이, 카사바밭을 지나서 갈대가 무성한 늪을 건넌지 약 30분 만에 시야가 탁 트인 흑단과 괴불나무 숲에 있었다. 숲속 깊은 곳에는 사슴이 많았고 밤에는 킨가니 강에 사는 하마가 풀을 먹으러 왔다. 숲에서 나온 지 한 시간쯤 지나니 킨가니 계곡이 내려다보였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내 하찮은 상상력으로 그려왔던 장면과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기대를 기분 좋게 벗어나서 상당히 안도감을 느꼈다. 풍경 속에 동서로 4마일, 남북으로 약 8마일 뻗어 있는 계곡이 있었다. 계곡은 문명 세계에서라면 소를 기르기에 매우 좋은 목초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비옥한 땅에 야생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도록 방치된 채로 나침반이 가리키는 모든 방향의 시계를 어둡게 만드는 우거진 숲으로 에워 쌓여서 울창한 산줄기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카라반 지나는 소리에 붉은 영양이 좌우로 뛰어 도망갔고 개구리들은 울음을 멈추었다. 태양은 이글거리며 빛을 발했다. 그 계곡을 지나며 아프리카의 진정한 극한 더위를 약간 경험했다. 계곡을 반쯤 지났을 때 물이 빠지지 않아 고여 있는 배수로를 만났다. 배수로는 카라반이 지나가야 할 길 한 가운데에 있었는데 늪으로 변해 있었다. 짐꾼들은 급히 이미 놓여있는 다리를 건넜다. 셴시족Washensi 가운데 몇몇 착한 사마리아인이 오래전에 급조해 놓은 다리였다. 그런데 참 어이없게도 만들어 놓았다. 들쑥날쑥하고 포크처럼 갈라진 말뚝 위에 울퉁불퉁한 나뭇가지 몇 개를 놓았다. 이 다리가 그날 우리 카라반 짐꾼의 인내심을 시험했듯이, 보나 마나 많은 니암웨지족 짐꾼의 인내심을 시험해왔을 것이다. 우리는 바가모요와 고네라 사이에 있는 물웅덩이에서 신중해야 함을 이미 배웠었기 때문에 힘이 약한 동물들에서 짐을 내렸다. 하지만 이 일로 오래 지연되지는 않았다. 대원들은 쇼의 감독하에 민첩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곧 물이 탁하고 하마 서식지로 유명한 킨가니 강에 곧 이르렀고, 오른쪽 강둑을 따라 정글 속을 이리저리 누비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깊이를 측정할 수 검은 진흙 수렁을 막고 있는 좁은 수문을 만나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수문의 길이는 고작 8피트 정도였어도 폭이 좁아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말과 동물 중 가장 체구가 작은 당나귀를 두 발로 걷는 짐꾼들처럼 두 다리로 수문을 건너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얼마 못 가서 곧 비틀거리며 쓰러질 텐데 무턱대고 수문 위로 몰아넣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안전하게 건너는 방법은 다리를 짓는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다리를 만들어두면 변화를 수용하려 하지 않는 이 땅에 수 세대 동안 백인의 작품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이곳에서 미제 도끼로 다리를 짓는 작업에 착수했다. 최상품 도끼의 도끼질 소리가 세계의 바로 이곳에서 울려 퍼졌다. 문명을 선도하는 백인이 있는 곳이라면 곤경은 반드시 사라져야 하기 때문에 다리는 빠르게 만들어졌다. 우선 여섯 개의 튼튼한 나무를 강을 가로질러 놓고 그 위에 나무와 반대 방향으로 15개의 짐 안장을 놓고 그 위를 풀로 두껍게 덮었다. 동물이 모두 안전하게 다리를 건넜다. 그날 아침 첨벙거리며 수로를 건너는데 걸린 시간의 1/3밖에 걸리지 않았다.

킨가니 강은 여기에서부터 북쪽으로 흘렀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강의 오른쪽 강변 아래로 나있었다. 거인 갈대와 엄청난 넝쿨 식물이 얽혀있는 정글을 뚫고 그 방향으로 반 마일을 가니 나루터가 나타났다. 다시 동물에 실은 짐을 내려야 했다. 나루터의 깊은 진흙탕 물을 보았을 때 나는 진심으로 마술봉을 가진 모세의 능력이든 알라딘의 반지든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내게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다면 나와 내 일행이 문제없이 강 건너편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모세의 마술봉도 알라딘의 반지도 없는 형편이라 즉시 강을 건너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하찮고 속된 일에 고귀한 것을 소망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