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2018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서: 02: 잔지바르에서 3



잔지바르에서 반얀 다음으로 권력을 가진 부류는 힌디, 즉 힌디어를 쓰는 이슬람교도이다. 힌디는 거래를 할 때 반얀만큼 사악하게 작정하고 속이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늘 그 말에 의구심이 든다. 아무튼, 내가 힌디가 반얀보다는 낫다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마지못한 것이지 흔쾌한 마음은 아니다. 이 인도 부족은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악당 수십 명을 대줄 수 있다. 하지만 정직한 상인은 단 한 명밖에 대줄 수 없다. 타리아 토판Tarya Topan이라는 사람인데, 희든 검든 붉든 노랗든, 모든 인종을 망라해서 가장 정직하다고 꼽힌다. 잔지바르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정직하고 엄격하고 흠 없이 사업하는 본보기로 여겨진다. 그의 부는 어마어마하다. 여러 척의 선박과 다우 배가 있고, 술탄의 자문위원회에서도 돋보이는 존재이다. 타리아는 자식을 많이 두었는데 그 중 장성한 아들이 두세 명 있고 그들에게 자신의 호위를 맡긴다. 심지어 혼자 있을 때도 그들을 보초 세운다. 하지만 타리아는 적어도 너무 적은 소수 인종의 대표일 뿐이다.

아랍인, 반얀, 힌디는 상류층이나 중산층에 속한다. 이 계층은 부동산과 배를 소유하고 사업을 한다. 혼혈이나 니그로는 이들에게 허리를 굽힌다.

이 섬의 여러 인종의 주민 중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구성원은 니그로이다. 그들은 잔지바르 원주민이거나 스와힐리족, 소말리족, 코모로족, 니암웨지족, 또는 기타 아프리카 내륙 부족 출신이다.

아프리카 내륙 깊숙이 들어가려는 백인 이방인에게 니암웨지족과 스와힐리족이 거주하는 니그로 구역들을 걷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니그로가 피부색은 달라도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고 인정해야 할 필요성을 배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도 모든 인간 본성에 공통적인 열정과 편견, 좋은 것과 싫은 것, 공감과 반감, 취향과 느낌 등이 있다. 그런 사실을 빨리 알아차리고 잘 적응하면 할수록, 내륙에서 여러 인종을 맞닥뜨리며 해야 하는 여행이 더 쉬울 것이다. 타고난 성품이 유연하면 할수록 여행은 더욱 순조로울 것이다.

미국 남부의 니그로들 속에서 얼마 동안 살긴 했어도 교육은 북부식으로 받았다. 미국에서 흑인을 만났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친구라고 불렀다. 나는 흑인이라도 인간다움과 좋은 품성을 지녔다면 친구로 심지어는 형제로 인정하고 같은 피부색에 같은 인종인 것처럼 존중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피부색이나 다른 신체적 특성을 이유로 흑인도 나도 똑같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제한당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교도의 땅 아프리카의 검은 야만인들... 그들도 서로의 눈에는 사랑할 만한 구석이 보이는 걸까? 이 사람들, 아니 이 야만인들도 나처럼 친절이나 분노를 느낄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이 사는 구역을 돌아보고 행동을 관찰하면서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그들도 열정, 사랑, 미움 등의 감정에 나처럼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게 돼서 훨씬 안도하게 됐다. 또는 아무리 열심히 관찰해도 그들과 내 본성 사이에 있는 큰 차이점을 발견하는 데 실패했다.’라고 가식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을까?

니그로들은 아마 섬 전체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할 것이다. 그들은 노예건 노예가 아니건 노동자 계층이다. 노예인 니그로는 주인에게 땅이 있으면 농장이나 저택, 정원 등에서 일하고, 그렇지 않으면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짐꾼으로 일한다. 도시 외곽에서 그들이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머리 위에 엄청난 짐을 지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대우를 받았거나 짐이 가벼워서 신이 난 것이 아니다. 명랑하고 걱정 근심 없는 것은 그들의 천성이다. 그들은 허락되지 않는 기쁨이나 희망을 제멋대로 품지도 않을뿐더러 분에 넘치는 야망을 간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헛된 희망으로 좌절할 일도 없고 실망이라는 것도 모른다.

도시에서는 니그로 짐꾼들이 짝지어 정향 자루나 물품 상자 등을 상점에서 창고로, 창고에서 해변으로 운반하는 소리가 수시로 들릴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북돋우느라 또는 맨발로 이 거리 저 거리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보조를 맞추느라 단조로운 곡조를 읊조린다. 오래지 않아 이들을 마치 오랜 지인인 양 즉각 구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각자 자신들만의 곡조가 있고 늘 한결같다. 나는 한 쌍의 짐꾼이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가락을 읊조리며 영사관 창문 밑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는 그 노래가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마음을 끄는 힘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있었고, 나는 그 노래가 그들의 의도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