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르모. 노르만궁전. 마케다 안뜰cortile maqueda]
[노르만궁전. 팔라티나 예배당 입구 팔레르모의 수호신genio di palermo을 형상화한 모자이크]
[팔레르모의 수호신genio di palermo의 전통적 이미지. 인터넷 사진]
전시장을 나와 계단을 오르니 3층 로지아로 에워싸인 안뜰cortile maqueda이 나오고, 로지아 2층 한 쪽 벽 윗부분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그곳이 팔라티나 예배당이다. 같은 모자이크 장식이지만 비잔틴 장인들이 만들었다는 아랍-노르만 스타일 모자이크와는 매우 이질적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화려한 외관이지만 유적의 명성에 비해서는 소박해 보인다. 이 예배당은 루제로 2세의 의뢰로 1130년 짓기 시작해서 1140년에 축성되었고 베드로에게 봉헌되었다고 한다. 예배당 입구 위의 모자이크는 팔레르모의 수호신genio di palermo를 형상화한 것이라는데 전통적 이미지와는 좀 거리가 있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처럼 호쾌하게 묘사했는데, 도시의 수호신이라는 인물의 기이하고 오종종한 이미지를 세탁하고 싶었을까?
예배당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모두 금줄 밖에서 고개를 젖히고 어딘가를 보고 사진을 찍으며 서성이고 있다. 다시 봐도 황금빛 배경의 모자이크화로 덮인 공간은 경이로울 뿐이다. 몬레알레 성당의 축소판 같은데 더 밝고 천정이 낮아 더 선명하게 보인다. 게다가 간간히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몬레알레에도 불빛이 있어야 했다. 빛을 받아 황금빛을 내뿜는 테세라 조각들... 지금은 안정적 조명이 비추지만 이 곳이 관광지가 아니라 일상 공간이던 시절에는 뭔가를 태워 빛을 냈을 테니 불빛이 일렁였을 테고, 일렁이는 불빛을 반사하는 이 공간은 얼마나 더 신비했을까... 이곳 모자이크는 몬레알레와 비슷한 장면도 많은데, 기본 철학(?)이 다르다고 한다. 이곳 모자이크는 예수와 베드로, 바오로의 삶을 표현하지만 예수의 수난과 처형, 성인들의 순교 장면 없이 그들의 승리를 부각하고 있고, 그 점이 몬레알레와 다르다고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몬레알레 대성당 중앙 앱스 양 쪽에 두 성인의 예배당이 있고, 성인의 적나라한 순교 장면과 성인에게 봉헌된 예배당의 제단이 동시에 보이도록 배치됐던 것은 기억난다. 이 곳에도 몬레알레처럼 중앙 앱스에는 판토크러터가 있고 양 쪽에 베드로와 바오로가 있지만 그들의 순교 장면은 없다. 판토크러터pantocrator 도상iconography이 여기저기 반복적으로 쓰인 것도 특이해 보인다.
[노르만 궁전. 팔라티나 예배당. 이슬람 스타일 기둥과 창들]
[노르만 궁전. 팔라티나 예배당 천정. 왼쪽은 네이브의 '무카르나스' 장식. 오른쪽은 아일 천정 장식]
네이브 천정은 무카르나스muqarnas라 불리는 이슬람 건축물 특유의 나무 조각으로 덮여 있다. 이슬람 건축물에 흔한 천정 장식이다. 기둥도 창의 무늬도 이슬람 스타일이다. 이슬람교 사원을 기독교 교회로 개조한 게 아니고 처음부터 이슬람 양식을 더해 교회를 지은 것이다. 예쁘고 좋으면 됐지, 어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스타일인지를 왜 따지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무카르나스의 무수한 면마다 각기 다른 그림이 그려있다. 눈이 좀 좋았으면, 시간이 많았으면, 자주 올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이 예배당에 라틴, 비잔틴, 아랍의 문화와 종교가 녹아있다고 한다. 노르만 왕조가 지배하던 시대가 수천 년 시칠리아 역사의 황금기로 꼽히는 까닭을 이 예배당이 보여주는 것 같다. 편견 없이 절대적 보편적 가치의 추구... 뭣이 중헌디... 길어졌다고 해야 고작 100년을 사는 인간이 눈앞의 이익을 버리고 자기가 존재하지 않을 먼 미래를 기약하는 가치를 좇으며 살 수 있을까? 그런 시대는 어쩌다 한 번 생기는 행운이나 기적 같은 것이 아닐까?
내 기억력이 picture memory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고개를 젖히고 보고 있는데 누군가 인사를 한다. 2주 전쯤에 시라쿠자 인형극장에서 만났던 프랑스 커플이다. 그들은 카타니아에서부터 나와 반대인 시계 방향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중인데, 팔레르모를 마지막으로 그들의 여행도 끝난다. 마지막 도시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이렇게 또 만나다니 즐거운 인연이 되었다. 만만치 않은 여정을 무사히 잘 마친 것을 축하해주고 싶다. 내가 팔레르모에서 며칠 있었던 것을 아는 그들이 이런 저런 여행 정보를 묻는데, 갑자기 기억하려니 갔던 곳의 이름이 도대체 떠오르지 않는다. 아... 이런 내가 당황스럽고 속상하다. 내일 몬레알레에 갈 예정이란다. 나도 또 갈 생각이라 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럼 몬레알레에서 또 만나자고 한다. 그들과 자꾸 조우하는 게 '프랑스 사람'하며 싸잡아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마음을 고쳐먹으라는 뜻 같다.^^
[노르만 궁전. 팔라티나 예배당. 설교단]
[노르만 궁전. 팔라티나 예배당. 촛대. 시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스타일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