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3: 탐험대를 꾸리다 5
나는 아무도 모르게 아프리카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백인이, 심지어 미국인이 아프리카로 들어가려 한다는 사실은 곧 잔지바르 전역에 펴졌다. 그 말은 거리에서 사람들 사이에 수천 번 회자되었고, 모든 상점의 뒷방과 세관에 공공연히 알려졌다. 바자르bazaar 본토박이 상인들은 내가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 내 일을 자신들의 기회로 삼아보려 했고, 밤이고 낮이고 이 일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유럽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내가 무슨 이유로 잔지바르에 왔다 가는지 궁금해 몸이 달았다.
내 대답이 적절한지 부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모든 질문에 대해서 나는 아프리카에 갈 계획이라고만 답했다. 비록 내 명함에는 “헨리 M. 스탠리, 뉴욕 헤럴드”라고 찍혀있지만, “뉴욕 헤럴드”를 보고 내가 “리빙스턴 박사"를 추적하리라 연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 가엾은 나! 탐험을 혼자 시작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맹렬하고 무자비한 태양이 뿜어내는 타는 듯한 열기 속에서 이 가게 저 가게로 뛰어다녔다. 납빛 얼굴을 한 힌디와 흥정하고 말다툼하며 넓고 깊은 인내심으로 나 자신을 단련했다. 극악무도한 인도 고아Goa 지방 출신을 닦달하고 교활한 반얀 사람과 담판을 짓기 위해 용기와 지혜를 모았다. 하루 종일 부피에 관해 이야기하고 예산을 고치고 결재하고 구매한 물건이 제대로 배달됐는지 감독했다. 모든 것이 규격에 맞는지 치수와 무게를 쟀다. 탐험에 쓰일 당나귀의 안장, 돛, 텐트, 보트 등을 손보느라 바쁜 백인 파쿼와 쇼를 감독했다. 날이 저물면 몸이며 머리며 마땅히 푹 쉴 자격이 있다고 느껴질 만큼 녹초가 됐다. 그와 같은 노동을 한 달 동안 쉴 새 없이 계속했다.
제임스 고든 베넷 편집장이 발행한 어음을 직물, 구슬, 철사, 당나귀, 기타 천여 가지 필수품 등 수천 달러에 해당하는 물건과 바꾸었다. 백인 대원과 흑인 호위병에게 미리 지급하기로 한 급료도 주었다. 준비하며 벌어진 소동으로 웨브 영사와 가족들을 필요 이상으로 괴롭혔고, 영사의 집을 내 물건으로 가득 채웠다. 이제 바가모요로 떠나는 배에 오르기 전에 할 일은 유럽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작별을 고하고 많은 도움을 주었던 술탄과 신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잔지바르를 떠나기 전날 미국 영사는 격식을 갖추어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최고급 검은 모자를 쓰고 나와 함께 술탄의 궁전으로 갔다. 술탄은 그간 나를 너그럽게 대해주었다. 아랍산 말을 선물해주었고 그의 대리인들과 주요 신하들, 내륙 지역 대표들에게 소개장을 써주었다. 그 밖에도 많은 다른 방법으로 호의를 표현해주었다.
궁전은 웅장하고 넓고 우뚝 솟은 정방형 건물로 요새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산호로 지어졌고 석회 반죽이 두껍게 입혀져 있었다. 외형은 반은 아랍식이고 반은 이탈리아식 같았다. 창에 달린 산뜻한 초록색의 베네치아식 블라인드는 흰 회벽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크고 높은 대문 앞에 발루치족Baluch과 페르시아 출신 용병들이 두 개의 초승달 모양의 대형으로 정렬해 있는데, 모두 굽은 칼과 코뿔소 가죽으로 만든 원형 방패targe로 무장했다. 그들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황토 빛이 감도는 흰색 면 셔츠를 입고 은제 징이 박혀있는 두꺼운 가죽 벨트를 차고 있었다.
용병은 우리가 시야에 들어오자 대문 안에 있는 사람에게 신호를 보냈다. 우리가 현관에서 20야드 내로 진입하자 서서 기다리던 술탄이 신하들을 지나쳐 계단으로 내려와서 환영의 온화한 미소를 띠고 오른손을 내밀며 다가왔다. 우리는 모자를 벗어 들어올리고 악수하고 나서 그가 청하는 대로 앞으로 가서 출입문에 가까이 있는 가장 높은 계단까지 들어갔다. 그는 앞쪽을 가리켰다. 우리는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칠하지 않은 좁은 계단 밑까지 와서 다시 한번 술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영사는 몸을 비스듬히 돌려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내게 그 모습은 예의를 지키되 위엄을 잃지 않으려 의도한 걸음걸이로 보였다. 우리는 계단의 꼭대기에서 올라오는 술탄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기다렸다. 술탄은 다시 관대하게 앞서가라고 손짓했다. 우리 앞에 연회장과 술탄의 공식 알현실throne-room이 있었다.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천정이 높고 아라비아 스타일로 채색되고 페르시아 산 두꺼운 양탄자가 깔린 방이 나타났다. 금을 입힌 의자가 10여 개 있었고 천정에는 샹들리에가 달려있었다.
