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나왔다.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면 한 시 반 버스를 탈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냥 체팔루로 돌아가기는 뭔가 좀 아쉽다. 성 주위를 한 바퀴 돌고 골목을 걸으며 거리를 구경했다. 세월이 자연스럽게 내려앉은 모습... 너무 좋다. 시칠리아 마을 치고는 길이 무척 깨끗하다. 이 마을에서는 좁아서 차량 통행이 불가한 골목의 쓰레기를 여전히 당나귀로 수거한다고 한다. 환경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지만 그만큼 청소에 신경을 쓴다는 뜻이기도 하니, 마을이 깨끗한가 보다. 박물관에 있던 당나귀 그림에 이유가 있었던 걸까? ^^
광장 옆에 있는 교회chiesa matrice vecchia를 보려니, 결혼식이 있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결혼식... 다른 곳들의 문도 최근에 열린 적 없는 것처럼 굳게 닫혀있다. 점심을 먹으면 두 시 반 버스를 못 탈 것 같아 간단히 군것질을 하자 하며 전통 있다는 디저트 가게fiasconaro에 가니 그곳도 문을 닫았다. 마르게리타 광장piazza margherita에 바가 있는데 문을 열었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광장 테이블에 앉았다. 토요일이라 그런 건가... 인적도 뜸하고, 모든 것이 닫힌 느낌이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작은 마을의 전형적 분위기가 이런가 싶기도 하다. 팔라쫄로 아크레이데가 그랬고, 피아짜 아르메리나가 그랬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곳은 좀 느낌이 다르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지만 시선에서 호기심과 더불어 염려가 느껴진다고 할까... 저 사람은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됐을까, 혹시 도움이 필요하진 않을까, 우리 마을에서 잘 있다 가기를... 뭐 그런... 이방인이 우리 아파트 단지 주변을 기웃거리며 배회해도 같은 마음일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니 커피가 마시고 싶다. 과감히 시뇨레signore라고 외치니 서빙하는 아저씨가 온다. 난생처음 누군가를 그렇게 불러봤는데, 기분이 괜찮다.^^
계산을 마치고 바 청년에게 버스정류장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내린 곳과 멀지는 않지만 좀 다른 곳을 알려준다. 알려준 곳으로 갔더니 그곳엔 아무도 없고, 버스를 내렸던 곳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그들이 있는 곳이 맞을 것 같았고, 맞았다. 그 청년만 잘 모르는 건 아니다, 버스정류장에 대해 잘 모르는 시칠리아 사람 엄청 많은데, 그들은 절대 잘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
두 시 반 차로 돌아가는 길. 어떤 여자애가 뭐 때문인지 기사에게 이태리어를 야무지게 하며 타길래 시칠리아 사람인가 했더니 영어도 야무지게 한다. 미국인이다. 단일 민족임을 자랑하는, 섬 아닌 섬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다중 언어 환경에서 자라 편안히 여러 언어를 넘나드는 게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차에서 내내 졸다 보니 어느새 체팔루에 다 왔다. 너무 졸리다. 절경을 눈앞 두고 이렇게 졸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