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4: 바가모요에서의 생활 4



통역관은 파견된 지 삼 일째 되는 날에 편지와 더불어 인심 좋은 웨브 영사가 보낸 풍성한 선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특출하다는 젊은이 수르 하드지 팔루는 타리아 토판의 편지를 받자마자 내게 와서 타리아 토판에게 최대한 빨리 우니아니엠베까지 가는 140명의 짐꾼을 구해주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수십 명의 아랍 상인들과 스와힐리 상인들도 내륙에서 나오는 카라반을 호시탐탐 노리며 짐꾼을 구하고 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짐꾼 한 명당 80야드인 20도티의 천을 준다고 했다. 더 많이 주길 원치 않고, 줄 수도 없는 형편인 상인 중 다수는 필요한 짐꾼을 다 구하려 길게는 6개월을 기다리기도 한다고 했다. 빨리 떠나길 원하면 25~40도티는 지급해야 하고, 그런다면 “한 달 안에 당신을 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에 짐꾼에게 지급할 천이 있소. 1,750달러어치, 즉 3,500도티요. 140명에게 25도티씩 주기에 충분하오. 나는 25도티 이상은 줄 수 없소. 내 천과 철사를 가지고 우니아니엠베로 갈 짐꾼 140명을 보내주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이 지금까지 받아본 적 없을 풍부한 선물로 당신을 기쁘게 해줄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신선한 순박함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그 ‘젊은이’는 자신은 아무 선물도 원하지 않으며 내가 원하는 만큼 짐꾼을 구해주겠다고 말했다. 그가 그렇게 해준다면 나는 ‘와순구(백인들)’에게 그가 참 훌륭한 젊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일이 많아질 테니 그는 사업이 번창하는 혜택을 받게 될 것일 것이다. 그는 놀랍게도 벌써 집에 10명의 짐꾼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하고 대답을 끝맺었다. 만일 내가 천 네 꾸러미와 구슬 두 자루, 철사 스무 다발을 그의 집으로 운반해 놓는 것을 허락한다면, 확보해둔 짐꾼들은 병사 세 명의 호위 하에 다음 날이라도 바가모요를 떠날 수 있다고 했다.

대규모 카라반을 한 번에 보내는 것보다 소규모 카라반을 여러 번 보내는 편이 비용도 적게 들고 훨씬 낫다고 했다. “큰 카라반은 공격받기 쉽고 탐욕스러운 추장들의 정말 사소한 트집 때문에 일정이 지연되기 일쑤지만, 작은 카라반은 그들이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지나갑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천과 구슬은 마땅히 수르 하드지 팔루의 집으로 운반되었고, 나는 속으로 내 행운을 홀로 축하하며 그 날을 보냈다. 젊은 힌디 청년의 사업 재능을 칭찬했고, 바가모요 출발을 앞당길 수 있게 도와준 타리아 토판의 위대함 및 영향력과 웨브 영사의 너그러움을 칭송했다. 나는 수르 하드지 팔루에게 후하게 사례하리라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내 책에도 그에 대한 엄청난 찬사를 쓸 작정이었다. 그리고 기꺼이 짐꾼들을 우니아니엠베까지 호위할 병사들을 준비해 주었다.

우니아니엠베로 향하는 첫 카라반을 준비하면서 동아프리카를 탐험했던 선배들이 알지 못했던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잔지바르에서 천을 준비할 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우선 추장들에게 진상하는 ‘홍가honga’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진상 물은 최상급 천이어야 하고, 개별적으로 따로 포장해야 했다. 추장들은 탐욕스럽기도 하지만 매우 까탈스럽기 때문이다. 그들은 짐꾼 용의 허접스러운 천은 받지 않겠지만 지나치게 가격이 높은 최고의 다브와니dabwani, 이스마힐리Ismahili, 레하니Rehani, 소하리Sohari나 심홍색 광폭 천은 받을 것이다. 첫 번째 카라반을 위한 진상물을 준비하는 데 25달러가 들었다. 파견해야 할 짐꾼이 140명이 넘는 상황이라, 달러는 1달러에 최소한 25센트를 제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진상물을 다 준비하자면 금화로 330달러에 달할 것이다. 나는 다른 여행자들을 위해 이런 사실을 소상히 밝힌다.

내 첫 번째 카라반이 나보다 먼저 따로 출발하기 전에 훌륭한 젊은이 수르 하드지 팔루와 나는 돈 문제를 명확히 하기로 했었다. 카라반이 떠나기로 한 날 아침 수르 하드지 팔루는 내 오두막으로 와서 순수하고 진중한 얼굴로 그의 청구서를 내밀었다. 우니아니엠베까지 인당 25도티에 짐꾼을 공급하기로 했으니 현금으로 쳐서 즉시 비용을 달라고 청했다. 내가 당연하게 느꼈을 놀라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 똑똑하게 생긴 젊은이는 우리가 전날 아침에 주고받은 구두 계약을 잊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 계약에 따르면 내 텐트에 저장된 3,000도티 중에 짐꾼을 고용하기 위한 용도로 구매된 천이 있으니, 바가모요에서 우니아니엠베까지 가는 짐꾼으로 내게 고용된 모든 사람은 저기 내 텐트에 쌓여있는 천으로 임금을 받아야 한다. 내가 계약을 기억하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가 계약을 이렇게 빨리 깨는 이유는 내게 자신의 천을 팔고 싶어서였다. 자신의 천을 짐꾼들에게 임금으로 주고, 내게는 내 천 대신 돈을 받길 원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돈을 주지 않고 그가 이해해야 할 점을 분명히 전달했다. 그는 내게 짐꾼을 구해주고, 내 짐꾼은 내 천을 임금으로 받는다. 내가 주려고 생각한 돈은 그가 내 대리인으로서 겪은 어려움에 대해 내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대가가 전부이다. 그리고 오로지 그런 조건으로 이번에든 혹은 다음에든 그는 내 대리인으로 일할 것이다. 그리고 ‘무순구’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실제로는 앞 단락에 쓰인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이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을 요약한 것이다. 30분 정도 성난 언쟁이 있었고 수르 하드지 팔루는 만일 자기 천을 받지 않는다면 내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맹세하더니, 통곡하고, 간청하고, 처절히 참회하는 등 온갖 수작을 부렸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 그러지 않을 거면 아예 손을 떼라.” 그랬더니 상황이 해결됐다. 행복한 결말이었다. 수르 하드지 팔루는 카라반 병사 세 명의 음식과 진상용 천을 가지고 밝은 얼굴로 떠났다. 이 일이 잘 끝나서 다행이었다. 뒤를 이어 벌어진 비슷한 분쟁들도 그렇게 평화롭게 끝났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바가모요에서 그렇게 빨리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 이 일로 바가모요에서 머무른 시간 전부를 소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말이 나온 김에 천박한 수르 하드지 팔루와 그가 내 일에 연루되어 벌어진 일을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