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2020

시칠리아 여행: 25: 타오르미나: 점심 & 빌라 코무날레 정원



점심


어제 점심을 먹었던 식당il ciclope에 다시 왔다. 어제 서빙을 했던 명랑한 아가씨가 또 왔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긴다. 이곳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 아니고는 모두 아는 사람인 것 같다. 나도 반갑다, 나도 사실 그런 사람이다.^^ 어제 메뉴에서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를 봐서,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시켰다.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정원giardini della villa comunale을 들러 이졸라 벨라 다녀오는 것으로 타오르미나 여행을 마무리하면 될 것 같다. 음식을 기다리며 내일 가는 체팔루 숙소 예약 확인 겸 도착을 알렸다. 이제 여행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저쪽 테이블에 한 무리의 미국 관광객들이 앉아 있었다. 내 옆 테이블에는 미국 커플이 와서 앉으며 채소 수프만 시킨다. 레스토랑에서 수프만 달랑시키는 건 좀 인상적이다.^^ 저쪽 테이블 사람들이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온다. 차림새만으로 나도 알아봤으니 저들도 그들이 동포임을 알아봤겠지... 서로 출신지를 묻는데, 내게 제 3의 고향이 있다면 그곳이라는 곳에 살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들려서 듣게 됐는데 나도 그곳에서 살았었다고 했더니, 살았던 곳을 묻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도로 이름도 생각나고, 옆 동네도 생각나고, 지하철역 이름도 생각나고 심지어 슈퍼 이름도 생각나는데, 타운 이름만 생각이 안 난다. 으악... 내가 띄엄띄엄 말한 지명을 듣고 브루클라인이냐고 묻는다. 맞다.^^ 어디에 사느냐고 물으니 락스베리에 산다고 한다. 험하다는 평이 있었던 동네다. 당시 부동산 붐으로 콘도가 지어지며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기는 했어도, 집을 구하며 그곳에 사는 동료에게 분위기를 물었더니 동양 여자가 혼자 살 동네는 아니라고 했었던 곳이다. 요즘 미국 여행프로그램을 보면 내가 살던 당시 가면 안 되는 곳으로 알려졌던 곳들이 힙한 곳으로 소개된다. 은퇴한 백인이 그곳에 산다는 걸 보면 락스베리도 많이 변했나 보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다. 다운타운을 거대한 공사장으로 만들었던 악명 높은 빅딕big dig 공사도 오래 전에 끝났단다.

부인이 내 별명을 듣더니 진짜 이름이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미국식 이름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미국이 네게 이름도 주었냐고 도발적 질문을 건넨다. 그래서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미국사람들 때문에 내가 만든 별명이라고 했더니,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진짜 이름을 묻는다. 그래서 알려줬더니 발음을 해보며 어떠냐고 묻는다. 당연히 엉망이지만 잘했다고 해줬더니, 보라고 잘하는 미국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귀여운 구석이 있다. 패키지 여행 중인데 남부 지역을 돌고 시칠리아로 왔다고 한다. 마테라가 좋았다고 꼭 가보라고 한다. 미국 사람만 20여명과 여행 중이란다. 백인만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전형적 양키의 향기가...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라 여행이 아주 즐겁단다. 익숙한 미국식 긍정 화법이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먹는 것에만 집중하는 남편에게 방해가 됐나 보다라고 했더니, 즐겁게 듣고 있다고 걱정 말란다. 말은 그렇게 해도 경계 분명한 사람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들어 나도 내 음식에 집중...^^

먹고 났더니 졸음이 밀려온다. 어제도 그리스 극장에서 넋 놓고 앉아있다 깜빡 졸아서 이러다 구른다, 정신 차리자 했었다. 내일 체팔루로 가서 3일을 보내고 팔레르모에서 3일을 보내면 집에 간다. 더 길게 잡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 시칠리아가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집에 가는 날이 기다려지는 것을 보면 충분히 여행한 것 같다. 날이 흐려지고 바람도 심상치 않다. 한동안 비를 잘 피했는데... 오늘 아침 일기예보는 맑음이었는데, 그 예보가 맞을 것 같지 않다.

