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3: 탐험대를 꾸리다 4
동아프리카 여행자들이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에 관해 쓴 책을 모두 탐독했기 때문에 리빙스턴 박사를 찾는 동안 겪을 여러 어려움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 모든 문제를 예방하는 방법은 계속 생각하고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인간의 지혜가 문득 답을 제시할 수도 있다.
칸네아Kannea 왕이 오만을 떨거나 하메드 빈 술라이얌Hamed bin Sulayyam이 변덕을 부려 호수를 건너는데 협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과연 나는 우지지에서 탄가니카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며 호수를 건널 방법이 없다며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 것인가? 고민 끝에 결국 그런 돌발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보트를 직접 가져가기로 했다. 보트만 있으면 리빙스턴 박사가 탄가니카 호수 위에 있다 해도 얼마든지 내 보트를 띄워서 그를 만나러 갈 수 있는 일이다.
미국 영사를 통해 80달러를 주고 큰 보드 한 척을 구했다. 사람 스무 명과 답사 한 번 하는데 필요한 식량 등 물품을 넉넉히 실을 수 있는 크기였다. 작은 보트는 40달러에 다른 미국 신사를 통해 구했다. 여섯 명을 태우고 비품을 인원수에 맞게 적당히 실을 수 있는 크기였다.
나는 보트를 그대로 통째로 운반할 생각이 아니었다. 보트에서 보드들을 떼어내고 프레임과 가로장[thwarts; 노 젓는 사람이 앉는 부분]만을 가져갈 생각이다. 보드 대신 타르를 잘 먹인 두 겹의 캔버스 천을 보트에 씌울 생각이었다. 보드를 제거하고 분해하는 일은 내가 해야 했다. 나는 이 사소한 일에 닷새 동안이나 매달려야 했다.
분해한 보트를 짐꾼들이 옮기기 편하게 잘 쌌다. 짐마다 모두 무게를 달아보고 한 덩어리가 68파운드를 넘지 않게 했다. 존 쇼는 캔버스 보트를 만들며 써보지 못했던 솜씨를 마음껏 발휘했다. 완성되자 프레임에 완벽히 딱 맞았다. 여기에 들어간 영국산 대마 3호로 짠 캔버스 천 여섯 필은 루드하 담지Ludha Damji에게 구했는데, 그가 술탄의 저장고에서 공급받은 천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빠른 이동을 방해하는 장애물 중에 넘기 어려운 것은 짐꾼의 부족이다. 내가 지휘하는 탐험의 주요 목표는 속도였기 때문에 내 임무는 이 장애물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었다. 짐꾼들은 대륙에 있는 바가모요에 도착해서야 고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좋은 당나귀 20여 마리는 이미 준비했으니 수레를 아프리카의 좁은 길에 적합하게 만들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수레 한 대를 제작했다. 크기는 가로 18인치, 세로 5피트였고, 경량 미제 마차의 앞바퀴 두 개를 달았다. 이 수레는 무엇보다도 좁은 무기 상자를 운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또한, 우니아니엠베까지 4프라실라흐(140파운드)를 옮길 수 있는 당나귀가 수레를 이용하면 틀림없이 8프라실라흐까지 옮기리라 생각했다. 짐꾼으로 그만큼을 옮기려면 건장하더라도 네 명은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해보면 내 이론들이 맞는지 틀리는지 좋은지 나쁜지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구매가 끝났다. 여기엔 조리도구들이 한 무더기가, 저기엔 로프, 텐트, 안장 등을 꾸린 꾸러미들이, 또 다른 곳엔 상상 가능한 모든 것이 담긴 여행 가방과 상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제 고백하건대 온갖 물건이 여기저기 층층이 줄줄이 쌓여 있는 모습에 무분별하게 마구 사들인 것이 아닌가 다소 당황스러웠었다. 무게가 6톤을 넘다니! ‘아프리카의 거대한 호수와 바다 사이에 끝없이 펼쳐진 미개척지를 가로질러야 하는데, 발이 달려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아닌 이것들을 모두 가지고 가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오늘 몫의 근심이 충분히 있는 법’, 내일의 근심을 빌어올 필요는 없었다. 모든 의심은 거두고 공격 개시!
이 여행자[저자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는 그가 여러 다른 나라에서 늘 하던 것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는 긴 항해를 떠나려는 배가 반드시 그러해야 하듯 꼭 필요한 만큼의 물건을 가지고 가야 한다. 그는 음식 통조림에서 약품까지 온갖 일상용품을 가져가야 한다. 게다가 유사시 싸움이 어어 지더라도 이길 수 있는 충분한 총기와 탄약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는 이런 잡동사니들을 옮길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 명이 들어봐야 고작 70파운드니, 11,000파운드를 옮겨야 하는 그에게는 거의 160명이 필요하다.
유럽이나 동아시아는 물론 심지어 아라비아나 투르케스탄Turkestan도 아프리카와 비교하면 품위 있게 여행할 수 있다. 순금(금화)은 어느 나라에서든 통용되기 때문에, 여행자는 짐꾼 없이 혼자서 돈을 가지고 다니며 여행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프리카나 중앙아프리카에서는 1센트 대신에 목걸이를 요구한다. 50센트나 1플로린[florin: 영국 2실링 은화] 대신에 미국산 면직물 2야드, 금화 1개 대신 두꺼운 황동 철사로 만든 팔찌d인 키틴디kitindi를 달라고 한다.
이 아프리카 여행자는 내륙으로 들어가는데 마차도 낙타도 말도 노새도 이용할 수 없다. 그가 이용할 수 있는 운송수단은 까맣고 벌거벗은 남자들로 제한된다. 그리고 70파운드씩 겨우 우니아니엠베까지 운반하면서 두 당 적어도 15달러를 달라고 한다.
탐험가 선배들이 아프리카로 향하는 후배들에게 매우 중요한데도 빠뜨리고 알려주지 않은 정보는 금화가 아닌 다른 형태의 돈을 가지고 잔지바르로 오겠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신용장, 순회어음circular note 등과 같은 개화된 화폐는 아마도 100년 후에나 잔지바르 사람들에게 통할 것이다.
수표를 쓸 때마다 1달러당 20에서 25센트를 공제한다. 이 점은 내가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맹세할 일은 아닐지라도 정말 못마땅하다. 잔지바르는 유럽 상거래의 모든 방식과는 매우 동떨어진 지역이기 때문에 주화를 귀하게 여겨 높은 웃돈이 붙어있다. 아무리 사정을 이야기하고 간청을 해도 물건을 살 때 환어음, 수표, 순회 어음, 신용장, 백지 위임장 등을 가지고 있다면 무조건 1달러당 20, 25 또는 30센트가 공제된다고 들었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여기에 은행 지점 하나가 없다는 것은 참 유감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