우리는 자리로 안내되었다. 루드하 담지Ludha Damji가 술탄의 오른쪽에 앉았다. 그는 반얀 사람으로 관세 징수를 담당했고 날카롭고 명석하고 위엄 있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루드하 담지 옆에는 위대한 이슬람교도 상인 타리아 토판Tarya Topan이 앉았다. 그가 이 공식 접견에 참석한 이유는 술탄의 자문위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이번 미국 탐험대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었다. 루드하 담지 맞은 편에는 웨브 영사가 앉았고 나는 영사 옆, 즉 타리아 토판의 맞은 편에 앉게 되었다. 술탄은 미국인들과 자문위원들 중간에 있는 금을 입힌 의자에 앉았다. 통역관 조하리는 우리가 술탄과 나눠야 할 대화를 언제라도 통역할 수 있게 겸손한 자세로 술탄 앞에 서서 대기했다.
머리에 두른 빨강, 노랑, 갈색, 흰색을 번갈아 말아 올린 풍성한 여러 겹의 터번을 제외하고 옷차림만 보면, 술탄은 정말로 밍그렐리아족Mingrelian [조지아의 소수 민족] 신사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가 입은 긴 가운은 짙은 색 천으로 만들어졌고, 허리에 값비싼 검대sword-belt가 둘려 있었고, 금 손잡이가 달린 언월도scimtar가 칼집에 넣어진 채로 달려있었다. 칼집 역시 금장식이 화려했다. 맨살이 드러난 그의 다리와 발은 몸집에 비해 육중해 보였는데, 상피병elephantiasis [열대, 아열대 지방에 많은 풍토병으로 환부가 부풀어 오르고 딱딱해져 코끼리의 피부처럼 되는 병]이라는 잔지바르의 기이한 저주에 걸려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에는 밑창이 두껍고 발등 앞쪽에 튼튼한 가죽 띠가 있는 와타watta [아랍어. 슬리퍼]가 신겨있었다. 피부색은 밝았고 지적인 분위기의 균형 잡힌 이목구비를 가진 적절한 용모는 그가 아랍 귀족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찌 됐던 모든 것이 그가 고귀한 혈통을 타고 났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상냥하고 분위기에 매우 만족하는 표정을 제외한다면 성격을 짐작할 만한 어떤 특징도 보이지 않는다.
이게 바로 내가 본 잔지바르, 펨바와 더불어 소말리 땅에서 모잠비크에 이르는 아프리카 동쪽 해변을 통치하는 술탄 세이드 부르그하쉬Seyd Burghash의 모습이다.
커피가 나왔다. 커피 잔에는 손잡이가 없고 잔이 담긴 황금 받침대에 손잡이가 있었다. 또한, 약간의 코코넛밀크와 달고 진한 맛의 셔벗도 나왔다.
영사를 향한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됐다. “영사, 잘 지내오?”
영사가 대답했다. “잘 지냅니다, 감사합니다. 전하는 어떠십니까?”
술탄이 대답했다. “매우 좋소.”
술탄이 내게 물었다. “잘 지내오?”
나는 대답했다. “매우 잘 지냅니다. 감사합니다!”
영사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임무를 소개했다. 뒤이어 내 여행에 대해 술탄의 질문이 이어졌다.
“페르시아는 어땠소?”
“케르벨라Kerbela, 바그다드, 마스르Masr와 스탐불Stamboul을 보았소?”
“투르크족은 병사들이 많소?”
“페르시아 땅은 비옥하오?”
“잔지바르는 어떻소?”
모든 질문에 흡족해할 만한 답을 하자, 술탄은 바가모요와 카올레Kaole에 있는 관리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소개장을 건넸다. 또한, 여행 도중 만날지도 모르는 모든 아랍 상인들에게 보여줄 일반적인 소개장도 주었다. 그리고 내게 성공을 기원하는 덕담을 마지막으로 모임을 마무리했다.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무엇이든 완벽하게 성공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그가 있는 곳에서 나올 때도 들어갈 때와 비슷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그는 대문까지 나와서 우리를 배웅했다.
잔지바르에서 오래 거주하고 있는 미국 세일럼 출신 상인 굿휴는 작별을 고하자 순종 밤색 말 한 마리를 선물로 주었다. 남아프리카 희망봉에서 수입됐는데, 잔지바르에서 적어도 500달러는 하는 말이었다.
2월 4일. 2월 4일까지, 그러니까 잔지바르에 도착 한 날부터 28일 만에 ‘뉴욕 헤럴드 탐험대’를 구성하고 장비를 갖추는 일이 끝났다. 텐트와 안장은 제작했고 보트와 돛도 다 준비했다. 당나귀와 말들은 빨리 떠나고 싶어 안달하며 울어댔다
나는 예의상 한 번 더 내 명함을 잔지바르에 있는 유럽인과 미국 영사관에 돌려야 했다. 그러느라 모든 사람에게 다시 한번 작별을 고해야 했다.
2월 5일. 미국 영사관 앞에서 다우 배 4척의 닻을 올렸다. 한 척에는 말 두 마리를 실었다. 다른 두 척에는 당나귀들을 실었다. 마지막 가장 큰 네 번째 배에는 흑인 호위병들을 태웠고, 엄청난 부피를 차지하는 탐험에 쓰일 ‘돈’, 즉 물물교환에 사용될 물건들을 실었다.
정오에 조금 못미처서 우리는 항해를 시작했다. 마음씨 따뜻한 웨브 여사가 선물한 미국 국기가 돛대 꼭대기에서 펄럭였다. 웨브 영사 부부와 명랑한 아이들 메리와 찰리는 영사관 옥상에서 작별의 뜻으로 별 무늬 현수막과 모자, 손수건 등을 나와 내 대원들을 향해 흔들었다. 행복하고 선한 사람들! 그들과 우리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또한, 우리 모두에게 신의 은총이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