악사들이 왔다. 좀 전부터 소리가 들려서 무심코 들었는데 이들이었나 보다. 왠지 모르겠지만, 내게 음악은 버스킹이 최고인 것 같다. 웬만한 오케스트라 연주보다 코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이 더 감동적이다. 음식을 혀로만 맛 보는 것이 아니듯, 음악도 귀로만 감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악사들이 식당을 떠나지 않는다. 안가고 계속 연주한다. 서빙하는 아가씨는 오늘 일찍 퇴근을 하나보다. 내게 특별히 와서 인사를 하고 간다. 마음이 예쁘다. 이틀 만에 아는 사람이 생긴 느낌... 시칠리아에서는 누구도 홀로 남겨지지 않고, 누구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다른 이탈리아 도시에 잠시 머물 때도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이탈리아를 더욱 좋아하는지도...





공원 Giardini della Villa Comunale


하늘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두고 나온 비옷을 챙기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숙소로 갔다. 간 김에 호스트가 혹시 있으면 택시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 물어보려 2층에 올라가 보니 호스트는 없고 손님만 있다. 혹시나 알려나 하고 그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알고 싶은 것이라고 한다. 호스트가 포르타 카타니아porta catania 밖에 택시 승강장이 있다고는 했단다. 아침에 봤던 택시 표지판이 있던 곳을 말하는 것 같다. 일단 방법 1을 획득해 저장했다. 비옷을 챙겨 공원giardini della villa comunale으로 갔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라고 한다. 도대체 누가 뭘 비교해서 순위를 매기는 것인지, 가장 아름다운, 가장 큰, 가장 오래된 등등 ‘가장’이 들어간 표현이 난무한다. 어떤 영국 여자 florence trevelyan가 만든 공원이란다. 여왕의 시종이었는데 왕세자와 스캔들로 미움을 사서 영국을 떠나야 했는데, 여행길에 시칠리아에 왔다가 부유한 집안의 의사와 결혼해서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공원에 들어서자 비가 쏟아진다. 비옷을 꺼내 입는 사이에 다 젖을 것 같아 마침 눈앞에 있는 정자로 일단 들어가니, 갑자기 만난 비에 어찌할 줄 모르고 대피해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비옷 꺼내 입고, 우산 쓰고 그들을 뒤로 하고 나오는데 왠지 미안하다.

이 빗속에서 웨딩 촬영 중인 커플이 있다. 같이 온 사람들이 신랑 신부에게 우산을 씌워 공원을 돌아다니며 꿋꿋하게 촬영 중이다. 모두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행복해 보인다. ‘일생에 한 번 밖에 없는’이라고 생각하는 이벤트에 날씨가 이렇게 궂어도 하나같이 표정 밝으니 보기 좋다. 드레스가 젖은 땅에 끌려 흙 좀 묻은들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이 호들갑이 없다. 의연해 보이기도 하고, 자연과 친해 보이기도 하고, 순응해야 할 것에 순응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들의 모습이 좋아보이지만 놀라울 만큼 낯설다. 왜 낯설까 생각해 보니,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신부는 짜증내고 신경질 부릴 모든 권리가 있고 주변 사람은 그런 신부에게 공감하고 위로하며 그 모든 부정적 감정을 받아 줄 의무가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거다. 성숙하지 못한 통념에 물들어 있었음을 확인... 비 오는 날에 찍은 사진에는 비 오는 풍경이 담기겠지. 젖은 머리카락과 빗물이 흐르는 얼굴, 흙투성이 드레스... 그리고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며 최대한 젖지 않게 도와주던 고마운 친구들, 그들과 즐겁게 사진을 찍었던 추억...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 찾을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






이국적이고 예쁜 식물이 많다. 내게는 이국적인 게 당연하겠지만, 시칠리아 사람들에게도 이국적이란다. 이곳을 만든 여사님의 취미가 정원 돌보기, 새 보기 등이었고, 이국적 식물을 많이 들여와서 가꾸었단다. 중간 중간 크기는 큰데 사람이 이용하기는 너무 허술해 보이는 구조물들이 있다. 그것들이 무엇일까 했는데, 새와 벌을 위한 시설이란다.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곳이 곳곳에 있어 이탈리아에서 최고로 아름답다고 꼽을 만한지 까지는 모르겠지만, 바다 풍경도 좋고 꽃도 나무도 예쁘고, 타오르미나의 인파를 피해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