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2020

시칠리아 여행: 25: 타오르미나: 일출 & 아침 산책





눈 뜨자마자 일출을 보러 나왔다. 해는 뜨지 않았어도 여명으로 충분히 밝다. 인파에 떠밀려 지나쳤던 움베르토 거리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유원지처럼 어수선하기만 했던 거리에 이렇게 고즈넉하고 순한 표정이 있었다니... 움베르토 거리 중간에 시계탑 아래로 아치 터널 형태의 옛 성문porta di mezzo이 있다.  이 터널을 통해 거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터널 안에 있는 성모자의 모자이크는 노르만 시대의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작품이란다.




4월 9일 광장piazza ix aprile. 광장 테라스에서 탁 트인 바다와 해안선이 보이고, 오른쪽을 보면 완만하게 솟은 에트나 화산이 있다. 산 위에 아직 달이 떠있다. 해안선에서 해가 솟을 것이라고 상상했었는데 왼쪽 언덕 부근이 붉은 여명으로 물들었다. 타오르미나가 시칠리아의 동해안에 있다고 모든 해안이 동쪽을 향하는 건 아니었다.^^




해가 언덕 위에서 올라 왔다, 선명한 동그란 모양으로. 광장에 나 말고도 몇 명 더 있다. 드론을 날리는 사람과 몇 커플. 그들도 일출을 보러 나온 모양이다. 이 새벽에 드론까지 날리며 일출을 찍겠다고? 나는 비교도 안될 만큼 사진에 진심인가 보다. 요즘 여행지 사진을 보면 어디서 찍으면 저런 풍경이 나올까 할 때가 있다. 드론 등 뭔가 특별한 장비나 특정한 장소에 대한 접근 권한(?)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각도... 자기중심적 인간이라 남이 뭘 하든 별 관심이 없는데, 이상한 데서 배가 아파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사진 찍기.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멋진 구도의 사진을 보면 어떻게 찍었지? 나는 왜 생각을 못 했지? 한다. 참 하찮고 쓸모없는 경쟁심... ^^ 

드론을 날려 보는 것. 생각해본 적 없는데, 못할 일로 단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해볼 생각이 없거나 못했던 것들에 대해 호기심... 며칠 전에는 뜬금없이 베스파가 타보고 싶어졌다. 사고하는 틀의 붕괴? 확장? 아무튼 여행의 선물일 수도...





광장 북쪽에는 교회chiesa di san giuseppe 가 있고 그 뒤에 돌산이 버티고 서있다. 동쪽에는 현재는 도서관이라는 옛 교회chiesa di sant'agostino, 서쪽에는 시계탑과 그 유명한 카페caffè wunderbar가 있다. 타오르미나를 방문한 셀럽 중 한 명인 윈스턴 처칠이 이곳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이곳을 어떻게 즐겼을까? 수행원 없이 단출하게 온 게 아니라면 이 고즈넉함은 절대 느끼지 못했을 거다.

커피를 정말 맛있게 마실 기회이지만 아직 문을 연 카페가 없다. 광장은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바쁘다. 광장을 청소하는 사람, 주변 가게들로 식재료를 나르는 사람, 지난밤에 비워진 병들을 수거 하는 요란한 소리, 정체 모를 뚝딱 소리. 하지만 어제 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장소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아침 먹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전에 한 바퀴 돌아 봐야겠다. 드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소 공격적으로 낮게 머리 위를 맴돌고 지나간다. 새총이 있었다면 확 쐈을 것 같다.^^ 저 드론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많이 찍혔을까?




골목길을 걸어 다녔다. 조용하고 한적하니, 드디어 이곳이 좋다. 시칠리아에서 이렇게 깨끗하고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처음이지 싶다. 가볍게 hang out 하기 딱 좋은 분위기. 이제서야 왜 사람들이 타오르미나, 타오르미나 하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타오르미나 시청]


움베르토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걸어 두오모 광장으로 갔다. 성당 맞은 편에 있는 시청 건물 벽에 다윗의 별 장식이 있다. 멀지 않은 카타니아 문porta catania 밖에 유대구역이 있었다는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타오르미나 두오모duomo di taormina]


타오르미나 두오모duomo di taormina은 두오모의 지위가 무색하게 작은 규모이지만 예쁘고 좋다. 13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불규칙한 모양과 크기의 돌로 쌓은 교회 벽이 모두 흉벽의 형태이다. 창문과 남쪽 현관에 현무암으로 테두리가 둘러져 있다. 타오르미나의 고유의 스타일이라더니 자꾸 눈에 띈다. 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규모는 작아도 품위와 역사가 느껴진다.
 



성당 앞 광장에 분수가 있는데, 분수 조각들이 인상적이다. 분수 꼭대기에 상체는 여자이고 하체는 황소인 괴물의 조각상이 있다. 타오르미나의 상징이란다.


[타오르미나. 포르타 카타니아]



움베르토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더 걸었다. 움베르토 거리의 끝을 알리는 카타니아 문porta catania이 있다. 문을 나와 뒤돌아 보니 현무암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문장이 보인다. 문장은 아라곤 가문의 것이라고 한다. 작은 광장이 있고 산 안토니오 교회chiesa sant'antonio가 있다. 14세기 교회인데, 1943년 공습을 당했단다. 안에 타오르미나 미니어처가 있다는데 문이 닫혔다. 교회 옆 택시 승강장. 대기중인 택시도 있고 표지판에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혹시 몰라 사진을 찍어 두고... 

광장에 있는 바luraleo bar가 문을 열어, 그곳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었다. 시칠리아를 이탈리아로 묶어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부분 바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거나 커피와 코르넷토라고 하는 크루아상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그러니 아침에 바는 무척 바쁘다. 아직 문을 연 곳이 몇 개 없어서 그런지 이곳 직원도 무지 정신 없어 보인다. 무표정하지만 분주히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손님들 말에 귀기울이며 챙길 것 다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살수록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 직원에게 그런 지혜가 느껴진다고 할까... 꼬맹이들이 제 몸집만한 가방을 메고 노란 스쿨버스를 탄다. 엄마가, 할아버지가 버스 타는 곳까지 같이 나왔다. 관광객을 걷어낸 도시의 모습은 이렇구나...

커피가 모자란다. cafe latte grande to go가 그립다. 익숙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는 걸 보니 집에 갈 때가 다가오고 있는 듯... 들어가서 씻고 카스텔몰라와 이졸라벨라를 다녀오는 것으로 타오르미나 여행을 마무리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