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4: 바가모요에서의 생활 2
선교회는 도시에서 북쪽으로 족히 반 마일은 떨어져 있다. 선교회가 사용하는 가옥이 15~16채나 돼서 마을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열 명 넘는 신부와 신부 수만큼의 수녀가 있다. 모두 원주민들의 두개골cranium 안에 지성의 불꽃을 피우려 공을 들인다. 선교회에 200여 명의 소년, 소녀 학생들이 있는데 가장 나이 많은 학생부터 가장 어린 학생까지 모두 유용한 교육을 받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눈으로 그런 사실을 확인하니 그들의 노력이 매우 성공적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신부들과 초대된 손님에게 제공된 저녁 식사는 파리 일류호텔의 만찬 코스처럼 다양한 코스로 구성되었고 음식 솜씨도 손색없었지만, 분위기는 결코 따라갈 수 없었다. 신부들은 포타주와 앙트레의 맞을 즐기는 것과 더불어, 호라티우스Horace, 하피스Hafiz, 바이런Byron 등이 찬양하는 삶의 요소가 결핍된 상황을 그저 방치하고 있지는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동아프리카에서 클리꼬Clicquot 샴페인이라니! 라피트Lafitte, 라로즈La Rose, 부르고뉴Burgundy, 보르도Bordeaux 와인 모두 1등급 품질이었다. 신부들의 온순하고 겸손한 눈빛은 포도주의 영향을 받아도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아, 저 신부들은 인생을 이해하고, 삶이 지속됨을 감사하는구나!’ 그들의 호사스러운 만찬은 아프리카 정글 열병을 문밖으로 몰아내고 공포감과 함께 불현듯 찾아 드는 우울함과 고독을 위로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불 켜진 환한 방을 나와 아프리카 밤의 어둠의 심연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오직 개구리와 귀뚜라미의 지긋지긋한 단조로운 소리와 멀리 들리는 하이에나의 처량한 울음소리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아프리카의 밤 속으로 말이다. 기분을 북돋우는 루비 빛깔 액체의 도움 없이 아프리카의 원시적 생활에서 오는 우울함을 견디며 항상 유쾌하고 온화하고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지내려면 초인적 능력이 필요하다.
저녁 식사로 다시 기운을 차렸고, 나는 깊은 감사를 느꼈다. 상급반 학생 20명이 금관악기를 들고 앞으로 나와서 제대로 된 악단 대형으로 섰다. 놀랍게도 그토록 천방지축 비이성적인 아이들이 조화로운 소리를 내며 악기를 연주했다. 유명한 프랑스 음악을 이런 고립된 항구 도시에서 듣게 되다니.... 몇 달 전만 해도 무식한 엄마에게 물려받은 전통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니그로 소년들이 똑바로 서서 생땅트완느Saint-Antoine의 빈민가 출신 냉혹한 부랑아들처럼 태연자약하게 프랑스의 용맹함과 영광을 노래한다. 이 모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나는 그날 밤 즐겁게 휴식을 취하고 원기를 회복했다.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삶을 즐길 의지로 충만해서 새벽에 내 캠프로 돌아왔다. 그런데 동물들을 세어보니 당나귀 두 마리가 부족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돈으로 쓸 물건을 장부와 대조해 보니 6번 철사 한 사리가 없어졌다. 밤에 해안가를 배회하는 좀도둑이 많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모두 바닥에 곯아떨어져 잔 것이 분명했다. 중심가와 이웃 동네를 수색하라고 병사들을 풀었다. 제마다르 에사우에게 이 일을 알리자 약속한 사례금에 혹해서 당나귀를 찾으려 애썼다. 밤이 되기 전에 당나귀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도시의 밖에서 카사바 잎을 뜯어먹다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마리와 철사 한 사리는 끝내 찾지 못했다.
