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5: 10



5장. 우크웨레, 우카미, 우도에를 거쳐 우세구흐하로 (10)



‘사자 왕’의 도시




다음 날 아침 동서로 놓인 운게렌게리 강의 계곡을 따라 행군을 시작하고 2시간 만에 우세구흐하Useguhha의 수도인 심밤웬니Simbamwenni [현재 탄자니아의 주요 상업지역인 Morogoro시]의 성벽 가까이 아래쪽으로 지나갔다. 우루구루 산맥의 서쪽 산기슭에서 성벽에 둘러싸인 이 도시를 처음으로 보았다. 매우 아름답고 훌륭한 계곡이 있었고, 두 강과 주변 산들을 비옥하게 하는 이슬과 구름으로 증류된 맑은 물이 흐르는 여러 시냇물에 의해 물이 공급됐다. 우리는 동아프리카에서 이런 도시를 만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했었다. 페르시아의 마잔데란Mazanderan에서 이런 장면을 보았었는데 그곳은 기대했던 대로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이 도시의 인구는 3천명 정도이고 집은 1,000채 정도 된다.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밀집해있다 보니 인구가 5천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시에 있는 집들은 단연 아프리카 스타일이지만, 최고의 건축 방식으로 지어졌다. 여러 성채는 페르시아식 설계와 아라비아식 스타일을 결합해 건설했다. 페르시아에서 말을 타고 950마일을 달려보았지만, 심밤웬니 보다 더 튼튼하게 요새화된 소도시를 대도시 밖에서 본 적이 없다. 페르시아 요새들은 진흙으로 축조되었다. 심지어 카스빈Kasvin, 테헤란Teheran, 이스파안Ispahan, 쉬라즈Shiraz 요새도 진흙으로 쌓았다. 그런데 심밤웬니의 요새는 돌로 지어졌고, 머스킷 총을 위한 총안들이 두 줄 뚫려있었다. 이 도시의 면적은 2분의 1제곱마일 정도고, 형태는 사각형이었다. 돌로 잘 지은 탑이 네 귀퉁이를 지키고 있었다. 두 탑의 중간쯤에 있으며 중요 지점을 마주하는 4개의 성문은 거주자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아프리카 티크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육중한 사각형 성문은 닫혀있고, 매우 세밀하고 복잡한 아랍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문양을 보니 잔지바르나 인근 해안에서 만들어져서 심밤웬니로 조각조각 운반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바가모요과 심밤웬니 사이에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이곳 장인들이 지나치게 장식적인 이 작품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성문만큼 정교하지는 않아도, 같은 솜씨로 끌로 깎고 조각한 문이 큰 집들에 달린 것이 눈에 띄기도 했다. 술탄의 궁전은 해안가에서 유행하는 건축양식을 따랐다. 지붕은 길게 경사졌고, 처마는 넓었고, 정면에는 베란다가 있었다.

