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2020

시칠리아 여행: 31: 팔레르모: 노르만 궁전 왕실 정원 giardini reali



버스에서 내려 호주 부부와 인사하고 노르만 궁전으로 갔다. 궁전 보러 왔던 날에 보지 못했던 왕실 정원이 보고 싶었다. 식물에 대한 지식은 없어도 나름 식물 lover이다. 불·멍, 물·멍이라는 신조어가 있던데 나는 나무·멍, 꽃·멍을 얼마든지 때릴 수 있다. 왕실 정원이라니 예쁜 식물들이 많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문 닫을 시간까지 1시간이 있으니 볼 수 있을 것 같다. 매표소로 가서 표를 달라니 표를 더 이상 팔지 않는단다. 아직 관람시간이 남지 않았느냐, 내일 집으로 가기 때문에 지금 아니면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선량한 아저씨가 성화에 못이겨 표를 준다. 이겼다. 이겨야 할 나쁜 놈은 못 이기고 착한 사람만 이겨먹는다.^^


[노르만 궁전. 왕실 정원에서 보이는 포르타 누오바 지붕] 



건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데 궁전 입구를 통해 들어가야 해서 보안 검사를 받아야 하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니 무전기로 내 목적지를 미리 연락 받은 직원들이 정원 방향을 알려준다. 내가 혹시나 궁전으로 들어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 같다. 비행기가 연착해서 환승 시간에 늦었을 때를 떠오르게 했다. 착륙 전 승무원에게 상황을 말했더니, 제일 먼저 내리게 해주었고, 지점마다 무전기를 든 안내원이 대기하고 있어 나는 그들을 따라 무조건 뛰기만 하면 됐었다. 그 때만큼이나 긴박해 보인다. 참나...




정원. 평소에 욕 좀 하는 사람이었으면 저절로 욕이 나왔을 거다. 이것들이 진짜... 왕실 정원이라니... 정원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을 매표원의 눈에는 내가 참 이상하게 보였을 것 같다. 그까짓 것 보자고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일까 했을 것 같다. 궁전 뒤에 있을 뿐, 길거리 지나가다가도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공원이다. 관리도 안 되어있고 특별히 볼 것도 별로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구석구석을 살피는데, 청소라도 좀 하지 하는 말이 또 나온다. 버려진 화분, 가드닝 도구, 장식품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이곳을 보겠다는 열정이 공연한 호들갑으로 판명(?)돼 무안해하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10분 안에 문을 닫는다고 재촉이다. 시계를 보니 4시 50분이다. 원래 5시 반에 닫는 것 아니냐 물으니, 오늘은 좀 일찍 문을 닫는단다. 닫는 게 아니라 '닫고 싶다'겠지... 그러고는 눈치를 살피더니 네가 원하면 더 있어도 되고 라며 말끝을 흐린다. 닫은 매표소를 열고 들어온 사람이라는 게 떠올라, 무턱대고 나가라 했다가는 후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을 수도...^^ 아저씨는 보다시피 이곳에서 30분 동안 더 볼 것이 뭐가 있니, 그냥 좀 빨리 가자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아저씨 입장에서 보면 이제 더 올 사람도 없고 문 닫고 퇴근해야지 하던 참에 내가 뛰어든 것이다. 그러니까, 컴퓨터 끄고 퇴근하려는데 회의하자는 거였지... ^^ 그래, 일찍 나가주마 하며 나왔다. 괜히 발목만 모기에게 봉헌했다.



[노르만 궁전 왕실 정원. 왼쪽은 ficus나무 가지가 줄기로 변한 모습. 오늘쪽은 소나무와의 연리지 (인터넷 사진)] 

숙소로 돌아와 팜플렛을 찬찬히 보니 그들이 selling point로 내세우는 것은 ficus와 소나무의 연리지였다. 연리지라는 것을 알았다면 신기했을 텐데, 그것을 모르는 내 눈엔 그저 소나무가 가까이 있는 ficus에 말렸네 하는 정도로 보였다. 나중에 ficus라는 식물의 생장방식을 알고 나서 신기한 장면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나무는 다른 식물을 숙주로 삼는단다. 씨를 다른 식물에 틔워서 그 식물을 양분으로 삼아 자라고, 결국 숙주를 죽게 한단다. 동물성 식물... 가지가 늘어져 땅에 닿으면 줄기로 변한다는 것도 왠지 동물 방식의 영역 확장법 같고... 그런데 소나무가 살아남았으니 신기한 일인 것이었다. 혹시 사진이 있나 하고 보니 연리지는 안 찍고 다른 ficus 나무만 열심히 찍었다. 보기엔 정말 별로였다는 뜻이다.^^ 인터넷을 뒤졌더니 멋있는 사진이 하나 나온다. 역시 사진은 찍기 나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