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2020

시칠리아 여행: 26: 체팔루: 도착 & 숙소





체팔루 역에 내리자 종려나무와 돌산이 눈에 띈다. 저 돌산이 그리스 도시국가 시절의 케팔로이이온kephaloidion이라는 이름이 기원한 바위라는 것을 알겠다. 케팔로스kephalos가 그리스어로 머리라는 뜻이란다. 알 수 없는 미소의 남자의 얼굴로 가득 채워진 박물관 포스터가 역에 붙어 있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유명한 초상화다. 그런 걸작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생뚱맞게 느껴지는 작은 박물관이 이 곳에 있다. 대부분 역은 도시 외곽에 있고, 주변 풍경은 삭막하기도 하고 어수선하다.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체팔루 역 주변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의 삶이 아름답기만 할 수 없다는 진리가 공간에 반영된 것이리라. 아직 시네마 천국의 낭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체팔루 기차역& 버스 정류장]

[체팔루. 도시의 이름이 유래했고, 도시의 풍경을 지배하는 돌산]


금요일 점심 시간. 학교가 끝나는 시간인지 쏟아져 나온 학생들, 부모들, 점심 먹으러 나온 사람들로 이 골목 저 골목이 북적인다. 복숭아 트럭이 있다. 배가 고파서 유난히 시선이 간다. 지도에서 초밥집을 발견했다. 가려던 길에서 살짝 비켜있지만, 그 정도면 가는 길에 있다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일단 먹고 숙소로 가기로 하고 그곳을 찾는데, 지도에 있다는 곳에 없다. 두 바퀴를 돌아도 없다. 어떤 아저씨가 이를 눈여겨보다 측은지심이 생겼나 보다. 어디를 찾느냐고 말을 붙여준다. 엉엉... 이곳을 찾는데 아무리 봐도 없다고 하니, 내가 체팔루를 좀 아는데, 아마도 저 골목을 돌면 있을 거라 한다. 좋은 화법이다. 나라면 저기 있어요 하고 끝이었을 것이다. 용건이 있을 때 내 화법은 대체로 도입 발단 전개 결말이 없다. 단도직입적, 용건만 간단히 이다. 그러다 이건 아니다 싶어 뒤늦게 도입을 맨 뒤에 붙일 때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화법이 구사되는지 궁금하다.




주인 아니면 매니저쯤으로 보이는 중국 여자가 간간히 아기를 돌보며 서빙을 한다. 괜히 마음이 간다. 이곳도 중국인이 운영하는 것 같은데, 다른 도시의 초밥집과 서비스 방식이 같다. all you can eat 메뉴가 있고, 음료와 후식은 제외되고, 그 밖에 제외되는 것은 표시되어 있다. 해물이 흔한 지역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비싸지 않고, 무엇보다 나는 찰진 쌀, 즉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무엇보다 좋다. 손님도 거의 현지인이고 사람도 꽤 많다. 지금 먹고 저녁에 또 먹기는 부담스러울 것 같아, 저녁까지 먹는다는 생각으로 양껏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중에 밥이 가장 찰졌다.^^ 먹고 나니 졸음이 밀려온다. 피로가 쌓이긴 쌓였나 보다. 절경을 눈 앞에 두고도 눈이 감기는데 탄수화물을 잔뜩 먹고 졸음이 오지 않을 리 없다.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고 일어났다.




조금 걸으니 골목 끝에 짙푸른 바다가 보이고 끝까지 가니 긴 바다라는 뜻의 룽고마레lungomare 해변이 나온다. 이름처럼 해변이 길게 펼쳐져 있다. 해변이 산맥에 감싸 안겨 있는 것 같다. 여름 해변 풍경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똑같은 파라솔이 설치된 구역이 있고, 그 구역 밖에는 각자 비치타월을 깔고 파라솔도 펼치고 해변을 즐기고 있다. 일상을 사는 사람들과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일상의 공간과 여가의 공간이 유난히 더 구분이 없어 보인다. 두 공간이 달라야 하는 양 구분지어 생각하게 된게 이상한 것인지도... 각자 저마다의 순간을 살고 있다. 바다 오른쪽으로 오렌지색 지붕의 건물들이 다닥다닥한 구시가지가 보이고 그 끝에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옛 항구 포르토 베끼오porto vecchio가 있다. 사진으로 하도 많이 봐서 한 눈에 알겠다. 비치 타월을 대여하는 사람이 호객을 한다. 이 배낭을 메고 돗자리 빌려 바닷가에 가겠냐고요...