술탄의 왕비는 유명한 키사벵고Kisabengo의 큰딸이다. 키사벵고는 납치를 일삼아서 우도에, 우카미, 우크웨레, 킹가루, 우크웬니, 키랑가-와나 등 이 일대에서 악명이 높다. 키사벵고는 테오도르Theodore의 축소판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의 능력으로 명성을 얻었고, 현란한 말솜씨와 즐겁고 능수능란한 연설 등으로 도망친 노예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잔지바르 술탄의 처벌을 피해 도망쳐 우카미Ukami에 도착했다. 당시 우카미는 우크웨레에서 우사가라Usagara까지 이르는 지역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땅을 정복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그 결과 카미족Wakami에게 운게렌게리 계곡에 있는 광대한 비옥한 지역을 양도받았다. 양도받은 땅에서 가장 좋은, 성벽 가까이 아래 쪽에 강이 흐르는 곳에 수도를 건설하고 ‘심밤웬니’라 불렀다. 심밤웬니는 ‘사자’ 또는 ‘가장 강한 도시’라는 뜻이었다. 강도와 납치로 성공한 그는 나이 들어 악명 높은 카사벵고라는 이름 대신에 자신이 세운 도시의 이름을 따서 심밤웬니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큰딸이 뒤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시의 이름을 큰딸에게 물려주었다. 그래서 현재 술탄의 왕비가 심밤웬니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고, 또한 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말했듯이 강은 성벽 가까이 흘렀고, 우리가 빠른 강물을 건너는 동안 심밤웬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무순구[백인]’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좋은 기회가 있었다. 그 무순구의 여러 카라반이 이미 앞서 지나갔고 아무런 제약이 없었던 그들은 변명의 여지 없이 그들의 백인 나리의 부와 능력에 대한 소문을 퍼뜨렸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두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강가에서 천 명이 넘는 원주민이 한꺼번에 위압적인, 오만한, 교활한, 약삭빠른, 품위 있는, 격의 없는 등 ‘시선’의 모든 양상을 보이며 온갖 시제와 법을 동원해 표현해야 할 ‘빤히 보다’라는 동작을 했다. 술탄의 왕비의 전사들은 한 손으로 창이나 활 또는 머스킷 총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니수스와 에우리알루스’나 ‘다몬과 피디아스’ 또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인 듯 각자의 짝을 안고, 내 옷차림이나 피부색에 대한 여러 의견을 은밀히 주고받았다. ‘무순구 쿠바Musungu kuba’ [mkubwa(great)라는 단어의 음역으로 보임]라는 단어는 이곳 사람들에게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음악이 쥐들에게 매력적이었던 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무순구 쿠바는 강 건너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을 매우 많이 끌어들이는 데 공헌했다. 나는 4마일 떨어진 운게렌게리로 가면서 그들로부터 벗어나기 전에 하멜른의 재앙이 반복될까 봐 겁이 났다. 그러나 다행히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결국 그들은 다음 캠핑 장소까지 가는 땡볕이 내리쬐는 길에서는 정복할 수 있는 상대로 판명됐다.

우리는 짐을 철저히 점검하고 안장을 수리하고, 게다가 등이 헌 당나귀들을 치료해야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이틀 동안 머물기로 결정했다. 식량은 비싼 편이었지만 역시 심밤웬니라서 풍부했다.

둘째 날 아칸소에서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늪에 적응했어도 동아프리카의 무쿤구루mukunguru [간헐열; 말라리아 등의 증세] 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간헐열을 경고하는 증세가 오전 10시에 느껴졌다. 처음에는 잠이 오고 전신이 나른했다. 다음에는 허리에서 시작한 통증이 척추와 늑골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고, 어깨에 끔찍한 통증이 지속됐다. 마지막으로 전신에 오한이 오더니, 곧 머리가 무겁고, 눈물이 나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고, 시야가 흐려져서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물체가 뒤틀리거나 변형되어 보였다. 이런 상태가 밤 10시까지 계속되다 사라졌고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통증이 발생한 이후 3일간 계속 아침에 아칸소에서 경험으로 배운 방법으로 치료했는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15그레인 [grain; 무게의 단위; 약 0.065g]짜리 키니네를 세 번으로 나누어서 5그레인씩 새벽부터 정오까지 2시간 간격으로 복용했다. 단, 첫 번째 약은 전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복용한 하제의 효과가 나타난 즉시 복용했다. 나는 이 치료법이 내 경우와 내 캠프에서 일어난 모든 다른 경우에 완벽하게 성공적이었다고 덧붙이고 싶다. 무쿤구루가 발생했지만, 치료법을 알게 되어 다시 발생할까 두렵지 않았다. 적어도 며칠 동안은 그랬다.

3일째 되던 날 술탄의 왕비 심밤웬니의 사절이 캠프를 방문했다. 그들은 그녀의 대리인들로서 공물을 받으러 왔다. 그녀는 자신이 공물을 강제할 만큼 충분히 힘이 세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러나 심밤웬니 왕비뿐만 아니라 그들은 ‘카라반 주인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관행이고 우리는 단 한 번만 내면 된다고 알고 있으며, 다른 백인(파쿼)이 이미 냈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기 때문에, 다시 공물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알았다는 뜻으로 “은게마Ngema”라고 대답했고, 내 답을 왕비에게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사실상 결코 ‘알았다’라는 뜻이 아니었다. 다음 장에서 심밤웬니라는 여자가 공물을 받아내기 위해 내게 닥친 불운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보게 될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해안에 접한 지역을 횡단하는 동안 경험했던 사건을 기록한 장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