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가 숙소 앞에 내려줘서, 화장실도 갈 겸 숙소에 들어갔더니 로베르따가 아직 있다. 아침에 일찍 나와서 두세 시쯤 퇴근한단다. 페니켈라pennichella 하러 들어왔냐고 물어서, 그게 뭐냐고 하니까 시에스타의 시칠리아 사투리라고 한다. 에트나 감상을 물어준다. 누구랑 같이 다니는 건 싫으면서 또 적당히 일상을 나눌 사람은 좋다. 좋은 것만 취할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마음이 늘 생각을 따라주지는 않는다.
한숨 돌리고 서둘러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앞에 있는 산타 아가타 교회가 문을 열었지만 무슨 행사가 있는 분위기다. 차려 입은 사람들이 입구 주변 여기저기에 진을 쳤다. 가까이 가보니 장례식 분위기다. 입구에 망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다. 교회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장례식이냐 물으니 그렇단다. 교회 밖에 장례식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거나 침통해 보이는 사람은 없다. 모두 밝지는 않아도 특별할 것 없는 표정이다. 차림새도 예를 갖추었어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 옷차림만으로는 결혼식인지 장례식인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장례식이라고 관광객의 입장을 막지는 않는다. 산타 아기타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였다. 제단도 예쁘고 원형의 공간이라서 그런지, 거대한 샹들리에와 벽감의 대리석 조각상들이 더 돋보인다. 장식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섬세하고 품위가 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데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어 그냥 기억으로 남기기로 하고 나왔다. 아무리 관광객이지만 장례식까지 기웃거린 것은 너무했나 하다 생각해보니, 망자 입장에서 멀리서 온 이방인이 어쩌다 자신의 장례식에 오게 된 것을 반가워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부정한 영혼의 인간은 아니라는 자만심(?)도 있지만, 이승을 떠나는 날이라면 한 사람이라도 더 보고, 나눈다고 줄어드는 것도 아닌 마음을 한 조각이라도 더 나누고 떠나고 싶을 것 같다.
[카타니아: 가리발디 거리via giuseppe garibaldi에서 본 성당 정면]
성당의 지하 로마 목욕탕은 오늘도 문을 열지 않았다. 문을 여는 시간을 어젯밤에 성당 홈페이지에서 확인까지 했는데 안내도 없고 여전히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성당 옆 건물에 있는 박물관을 통해서 들어가는 거였다.] 성물 판매소에는 고약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고약했던 여자가 그대로 있다. 그 여자가 줄 수 있는 대답은 이미 알고있다. 포기... 성당을 나와서 산 베네데토 교회로 갔다.
산 베네데토 수녀원 교회도 문을 연다는 시간에 문을 열지 않았다. 나 말고도 주변에서 배회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니 나처럼 혹시 다른 입구가 있을까 하며 헤매는 것 같다. 수녀원과 아치로 연결된, 과거 수녀원 부속 건물이었던 현대 미술관에 가서 물어보니 모르겠다고 하며 산 니콜로 수도원monastero dei benedettini di san nicolò l'arena과 같은 기관에서 운영하니 그곳에 전화를 해보라고 한다. 그곳은 지금 대학 소속이라던데... 나 같으면 직접 전화를 해서 알아보고 알려주겠다 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한 때는 같은 기관의 건물이었고 바로 건너편에 있는데 건너편 사정을 어떻게 그렇게 모를 수 있을까 신기하다. 아무튼 전화까지 해보는 적극성을 발휘하며 이곳을 보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뭔가를 잘 안 보여 주는 도시는 처음인 것 같다. 아직 보여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개방한다는 말이나 말던가... 에트나 투어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그 동안 못 본 것을 좀 여유 있게 보게 될 줄 알았다. 허탕을 치고 지저분한 거리를 배회하게 되다 보니 또 심사가 꼬인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는 것 아닌가? 나빴던 첫인상이 조금 좋아지나 했는데 다시 제자리로 온 느낌. 더는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카타니아: 카타니아의 꽈뜨로 깐티 광장piazza dei quattro canti.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산 데메트리오 궁palazzo san demetrio. 1693년 지진 이후 최초로 복구가 승인되어 복구된 건물이라고... 1943년 폭격으로 무너졌지만 다시 원형대로 복구했다고 거리 표지판에 쓰여있다.]
[카타니아. 산 미켈레 교회]
남들이 괜히 카타니아에 별로 볼 게 없다고 하는 게 아니지 싶다. 그만하면 됐으니 미련을 버리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맛집에나 가자고... 카타니아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파스타 알라 노르마pasta alla norma를 먹을 생각이었는데 저녁시간은 한 시간이나 남았고, 늦은 점심으로 먹은 시칠리아나 반쪽이 아직도 뱃속에 그득하다. 온전한 끼니는 부담스럽고 어제 헛걸음한 사비아pasticceria savia에서 아란치노나 먹자 하고 에트네아 거리를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산 미켈레 교회chiesa di san michele ai minoriti 문이 열려있다. 마음을 접었더니... 들어가서 한 바퀴 휙 돌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