[체팔루. 룽고마레lungomare]




숙소는 해변과 평행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via vittorio emanuele 끝에 있다. 그 길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옛 타운으로 변한다. 중세의 분위기라고 표현하는 분위기가 있다. 기원이 노르만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적이 이 도시에 많다고 한다. 이런 길에는 뭔가 묘한 느낌이 든다. 오랜 동안 축적된 기운이 서려있겠지 싶다. 길 입구에 있는 여행사 앞에 사장님 포스의 아저씨가 서있다. 잘됐다. 에올리에 섬들에 가는 투어가 있는지 물으니 마침 다음날 있다고 한다. 8시에 버스로 밀라쪼milazzo까지 가서 배로 갈아타고 리파리lipari 섬과 불카노vulcano 섬을 들러 오후 7시쯤 돌아온단다. 그럼 스트롬볼리stromboli화산은 가지 않는 것이냐 물으니, 가지 않는단다. 에올리에 제도에 가면 스트롬볼리 섬의 활화산을 꼭 보고 싶었다. 오며 가며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 별로 내키지 않는다. 간다면, 가야 할 것 같아서 가는 것이지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은 아니지 싶다.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을 하고 나왔는데 이미 결론은 난 것 같다.


[체팔루.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숙소]

[체팔루. 포르토 베끼오porto vecchio에서 본 숙소 건물]

[체팔루 숙소에서 본 풍경]

숙소의 위치는 더할 수 없이 좋다. 포르토 베끼오 바로 옆 바닷가에 있다. 수도원이었는데 더 이상 수도원으로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호텔로 개조한 것도 아니고, 수도원 시설 그대로 숙소로 운영하는 것 같다. booking.com으로 예약이 안돼서, 예약하느라 몇 번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 때마다 수녀원이라는데 계속 남자가 전화를 받아 조금 의아했는데, 와보니 수녀님이 접수를 받는다.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고, 원칙이 분명해 보이는, 흔히 깐깐하다고 하는 인상이다. 나는 남들이 깐깐하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별 거부감이 없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사람 보다 깐깐하다고 표현되는 사람을 오히려 선호한다. lee를 ‘리’라고 하니, 굳이 이탈리아 식으로 ‘레에’라고 발음한다. 표정은 엄한데 장난이라고 눈빛이 말하고 있다. 귀여우심... 수도원 숙박 시설에 묵었을 때 통금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 몇 시까지 들어와야 하냐 물으니, 그런 것 없단다. 실컷 놀고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오란다. 다만, 아침에 일찍 나가야 하면, 문을 열어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전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안나라는 내 또래의 여자를 불러 네 콤파녜라compagnera라며 방을 안내해주라고 한다. 안나는 체구도 나만한데 딱 봐도 익살꾼이다. 영어 하냐고 물으니, 조금 알아 듣는데 말은 하나도 못 한단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말이 안 나와 잘 할 수가 없다. 내가 이탈리아어를 잘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니, 아니라고 엄청 잘한다고 걱정 말라고 한다. 수도원 건물이라 정원을 지나고 계단을 오르고 몇 번 꺾어 방에 도착했다. 방향이 몇 번 바뀌면 내 머리 속에 방향은 하얗게 지워진다. 그런 표정이 읽히는지 아니면 다들 헷갈려 하는 건지, 경로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이야기해 준다.

방을 세 개 보여 주며 그 중에 고르란다. 지금까지 있던 방에 비하면 너무 좁고 낡고 소박해서 예의로라도 좋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순간 이런 방에서 어떻게 잘까 하는 심란함이 살짝 스치기도 했다. 바다와 마주보는 발코니가 끝에 있는 복도의 맨 끝 방을 선택했다. 안나가 떠나고 짐을 어떻게 풀까 궁리하며 살펴보니, 좁고 낡았어도 깨끗하고 있을 것은 다 있다. 3일은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창 밖에 바로 바다가 펼쳐져 있고, 방문을 열고 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가 있는 것으로 아쉬움을 보상하고도 남을 것 같다. 위치로는 5성급 호텔이다. 마음이 어느새 적응을 하는지 호사가 따로 없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