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1/2020
시칠리아 여행: 22: 카타니아: 아침
21일째라고 생각했는데 22일째였다. 가장 여유 있는 아침이 아닌가 싶다. 드디어 마침내 여유로운 여행을 하게 된 것? 알 수 없다. ^^
숙소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캐나다 부부와 숙소 직원 로베르따와 한참 수다를 떨었다. 부부는 차를 빌려 여행하고 있는데 아그리젠토에서 주차장을 찾느라 두 시간을 헤맸다고 한다. 다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단다.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는 듯 보였다. 로베르따가 시칠리아의 경제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교사가 되는 학교를 다녔고, 그리스로 유학도 갔다 왔는데 B&B에서 일하는 것이 나이 스물 여덟에 처음 가져보는 직업이라며 시칠리아의 경제 상황을 개탄했다. 그리스는 경제난이 더 심해서, 쓰레기 통을 뒤지는 아이들을 보았단다. 그리스가 경제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는 엄청 들었지만, 아이들이 쓰레기 통을 뒤지는 상황이라니 충격이 온다. 그런 일은 6.25 전쟁 직후에나 있던 일이었고, 지금은 아프리카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라가 순식간에도 망하고, 망하면 국민의 삶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피부로 와닿는다. 경제는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이 언젠가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로베르타의 가족들은 그녀에게 미래를 위해 시칠리아를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살라고 한단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은 가족을 만난 일이라 가족을 두고 떠나고 싶지 않단다. 우리(? 나?)와는 다른 사고방식이나 정서가 아닌가 싶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떠나는 일은 많아도 가족이 떠나라고 하는 일은 잘 없지 않나? 더구나 딸에게...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이곳에 무슨 미래가 있냐고 이곳을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하던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19세기 말 20세기 초 대량으로 미국으로 이주했던 역사에 기반해 형성된 의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가족이라도 서로 독립적인 존재이고 독립적인 삶이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기에 할 수 있는 충고 같기도 하다. 아무튼...
로베르타의 말에 노부부 남편이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한다. 먹고 사는 것의 절박함을 토로하는 사람들 앞에서 인생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때로 그렇게 말할 자격을 획득한 사람들이 있다 싶어 그 말을 곱게 들었다. 노부부 남편이 이곳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끊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공감... 시칠리아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있다. 세대간 남녀간 계층간 단절이 없어 보인다. 격의 없이 어울리고 서로 포용하는 듯... 노부부도 그것을 느꼈고 그런 모습이 부러운 듯 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보이고 인생을 잘 살아냈다고 자부하는 사람 특유의 당당함이 느껴지지만 세대간 단절에서 오는 노년의 쓸쓸함과 씁쓸함은 피할 수 없는 듯 했다. 한국은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으니 캐나다와는 다르지 않느냐고 묻는다. 글쎄... 돈의 힘이 너무 세서 그 힘에 굴복하지 않는 사회는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오늘 이곳을 떠난다는 부부는 짐을 싸야 한다며 먼저 일어났다. 로베르따는 며칠 사이 정이 많이 들었는데 헤어져야 한다며 매번 사람들을 보내야 하는 이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학년이 바뀌거나 진학을 하면 함께 지냈던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지금은 누구든 아무렇지 않게 잘 보내고 잘 헤어진다. 언제부터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좋은 사람은 나와 시공간을 공유하기 보다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혹은 등대처럼 길잡이가 돼주거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불빛 같은 존재다. 마음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데... 물리적 거리는 아무 상관도 없다.
내가 여길 떠나면 너와 관계를 유지하려는 어떤 것도 하지 않겠지만 너의 따뜻함과 친절을 기억할 것이고 시칠리아에 친구가 한 명 있다고 느낄 것이라고, 혹시 한국에 올 일이 있으면 내 연락처를 이미 알고 있으니 연락하라고, 우리 집에서 머물러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