바가모요에서의 첫날인 오늘 방문객 중에는 알리 빈 살림Ali bin Salim이 있었다. 그는 예전에 ‘버튼·스피크 탐험대’, 그리고 뒤이은 ‘스피크·그랜트 탐험대’의 카라반 가이드Ras Kafilah로 유명한 사이드 빈 살림Sayd bin Salim의 형제였다. 그의 살람Salaam [이마에 손을 대고 몸을 굽혀서 인사하는 이슬람교도 식 인사법]에서 온정이 흘러넘쳤을 뿐만 아니라 그의 형제가 우니암웨지Unyamwezi에서 내 대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 나는 돕겠다는 그의 제안을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 흰 피부와 무턱대고 사람을 믿는 천성은 참 딱한 노릇이었다. 알고 보니 이 알리 빈 살림이란 자는 수풀 속 뱀이자 내게는 매우 아픈 가시였다. 그는 커피를 함께하자고 안락한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그의 집에서 마신 커피는 설탕을 넣지 않아도 훌륭했지만, 그가 한 많은 약속은 모두 쓰레기였다.
“저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나는 당신께 뭔가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그가 말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니암웨지 부족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알아 필요한 짐꾼들을 구해서 빠르게 보내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형제는 와순구Wasungu(백인들)['wa-'는 부족 전체를 의미하는 접두어. wasungu(wazungu)는 백인 전체를 의미]를 잘 알고 백인은 약속한 것을 꼭 보상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게 짐꾼 140명을 구해주면 당신에게 마땅한 사례를 하겠습니다.”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지금 내가 너그럽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파충류 같은 인간이 그럴싸한 말로 정중한 척하며 말했다. “내 친구여, 나는 그깟 대수롭지 않은 일로 당신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쉬십시오. 당신은 여기에서 15일 이상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당신의 짐을 점검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좋은 아침을 기원했고 곧 우니아니엠베로 떠날 생각에 한껏 기분이 들떴었다.
내가 바가모요에서 최대한 빠르게 탐험대를 이끌고 떠나려 모든 에너지를 바쳤던 데는 충분히 그럴 만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내가 리빙스턴 박사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 박사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우지지Ujiji에 도착하고 싶었다. 내 느낌에 박사는 우리 사이 거리를 좁히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최대한 늘리려 노력할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내 소식이 그의 귀에 들어가면 내 긴 여행은 헛수고로 끝날 것이었다.
다음 이유는 마시카Masika, 즉, 우기였다. 우기가 곧 내게 닥칠 상황이었다. 만일 바가모요에서 우기를 만나면 출발이 우기가 끝날 때까지 지연될 수 있고, 그러면 40일이 늦어진다는 뜻이었다. 과장된 정보일지 모르나 지금까지 만나본 모든 사람에 의하면 마시카가 시작되면 40일간 쉬지 않고 비가 내린다고 했다. 우기가 공포의 대상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비에 관한 온갖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의 비를 생각하면 축축함, 곰팡이, 말라리아, 류머티즘 등과 같은 불쾌함이 동시에 떠오른다. 영국의 비는 우울증을 일으키는 끔찍한 가랑비였다. 그리고 아비시니아Abyssinia의 우기는 하늘의 수문을 열었다. 몇 시간 만에 대륙이 반쯤 물에 잠길 정도로 전체적으로 비를 퍼부었다. 마지막으로 인도에는 몬순이 있었다. 이 비는 하찮아도 사람을 꾸준히 집에 가둬두었다. 동아프리카의 끔찍한 마시카는 이들 중 어떤 형태의 비와 견줄 수 있을까? 버튼 대위는 우자라모Uzaramo 지역의 검은 진흙에 대해 많이 쓰지 않았던가? 좋은 날씨에도 검은 진흙이라 불리는 땅이 40일간 내리는 비에 젖으면 도대체 어떤 상태가 될까? 짐꾼과 당나귀의 발은 진흙 범벅이 되지 않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알리 빈 살림은 약속대로 다음 날 캠프를 방문했다. 매우 잘난 척을 하며 쌓여있는 천 꾸러미들을 보더니, 가마니로 다시 싸야 한다고 내게 알려왔다. 가마니가 얼마나 필요한지 측량할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며, 가격은 자신이 알아서 잘 봐줄 테니 조금도 깎지 말라고 내게 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