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2020

시칠리아 여행: 25: 타오르미나: 카스텔몰라에서 타오르미나로 걷기



[카스텔몰라에서 타오르미나로 내려오며 본 풍경. 가운데 봉우리 위에 사라센 성이 있고, 그 뒤 왼쪽 낮은 봉우리 위에 그리스 극장이 있다]

[카스텔몰라 바위 밑 예배당]



카스텔몰라에서 걸어서 타오르미나로 내려왔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구글지도가 알려주는 걷기 경로는 차도 다니는 도로였다. 글쎄... 그동안 시칠리아 산기슭 동네를 다녀본 경험에 의하면 급경사를 피하려는 지그재 자동차 도로가 있고, 그 도로를 질러다닐 수 있는, 보행자를 위한 가파른 지름길 계단이 늘 있었다. 이곳에도 왠지 그런 길이 있을 것 같아 산기슭을 내려다 보니, 빠르게 산을 내려갈 수 있는, 주로 계단으로 된 길이 얼핏 보였다. 아니면 돌아오면 되지 하며 그 길에 들어섰는데, 그 길이 지름길이 맞았고 사람을 만나면 반가울 만큼 한적하고 감탄을 멈출 수 없는 풍경이 펼져졌다.


[타오르미나로 내려오는 길. 산 봉우리에 있는 마을이 카스텔몰라]


[타오르미나. 사라센 성castello saraceno]


풍경을 보며 걷고 싶어 걸어 내려오기로 하기도 했지만, 내려오는 길에 굴속에 만든 교회chiesa madonna della rocca와 사라센 성castello saraceno이 있다니 같이 보면 좋겠다 싶었다.

사라센 성은 입구까지 갔는데 잠겨 있다. 그리스 시대의 아크로폴리스 유적 위에 세워진 성인데, 비잔틴, 아랍, 노르만, 스페인 등 시대별 건축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 꼭대기에 아크로폴리스가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타오르미나. 바위의 마돈나 교회chiesa madonna della rocca]


굴 속에 만들었다는 교회로 향했다. 교회 진입로에 들어서자 지붕 너머로 십자가가 보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 해안선과 바다의 풍경이 탄성을 부른다. 교회는 17세기 말에 세워졌고 십자가는 18세기 흑사병을 무사히 넘긴 것을 감사하는 뜻으로 세운 것이란다. 어떤 아저씨가 타오르미나 최고의 풍경이라며 지나간다. 나도 완전 동감.

전체적으로 이 길에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좋다. 피끼딘디아와 다양한 꽃과 식물들도 볼 수 있고, 길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각도의 다양한 전망이 펼쳐진다. 그리스 극장은 저쪽 건너편 낮은 언덕 위에 있다. 그래서 내려오는 내내 다양한 각도의 그리스 극장 전경이 보인다. 교회를 지나서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위한 기도처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타오르미나로 내려오는 길에 본 그리스 극장]


시칠리아에서 걷기를 만끽하며 걸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차들이 많아서 매연도 심하고 소음도 심하다. 인도는 아주 좁거나 있어도 주차된 차들이 점령했다. 그러니 차가 오면 구석으로 비켜주거나 어떨 때는 비킬 공간이 없어 담벼락에 들러 붙거나 주차된 차 뒤로 피하거나 팔을 안으로 모으고 움츠려 피해야 할 때도 있다. 오래된 도시에서 오래된 지역만 다녀서 그럴 수도 있고, 또 시칠리아 사람들은 웬만하면 차를 타지 절대 걷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보행자에게 친절한 환경은 아니다. 흡연자들도 상쾌한 보행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다. 그리고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쓰레기는 거의 기본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니던 시절, 목장갑 끼고 집게 들고 쓰레기 줍는 봉사활동을 숱하게 다녔었다. 길바닥에 쓰레기를 버릴 수도 없거니와 버려진 쓰레기를 보면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되어버린 건 그 시절 덕분일 것 같다. 요즘 어린 아이들에게 집게를 들려 길바닥 쓰레기를 줍게 한다면 기겁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효과 좋은 교육이었고, 적어도 시칠리아에서는 필요한 교육으로 보인다. 아무튼 걷기 좋다는 느낌을 받은 곳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길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고, 걸으며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든다.




[타오르미나에서 카스텔몰라 올라 가는 길 입구. 카스텔몰라 가는 길에 바위의 마돈나 교회와 사라센 성이 있다]


가파른 길을 쭉 따라 내려오니 타오르미나다. 카스텔몰라와 타오르미나가 이렇게 이어져있다는 걸 느끼니, 훨씬 더 이 공간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지도로 백날 봐야 별 소용 없고, 차를 타고 다녀도 마찬가지인데, 걸으면 비로소 공간감이 생기고 방향이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