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2020

시칠리아 여행: 27: 체팔루: 다시 체팔루...



체팔루에 도착해 점심 먹을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어제 지나치고 아쉬워했던 복숭아 트럭에서 복숭아를 사려 했는데 없다. 과일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싱싱해 보였었다. 호텔 방으로 먹을 것을, 더구나 먹을 때 끈적이는 과즙이 손에도 묻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질 수 있는 과일을 사 들고 들어가는 것은 좀처럼 하지 않는 짓이다. 그런데 이곳 숙소에서는 왠지 테라스에서 복숭아 정도는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걸어 내려오니 다른 과일 트럭이 있다. 천도복숭아와 그냥 복숭아가 있어 어느 것이 맛있냐 물으니, 그냥 복숭아가 맛있다고 한다. 한 바구니에 천도복숭아는 4유로, 그냥 복숭아는 3유로... 주저 없이 싼 것이 맛있단다. 그 솔직함이 복숭아만큼 신선하다. 사실 비싸도 덜 맛있다 해도 그냥 복숭아를 사고 싶었었다. ^^ 시장에 넘쳐나는 싱싱한 과일을 지나칠 때마다 안타까웠는데 오늘은 먹을 수 있다 생각하니 마냥 좋다. 들고 걷는데 복숭아 향이 비닐봉지 밖으로 진동한다.




점심을 먹으려는 식당bottega tivitti에 도착했다. 가이드 책에 나왔고 인터넷 평도 나쁘지 않았다. 좀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 했는데, 여직원이 무뚝뚝한 어조로 부엌을 10분 안에 닫아야 한다는 말로 눈치껏 잘 시키라고 압력을 행사한다. 다른 곳으로 가도 되는데, 또 새로운 곳을 찾을 에너지가 없다. 압력에 굴복해서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와 피스타치오가 든 파스타와 샐러드를 시켰다. 빨간 새우라는 뜻의 감베로 로쏘는 익숙한 단어인데 실제 새우의 한 종류인 줄은 몰랐다. 동명의 이탈리아 잡지가 있고 미쉘린처럼 맛을 평가한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프랑스에 미쉐린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감베로 로쏘가 있었다. 미쉘린은 별의 개수로 등급을 매기지만 감베로 로쏘는 포크(포르케따)로 등급을 매겼다. 포크가 많으면 맛 집. 미쉘린 별처럼 포크를 찾아다니기도 했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곳이 하나 있다. 로마에 있는 피자리움pizzarium이라는 피자집, 찾아보니 아직도 예전 자리에 있다. 아직도 그곳보다 더 맛있는 피자는 먹어보지 못했다. 아무튼...

감베로 로쏘가 든 파스타 맛은 나쁘지 않다. 감베로 로쏘가 열일 했다. 작은 칵테일 새우 크기에, 보통 새우보다 훨씬 붉고 꽃게 살에 가까운 질감이다. 맛과 향은 일반 새우보다 훨씬 풍부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맛있는 것의 대명사를 감베로 로쏘라고 하나보다 싶다. 재료가 좋으면 음식을 맛 없게 만들기가 더 어렵다. 샐러드도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 덕에 그럭저럭 먹었다.

음식은 좋다고는 할 수 없어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서비스가 형편없다. 유명세를 좀 부리는 것 같다. 인터넷 평을 악평 위주로 자세히 보니,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체중을 염두에 두지 않고 뭔가를 먹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마음 편히 맛있게 먹어도 되는 기회는 엄청 소중하다. 그런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기회를 망친 느낌... 어떻게 얻는 기회인데, 네가 그것을 망쳐! 라고 론리 플래닛에 말하고 싶은 기분... ^^ 시칠리아 편 론리 플래닛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outdated의 문제뿐 아니라 biased의 문제가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이 책에 기대 여행하는 사람의 필요나 취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현재로는 다른 source가 없으니 의지를 할 수 밖에...





숙소로 돌아오니 수녀님 대신 안나가 맞는다. 복숭아를 권했더니 사양한다. 그러다 어젯밤 귀찮아서 그냥 누군가의 등대가 되도록 놔두자 했던 화장실 전구가 생각났다. 이야기를 하려는데 갑자기 아무런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으악... 그렇다면 바디 랭귀지가 있다. 동작으로 설명했더니, 안나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내 동작을 이태리어로 번역한다. 들으면 알겠는데 왜 말로는 안 나올까? 아무튼 안나의 번역이 너무 정확해서, 나는 연신 si, si, si, si를 해댔다.^^ 안나가 전구를 찾아 같이 가자고 나선다.

이제 뭘 할 것이냐고 묻길래 로까에 갈 것이라 했더니 오늘은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내일 아침 일찍 햇볕 뜨겁기 전에 가라고 한다. 성당 키오스트로chiostro 토레torre는 봤냐 묻는다. 성당에 대한 자부심, 아니 자부심이라기 보다는 아끼는 마음이 느껴진다. 나와 인연이 닿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 자꾸 그 마음이 부럽다. 인연의 크기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고 나누어 분배해야 한다면, 이곳 사람들은 인연의 크기에 비례해 마음을 분배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