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산 쥬세페 카파소 교회chiesa di san giuseppe cafasso, 오른쪽은 은둔자들의 산 죠반니 교회chiesa di san giovanni degli eremiti]
산 쥬세페 카파소 교회 종탑에서 내려와서 숙소까지 꽤 먼 길을 어떤 경로로 갈까 생각하다 발라로 시장mercato di ballarò을 지나서 가면 재미있을 것 같다. 방향을 잡고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지도 없이 방향감각을 믿고 걷는데, 지옥을 제 발로 찾아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최근 날림으로 지은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부서지고 무너진 건물이 즐비하고,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낙서가 담벼락에 가득하다.
관광객은 한 명도 없다. 빈민가인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지역인지 모르겠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이렇다면 마음이 더 아플 것 같다. 길에 쓰레기며 오물이 난무한다. 안전하게 발 디딜 곳을 찾느라 계속 땅을 보게 된다. 악취로 마음껏 숨쉬기도 싫다. 팔레르모의 쓰레기는 전통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 어떤 이방인이 이곳 사람들이 쓰레기를 집 앞 길바닥에 버리는 것에 기겁을 했는데, 이런 행동이 지탄의 대상이 아니라 허용되는 분위기라 놀랐다는 이야기다. 쓰레기가 마차가 움직일 때 충격을 흡수해 승차감을 좋게 하기 때문이었다나 뭐라나... 하지만 지금은 그 시절이 아니잖아. 왜 제 집 앞을 쓰레기장으로 만드냐고? 드문드문 집 주변에서 목격되는 사람들이 관광지에서 만나는 말쑥하고 유쾌한 팔레르미탄들의 귀가 후 모습이라면, 상처를 받을 것 같다. 앞과 뒤가 너무 달라서... 이게 팔레르모의 민낯은 아니겠지?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뜻이겠지?
잘못된 곳에서 발동된 잘못된 자신감... 어쩌면 지도 없이 잘 찾아다니는 사람인 척 허세를 부려보고 싶었는지도... 위기감이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것... 아무래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켜고 걷는데 뭔가 이상하다. 벗어나지지가 않는다. 벗어나기는커녕 더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 지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팔레르모. 산 티콜로 교회chiesa di san nicolò. 왼쪽에 보이는 탑이 보기엔 높아 보이지 않는데, 올라가면 팔레르모 전경을 360도로 모두 볼 수 있다고... ]
발라로 시장이 맞는 것 같은데, 지난번 점심을 먹었던 그 시장 골목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나 밖에 없고 거친 사람들의 적나라하고 거친(?) 삶의 장소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무서워할까 말까 오락가락하던 마음은 무서워하지 말자로 결론이 난 것 같다. 세상 험해 보이는 분위기인데, 그렇다고 그들이 나를 범죄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은 내게 관심이 없고,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힐끗 보고 다시 시선을 돌려 제 볼일들을 본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 우범지대 라는 공식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이곳에서도 성립하지 않기를 바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팔레르모. 카르미네 마죠레 교회chiesa del carmine maggiore와 교회 앞 광장piazza carmine에 선 발라로 시장 풍경]
갑자기 발동된 객기 덕분에 본의 아니게 팔레르모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는 탑torre di san nicolò di bari도 보았고 카르미네 마죠레 교회chiesa del carmine maggiore도 보았고 팔레르모의 속살(?)을 보았다. 산 니콜로 탑은 13세기 망루로 지어졌다가 후에 교회의 종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마죠레 교회는 쇠락한 분위기 속 우뚝 솟은 타일 장식 돔과 돔을 받치는 원통형 기둥 위 조각 멋있다. 처음 보는 스타일이다. 유서 깊은 교회 같기는 한데 다 부서지고 문은 굳게 닫혀있고 교회 정면까지 상인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지금도 사용되는 교회일까 싶다. 이 일대가 발라로 시장mercato di ballarò이다. 예배 시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누군가 나타나서 굳게 닫힌 문을 열고 근처 상인들의 영혼을 위로할 지도...
[팔레르모. 예전 예수회 교회 카사 프로페사casa professa의 종탑이었다는 종탑. 이 건물 지하에 유태인 목욕탕 미크베mikve가 있단다]
휴대폰을 껐다 켜니 지도가 제대로 작동한다. 아무리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어도 껐다 켜는 게 주요 문제 해결 방법 중 하나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 마께다 거리로 나왔더니 한 달에 10유로인 TIM 서비스가 통화 무제한, 문자 무제한, 데이터 50기가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내가 산 서비스보다 엄청 싸다. 사진을 찍어 기록해둔다. 다시 오지 않을 건데, 무슨 소용이라고... 다시 오지 않겠다 했지만, 그건 생각일 뿐 마음은 언젠가 다시 올 꿍꿍이인 거다. 계약서에 도장 찍은 것도 아닌데, 오고 싶으면 다시 오면 되지... ^^
조금 걸으니 꽈뜨로 깐띠...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