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4: 바가모요에서의 생활 3
알리 빈 살림이 약속한 짐꾼 140명을 구해주기를 최대한 인내하며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병에 걸리기 딱 좋은 이 해안 지역을 통과하는 데 필요하리라 예상되는 것들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준비하는 데 열중했다. 끔찍한 열병에 기가 꺾이고 여행의 즐거움을 모두 빼앗기기 전에 이 지역을 통과하기 위해서였다. 바가모요에서의 짧은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부족하고 과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하루는 한밤중에 폭우를 동반한 돌풍이 몰아쳤다. 내 텐트 안에는 1,500달러어치의 짐꾼용 천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굵은 능직 천으로 만든 텐트가 체처럼 비를 그대로 통과시켜서 천이 흠뻑 젖어 있었다. 능직 텐트는 폐기하고 5번 대마 캔버스 천으로 텐트를 다시 만들었다. 그러고 나니 내 천 꾸러미와 1년 치 탄약은 무사하리라 안심이 되었다. 또한, 마시카도 문제없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잔지바르에 있는 동안 나는 짐을 꾸리는 방법도 제대로 몰랐고 서둘러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중매 상인 제타Jetta의 의견을 따라 짐을 꾸렸다. 그가 운반용 짐을 꾸려본 경험도 많고 나보다는 더 잘 판단하겠거니 생각했었다. 제타는 꾸러미의 무게를 재지 않았다. 그저 메리카니Merikani, 카니키Kaniki, 바르사티Barsati, 잠다니Jamdani, 조호Joho, 이스마힐리Ismahili 등의 천을 번갈아 층층이 쌓고 한꺼번에 밧줄로 묶었다. 한두 명의 짐꾼이 캠프에 와서 임금을 놓고 흥정을 시작했다. 그들은 계약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짐 꾸러미를 보자고 했다. 그들은 짐을 들어보더니 그냥 놔두고 가버렸다. 소금장수의 믿을 만한 용수철저울을 설치해서 짐 꾸러미 하나를 달아보았더니 눈금이 105파운드, 즉 3프라실라흐frasilah를 가리켰다. 35파운드에 해당하는 1프라실라흐나 더 나갔다. 꾸러미를 일일이 다 달아보니 제타가 온갖 경험이 있지만, 이 일을 대충 처리해서 내게 상당한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호위대 병사들을 투입해서 짐을 풀어 다음과 같이 다시 쌌다. 잔지바르에서 30야드 한 필에 2.75달러에 팔리는 메리카니를 1도티씩, 즉 4야드씩 잘라서 펼쳤다. 온전한 메리카니 한 필을 나슈아Nashua와 살렘Salem 공장에서 준 대로 두 번 접는 대신, 우리는 세 부분으로 접에 접힌 폭이 1피트로 만들어 맨 아래층에 놓으니 무게는 9파운드가 되었다. 두 번째 층에는 여섯 필의 카니키를 놓았다. 프랑스 재킷용 천이나 미국 블루진과 비슷한 파란색 천 종류지만 훨씬 가볍다. 세 번째 층에는 메리카니 한 필을 놓고, 네 번째 층에는 카니키 여섯 필을, 다섯 번째 층에는 메리카니, 여섯 번째 층에는 이전처럼 카니키 여섯 필, 일곱 번째 층에는 마지막 메리카니 한 필을 놓았다. 그러니 메리카니 4필, 36파운드, 카니키 18필, 역시 36파운드, 합해서 72파운드이므로 2프라실라흐를 살짝 넘었다. 층층이 쌓은 옷감을 천 위에 올려놓고 각 모서리는 다른 모서리와 매듭지어 한 덩어리로 만들었다. 코코넛 겉껍질에서 채취한 섬유로 만든 코이어 밧줄coir-rope을 구매했고, 남자 두 명이 짐을 두드려 단단히 만드는 용도의 나무망치를 가지고 선원이 돛을 동여매듯 꼼꼼하고 단단하게 짐을 묶었다.
완성된 짐은 가로 3.5피트, 세로 1피트, 높이 1피트인 단단한 직육면체 덩어리였다. 우니아니엠베까지 운반해야 할 82개의 짐 가운데 40개에는 메리카니와 카니키만 있었다. 다른 42개에는 메리카니와 날염 된 천이 있었는데, 홍가honga, 즉 공물로 쓸 것이고 또한 우니아니엠베에서 우지지로 가는 짐꾼과 우지지에서 더 깊이 들어가는 짐꾼을 구할 때 쓸 것이었다.
알리 빈 살림이 짐꾼들을 데려오겠다고 내게 요청했던 15일이 지났지만 내 캠프에서 짐꾼은커녕 짐꾼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황소고집 마브루키를 알리 빈 살림에게 보냈다. 내 안부를 전하고 그가 자신의 말을 지켰더라면 하는 내 아쉬움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30분 만에 마브루키가 그 아랍인의 대답을 가지고 돌아왔다. 며칠 안에 모두 모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브루키가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주인님Bana, 저는 그를 믿지 않습니다. 그는 내게 다 들릴 만큼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습니다. ‘내가 왜 무순구(백인)의 짐꾼을 구해줘야 해? 세이드 부르그하쉬 술탄은 내게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 제마다르에게 보낸 거잖아. 내가 왜 그 때문에 번거로워야 해? 술탄에게 짐꾼을 구해주라는 편지를 나한테 직접 보내라고 해. 그러면 이틀 안에 짐꾼들을 구해주지.’”
무언가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리 빈 살림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는 백인에게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이 경솔한 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나는 말을 타고 그의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가서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물었다.
알리 빈 살림의 대답은 마브루키가 그의 얼굴처럼 시커먼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브루키는 그런 비슷한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기꺼이 내 노예이자 짐꾼이 되고자 했었다. 나는 그쯤에서 번드르르한 알리의 말을 멈추고 내 뜻을 전했다. 나는 당신을 짐꾼으로 조차 고용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고,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달라고 술탄을 귀찮게 할 마음이 조금도 없으며, 당신처럼 나를 한 번이라도 속인 사람은 어떤 일에도 절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므로 ‘알리 빈 살림’이라는 사람은 내 캠프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좋을 것이며, 절대 대리인을 통해서도 내 캠프로 들어오지 말라고 알렸다.
나는 바가모요 근처 작은 마을 카올레Kaole에서 15일을 까먹었다. 그곳 제마다르인 사두르Sadur는 술탄의 편지를 받고 한 번 방문하더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을에 있는 철통 같은 자기 집에 틀어박혀 내 사정을 조금도 살펴주지 않았다. 루드하 담지의 수하에 있는 카올레 세관 직원 나란지Naranji에게 루드하의 말을 전하며 짐꾼을 구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방금 어떻게 알리 빈 살림의 손에 놀아났는지 말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잔지바르의 위대한 상인이자 마호메트교를 믿는 힌디 사람인 타리아 토판이 내게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바가모요에서 짐꾼 구하는데 최고라 손꼽히는 수르 하드지 팔루Soor Hadji Palloo라는 젊은이에게 편지 한 장을 써주겠다고 했었다.
나는 타리아 토판이 약속했던, 오래 지체된 소개장을 웨브 영사가 주선해서 받아 보내주면 좋겠다는 매우 간절한 요청과 함께 아랍인 통역관을 다우 배에 실어 잔지바르로 보냈다. 그것이 내 손 안에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