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2/2020

시칠리아 여행: 29: 팔레르모: 피끼딘디아 fichi d'india



[팔레르모 골목길] 

짐을 내려놓고 가방을 챙겨 나왔다. 노르만 궁전으로 안내하는 구글 지도 경로를 살짝 비껴 카포 시장 쪽으로 갔다. 오늘 아니면 피끼딘디아를 먹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꼭 먹고 가려고... 


[팔레르모 카포 시장. 피끼딘디아] 

[팔레르모: 카포 시장. 피끼딘디아 깐 것] 


점심시간 무렵인데 시장 입구 과일 가판대가 아직 철수 전이고, 까놓은 피끼딘디아도 있다. 접시마다 색깔 구성이 달라 어떤 것이 맛있냐 물으니 다 똑같단다. 아그리젠또 아저씨는 더 맛있는 색이 있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되도록 양이 적어 보이는 것을 골랐다. 들고 걸으며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아 매대 한 귀퉁이에서 서서 먹고 가기로...

포장을 벗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입을 베어 물었다. 잉??? 맛이고 뭐고 일단, 씨가 입안에 가득하다. 큰 포도 씨만하고 단단해서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다. 아무도 씨가 이렇게 많다는 이야기는 안 했었다. 맛은? 건강한 것, 채소, 해초 같은 것 좋아하는 사람이면 먹을 만한 맛이랄까. 먹기에 고역스럽지 않은 맛...^^ 향은 약한 풋내 정도. 씨 뱉을 곳을 찾아 주변을 보니 과일 껍질이 담겨있는 상자가 보인다. 그 상자에 푸푸 씨를 뱉으며 먹고 있는데, 한 상인 아저씨가 ‘시뇨라, 시뇨라’ 하며 누구를 부른다. 그래서 보니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표정은 벌써 뭐 하는 짓이냐는 말을 하고 있다. 씨째 먹는 것이란다. 다 먹으면 씨는 다 어딘가로 나온단다. 이제 보니 오후라 한가했던 주변 상인들 모두 나를 유심히 보고 있다. 용감하게 나를 불렀던 상인은 말에 바디 랭귀지를 동반했기 때문에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못 알아 듣는 것이 불가능 했다. 그런데 못 알아들었는 줄 아는지 주인 허락도 없이 포장된 것을 뜯어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우물우물 다 삼키고 입을 아~ 벌리더니 혀를 쭉 빼고 자기 입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여준다. 참 나... 알았다고, 노력해보겠다고... 하지만 한 입 또 먹고 아무리 씨를 삼키려 해도 입안에 남는다. 내게 꽂힌 시선이 한두 개가 아니라 눈치가 보여 노력은 했으나 삼켜지지 않는다. 뭐, 내가 씨 좀 뱉었기로, 너희들이 뭘 어쩔 건데 하는 마음으로 그냥 뱉었다, 푸푸~ 아까 그 아저씨도 내가 피끼딘디아를 먹는 방식에 더는 참견하지 않았다.

총 다섯 개의 피끼딘디아 중에 두 개를 먹고 나니 누가 하나쯤 먹어주면 고마울 것 같다. 아직 시칠리아 햇빛을 덜 받아 하얗고 통통한 꼬맹이가 아까부터 옆에 앉아 햄과 치즈를 넣은 빠니니를 먹으며 슬쩍슬쩍 나를 보고 있었는데, 과일가게 주인을 똑 닮은 것이 아들로 보인다. 그래서 넌지시 너는 이거 좋아하냐 물었다. 좋아한다면 두 개쯤 넘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며 자기는 안 먹는단다. 서운한 대답이긴 했지만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만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진짜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 칼로리도 높지 않을 것 같아서, 씨만 뱉는 것도 뭐라 하는데 통째로 버리기 까지 하면 ‘시뇨라, 시뇨라’ 하며 따라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팔레르모 숙소 호스트가 그린 피끼딘디아] 

[피끼딘디아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 


먹는 내내 아그리젠토 콘코르디아 신전 앞에서 만났던 아저씨를 생각했다. 맛있다고 했잖아요... 선해 보이는 외모에 당했나? 아저씨네 마당에 있다고 했던 것을 먹었어야 했나? 진짜 달고 맛있는 피끼딘디아가 있기는 한 걸까? 발레리아는 고유한 맛이 있다고 했을 뿐 달다고 하지는 않았다. 아저씨에게는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사무치게 그리운 고향의 맛이라 무조건 달았던 걸까? 너무 그리웠던 걸 먹을 때 꿀맛이라고 하는 은유적 표현이었냐고요? 진실은 저 너머에…^^ 

그렇지만 다시 시칠리아에 간다면 혹시 어딘가에서 피끼딘디아를 발견한다면 또 먹을 것 같다. 누군가가 그렇게 사랑하는 맛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