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2/2020

시칠리아 여행: 22: 카타니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거리 & 산타 아가타



숙소를 나서 성당으로 향했다. 내일 에트나에 여행을 안내해줄 여행사lemon tour가 숙소 근처 길 건너편에 보인다. 나오는 길에 로베르타에게 에트나 투어를 위해 준비해야 할 복장이나 장비가 있냐고 물으니 여행사에 알아봐주겠다고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여행사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줬었다. 여행사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주의 사항을 물으니 특별한 장비는 필요 없고 옷도 신발도 지금 차림으로 좋고, 바람이 셀 수 있으니 긴 팔 재킷 하나만 더 있으면 될 것 같다고 한다. 투어에 신청한 사람이 나 한 명이라고 들었는데 아직도 그러냐고 물으니, 아직은 그렇단다. 오케이...


[카타니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거리 풍경]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거리를 따라 걷는데 바로크 스타일 건물이 즐비하다. 버스 정류장에 버스의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이 있다. 감동이다. 시칠리아도 정보 통신 기술에 관심이 있구나, 카타니아가 대학 도시라 하더니 다르긴 다르네 하는 생각이 들며, 이 말에 또 시칠리아를 얕잡아 봤다고 트집잡는 놈이 있지 싶다. 만일 누군가 시비를 건다면 내가 여기에 오기까지 거쳐온, 아주 오랜 전통을 고수하는 버스 정류장 다 보고 와서 말하라 할 거다.^^


[카타니아 산 플라치도 교회]


오목한 정면과 철제 난간이 인상적인 산 플라치도 교회chiesa di san placido는 오늘도 여전히 닫혀 있다. 대성당의 11세기 오리지널 앱스를 볼 수 있다는 주교궁palazzo arcivescovile 표지판이 있다. 들어가니 육중한 성채 같은 앱스가 있다. 팔레르모나 몬레알레 대성당의 앱스와 디테일은 다르지만 기본 구조로 보아 동시대의 건축물임을 알겠다.


[카타니아 주교궁 마당에 있는 성당의 앱스]


[카타니아 산타 아가타 수녀원 교회]


길 건너에 산타 아가타 수녀원 교회chiesa della badia di sant'agata이 있다. 카타니아에서 유일하게 외관이 깨끗하다는 인상을 준 교회가 아닐까?

팔레르모가 산타 로잘리아의 도시이고 시라쿠자가 산타 루치아의 도시라면 카타니아는 산타 아가타의 도시다. 도시 곳곳에 그녀의 흔적이 있다.

산타 아가타(238(?)-251)는 카타니아 출신 기독교 성인이다. 겨우 열세 살 때 박해를 받고 순교했다 하는데, 그녀의 탄생한 연도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는 듯 하다. 여러 기록과 정황상 230년경 태어났다는 설이 있단다. 그래야 수없이 많은 성화와 작품에 표현된 그녀의 모습이 설명될 것 같다. 그녀의 박해에 관한 기괴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230년 탄생 설은 그녀가 성인 여성이어야 좀 더 센세이셔널 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몇 살에 박해를 당했든 아무튼 어린 그녀는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신앙을 부정하지 않았단다. 훼손된 그녀의 가슴은 그날 밤 산 피에트로의 환영이 나타나 치유했고, 다음날 원형 극장에서 거행된 화형식에서 불길은 그녀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고 게다가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모두 도망쳐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을 감옥으로 옮겨줄 것을 요청했고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그녀의 몸에는 어떤 손상도 없었다고 한다.

1040년 비잔틴 장군 죠르죠 마니아체giorgio maniace는 비잔틴 제국 황제 바실리오스 2세basil II를 위한 선물로, 800년이 지났어도 썩지 않고 아무런 손상없이 남아있는 그녀의 유해를 콘스탄티노플로 가져갔으나, 1126년 황실 호위병이었던 두 병사가 아가타의 계시로 다시 카타니아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몰래 가져오기 위해 800년 넘게 온전히 보존된 그녀의 유해를 조각냈단다. 이후에도 시신에 대한 사연은 끝나지 않는다. 이리 갔다 도난 당해 저리 갔다, 그래서 현재는 카타니아 성당에 주요(?) 부분이 있고, 또 여러 부분이 여기저기에 있다고 한다. 팔레르모 성당도 팔 한 쪽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녀의 순교 후 카타니아에 화산 폭발, 지진, 흑사병 등의 재난이 닥칠 때마다 그녀가 등장해서 사람들을 도왔단다. 그래서 그녀는 카타니아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되어 추앙 받고 있고 그녀의 축일에는 성대한 축제가 벌어진단다.

그녀가 어린 나이에 기독교 신앙을 지녔다는 이유로 모진 박해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끔찍하지만 그녀의 시신을 훔쳐서 전리품으로 어디다 갖다 바치고, 조각조각 나누어 갖고 하는 당시의 기독교 문화도 못지않게 끔찍하다.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다. 숭배 방식이 박해 못지않게 잔혹하고, 박해 못지않은 능욕 같다. 그런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은 사후에 자신의 시신이 그렇게 처리되는 것을 기꺼이 수락하며 영광으로 여길까? 아무튼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현재의 온갖 추앙을 받을 자격을 얻고도 남았지 싶다. 그리고 한편 그 모든 이야기는 추앙을 끌어내어 그녀의 예배당에 더 많은 것을 기부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을지 모른다는 불경한 생각도 든다.

산타 아가타 수녀원 교회의 문이 열려 있다. 역시 이곳 입구에도 일하러 나오신 분이 앉아서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손을 내민다. 어느 교회가 언제 문을 여는지 저분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이 교회에도 창 안쪽에서 노출되지 않으며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철제 장식이 있다. 외출이 허락되지 않는 수녀들이 축제 때 행렬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란다.

작은 교회는 문이 열려있을 때 무조건 봐야 한다는 교훈을 잊고 대성당으로 향했다. [오가는 길에 있으니 나중에 보자하고 지나쳤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못 보다 잠깐 내부만 둘러 봤는데 카타니아에서 손꼽을 만큼 예쁜 교회였다. 지붕 테라스에서 보는 전망이 좋다는데 못 봐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