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8/2020

시칠리아 여행: 23: 카타니아: 하루를 마치며...



사비아pasticceria savia가 오늘은 문을 열었다. 진열장에 여러 종류의 아란치노가 있었는데 모두 아란치’누’라고 쓰여있다. 지역마다 이름이 조금씩 다른가? 팔레르모에서는 아란치’나’ 라고 한다고 다비드가 알려줬었는데, 아란치누라고 하는 곳은 처음이다. 아마도 시칠리아 사투리 같다. 이탈리아 표준어에서는 ‘o’인데 ‘u’가 쓰인 걸 여러 번 봤다.




진열장을 서성이니 오래된 집답게 연륜 있어 보이는 직원이 자리 잡고 앉으면 와서 주문을 받는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카타니아 식 아란치누 카타네제를 시켰다. 파스타 알라 노르마의 주재료인 가지가 든 것이다. 파스타 알라 노르마는 아니라도 그 주 재료가 들어간 아란치노라도... 파스티체리아(이탈리아 제과점)이니 제대로 만들었을 것 같은 카놀로와 커피 그라니타도 시켰다. 카타니아에서의 마지막 저녁으로는 초라하고 조합도 이상하다. 관광객 세트... ^^ 그렇지만 왠지 카타니아와 어울리는 조합같기도 하다. 그런데 아침, 점심, 저녁이 모두 튀긴 음식이다. 건강한 식단이 그립다.

파올로가 카타니아 사람들은 그라니타와 브리오쉬를 아침으로도 먹고 점심으로도 먹고 간식으로도 먹고 저녁으로도 먹는다고 했지만, 난 끝까지 브리오쉬와 그라니타를 먹을 생각이 없다. 무심코 커피 그라니타를 먹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쓴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에도 설탕 두 봉지를 탈탈 털어 넣어 마신다. 그들에게 커피는 따뜻하든 차갑든 진하고 달아야 하는 것... 찬 음료를 그닥 즐기지 않지만 굳이 차가운, 그것도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그라니타를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아란치노는 명성만큼 맛있지는 않은데 맛있는 편이다. 본토에서는 먹을 때마다 너무 짜고 기름져서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시칠리아 아란치노는 간이 적당하고, 기름이 스며들지 않게 잘 튀겨서 간단히 한끼를 해결하기 좋다. 그래도 지금까지 최고의 아란치노는 시라쿠자 비올라의 시금치·치즈 아란치노였던 것 같다.

카놀로... 초코 크림으로 채운 카놀로와 리코타 크림으로 채운 카놀로가 있다는데, 이곳에서 처음 먹는 것이니 오리지널 리코타 크림을 시켰다. 접시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카놀로를 보고 먹을 엄두가 안 났다. 지금까지 먹어본 경험에 의하면 저 큰 것을 다 먹었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 제사 지내듯 한참을 쳐다보며 어디부터 먹을까 살피다 마음속으로 도전을 외치고 한 입 먹었다. 어라, 맛있는데... 엄청 달긴 한데, 맛있게 달다. 계속 왜 맛있지 하며 야금야금 먹다 보니 벌써 반이나 먹었다. 한 입만 더 먹어볼까 싶어 한 번 더 먹고 그러다 3분의 2나 먹었다. 빈 속에도 엄지손가락 만한 것을 다 못 먹었었는데, 이렇게 많이 먹다니. 이 맛에 카놀로를 먹나?

잘 만든 카놀로는 이렇게 먹을만한 것이었나 보다. 배가 부르지 않았다면 다 먹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무척 달긴 한데 절묘한 단맛. 맛있는 단맛과 먹으면 죽을 것 같은 단맛의 경계. 카놀로가 지켜야 하는 당도가 정해져 있지는 않겠지만, 시칠리아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는 달아야 카놀로지 하는 당도가 있지 않을까? 사비아를 아란치노 맛집이라고 하던데 나는 카놀로 맛집으로 올리고 싶다. 이곳에서도 그 맛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카놀로와는 영원한 이별이었을 텐데, 그 맛을 이해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카타니아를 용서할까 보다.

싫어하는 맛도 학습을 통해 익힌다고 한다. 내게는 단맛이 그랬다. 단 것을 먹기는 해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꿀도 너무 달아 싫었고, 식혜, 곶감 같은 것도 달아서 잘 먹지 않았었다. 미국 기숙사에서 살 던 시절. 뷔페 식 카페테리아에서 산더미처럼 먹고 나서도 또 주먹만한 케이크를 다 먹는 미국 애들이 놀라울 뿐이었다. 한 번 먹어본 바에 의하면 그들이 매일 후식으로 먹는 케이크는 너무 달아서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음식 같았다. 그래서 후식을 쳐다 보지도 않다가, 같은 밥값 내고 그 애들의 반도 못 먹는 게 아까워 조금씩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맛이 들렸고, 이제는 후식은 달아야지 하는 사람이 됐다. 그러니 지금 카놀로가 죽을 것처럼 달다 해도, 카놀로는 달아야 제 맛이지 하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카타니아. 바실리카 델라 콜레지아타basilica della collegiata]


배가 너무 부르니 사비아가 숙소에서 좀 먼 게 잘 됐다 싶다. 에트네아 거리를 따라 숙소로 돌아가는데 이번에는 왕실 예배당이었다는 바실리카 델라 꼴레지아타basilica della collegiata 문이 열려있다. 왠 일? 아무리 보겠다는 마음을 접었어도 열린 교회를 굳이 외면할 이유는 없다. 예쁜 교회다. 왕실의 예배당이었어서 그런지 유난히 문장 장식이 많다. 빛이 모자라, 숨까지 참으며 셔터를 눌러도 사진이 다 흔들린다. 또 한 바퀴 휙 둘러보고 나왔다.




계속 에트네아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사람들이 한쪽을 바라보며 웅성거리며 서있다. 17세기 대 지진 이후 격자형 도로 망으로 재건된 카타니아의 주요 도로는 동서와 남북으로 뚫려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뻥 뚫린 오르막 도로 끝에 동그란 해가 걸려있다. 매일 지는 해인데 수평선, 지평선, 산꼭대기, 건물 꼭대기 등등 온갖 스카이 라인에 걸린 것은 많이 봤어도 도시의 도로 끝에 걸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안녕, 오늘의 해님, 그리고 카타니아...




석양이 깃든 두오모 광장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다. 동서로 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거리도 서쪽 끝 건물과 건물 사이가 붉다. 낯선 석양 풍경이다.






[카타니아. 산타 아가타 수녀원 교회chiesa della badia di sant'agata]


산타 아가타 수녀원 교회chiesa della badia di sant'agata에서 꽃 장식이 나가고 있다. 장례식이 다 끝난 모양이다. 들어가서 봐도 되나 싶어 안을 살피니 이미 여러 사람이 사진을 찍으며 보고 있다. 나도 아까 눈으로 담았던 것들을 몇 장 찍었다. 각자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게 인간의 세상이지 하면서도, 아직 다 정리가 안돼 어수선한 장례식 장에서 지붕에 올라갈 수 있느냐는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지붕에서 보는 풍경이 좋다던데... 카타니아 3대 교회를 꼽으라면 이 교회를 꼽을 것 같다.








교회를 나와서 지금까지 시칠리아에서 내게 물을 가장 싼 값에 팔았던 담배가게에서 물 두 병을 사 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하루 종일 튀긴 것을 먹어서 그런지 아직도 속이 불편하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럴 리는 없다.

카타니아에서 마지막 밤. 왠지 끝내 낯을 익히지 못하고 떠나는 느낌. 어쩌면 조금 지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안녕, 카타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