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2020

시칠리아 여행: 30: 팔레르모: 산타 카테리나 교회 Chiesa di Santa Caterina d'Alessandria



팔레르모를 떠나기 전에 꼭 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하나는 벨리니 광장 북쪽에 있는 교회였고, 다른 하나는 벨리니 광장과 이웃한 프레토리아 광장 동쪽에 있는 교회였다. 두 곳 모두 열 번은 지나쳤을 텐데 볼 때마다 문이 닫혀있었다. 한 번은 벨리니 광장 교회의 바로 옆 건물의 쪽문처럼 생긴 문으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길래 저기가 입구일까 하고 가봤더니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섰는데 제과점에 들어가려는 줄이라 해서 그냥 나왔었다.

벨리니 광장에 있는 교회는 산타 카테리나 교회chiesa di santa caterina d'alessandria. 한 안내서에는 나오지도 않았고 다른 안내서에는 나왔지만 특별한 평은 없었는데, 구글 지도에 달린 평과 사진이 엄청 좋아서 가보고 싶었다. 프레토리아 광장에 있는 교회는 이름도 모르지만 광장을 지날 때 마다 지붕에서 분수를 내려다 보는 사람들이 있어, 나도 올라가서 분수를 보고 싶은데 어떻게 올라갈까 매번 궁금했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저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팔레르모. 성당과 주교궁을 잇는 다리]


지자 궁전을 나와 시간을 보니 서둘러 가면 시에스타 전에 산타 카테리나 교회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세 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정신 없이 걷는데 골동품을 파는 골목이 있다. 지도를 보니 벼룩시장mercato delle pulci이라는데, 상설 시장 같은 느낌이다. 엉엉... 시간이 없다고... 그냥 지나쳐 노르만 궁 쪽으로 나왔다. 

별장이면 원래 집과 좀 떨어져야 하는 것 아냐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노르만 궁과 지자 궁은 가깝다. 1.5km. 노르만 궁에서부터 대성당을 지나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거리를 따라 걷는데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학교 끝나는 시간인지 청소년들도 다 거리로 몰려 나왔고, 강남역이나 명동 분위기다.


[팔레르모. 산타 카테리나 교회. 문 위 조각은 산타 카테리나santa caterina]

[산타 카테리나 교회. 정면 계단 오른쪽 아래에 있는 쪽문이 입구]


오늘은 교회 서쪽 문이 열려있다. 그런데 올라갔더니 금줄이 쳐 있다. 금줄 안쪽 안내원에게 문을 연 것이냐고 물으니, 열었다고, 저녁 여섯 시까지 연다고 말한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표는 안내서가 아니라 홈페이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걸 매번 까먹고 투덜거린다. 입구를 물으니 계단 아래 쪽문으로 들어가란다. 수도원의 비밀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제과점i segreti del chiostro 입구라고 알고 있던 곳이다. 쪽문 위 표지판에 입구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에 교회, 수도원, 제과점이라고 버젓이 써있다. 왜 이제야 저것이 보일까... 몇 계단을 오르니 이번엔 오른쪽을 가리키는 화살표 위엔 수도원과 교회라 써있고, 반대쪽 화살표 위에는 제과점이라고 쓰여 있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저것은 지난 번에 봤던 기억이 난다. 저 포스터에 쓰인 것 중에 내가 뜻을 모르는 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줄 서있는 사람에게 제과점 가는 줄이라는 말만 듣고 여기가 아닌가 보네, 나중에 다시 알아보자 하며 그냥 나왔었다. 눈을 뜨고 뭘 봤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다. 오늘도 긴 줄은 제과점 가는 줄이다. 줄을 지나쳐 올라가니 교회 매표소가 있다.




구글 지도에 달린 평과 사진이 엄청 좋아서 보고 싶기는 했어도 론리 플래닛이 소개하지 않은 곳이라 큰 기대가 없었는데, 들어가서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교회를 빼놓을 수 있지? 팔레르모 top 10을 꼽으라면 나는 당연히 이 교회를 꼽는다. [론리 플래닛이 이 교회를 소개하지 않았다고 내내 투덜거렸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유가 있었다. 2014년까지 봉쇄 수녀원이었다가 2017년부터 개방되었다고 한다. 책 출간 시점인 2017년 1월 이전에는 비공개였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에 출간된 책에는 이 교회의 내부 사진이 표지로 쓰였다. 론리 플래닛 시칠리아 편은 여전히 불만스럽지만, 이 교회를 소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억울한 누명이었다.] 색색깔 대리석을 오려 붙여 표현한 온갖 그림 패널로 벽이며 기둥을 다 덮었다. [이곳을 장식한 대리석 상감 기법은 마르미 미스키marmi mischi, 직역하면 mixed marbles 라고 불리는 바로크 스타일 장식 기법이다.] 이 기법 장식의 극치인 예수회 교회와 이곳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선택할 수 없을 것 같다. 너무 화려하고,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 착시 현상을 이용한 바로크 스타일 천장 프레스코화와 색색깔 대리석 장식, 수투코 장식, 대리석 조각 등 화려하기 그지없는 각 요소가 완벽하게 조화로워 보인다. 극도의 현란함에도 오히려 통일감이 느껴진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화려함이 극에 달하니 단정함과 맞닿나 보다. 눈이 닿는 곳마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이 광장에서 볼 것은 마르토라나 교회와 카탈도 교회가 다인 줄 알았는데 이 교회도 있었다.

14세기에 도미키코 수도회 소속 수녀원으로 설립되었는데 16세기에 대대적으로 재건축했고, 돔은 18세기에 추가되었고, 내부를 장식한 마르모 미스키 기법은 18세기 초 시칠리아에서 유행했던 스타일이란다. 오랜 시간동안 여러 부침을 겪고 현재 더는 수녀원으로 운영되지 않고 2017년부터 공개 문화유산으로서 교회로서 기능하고 있단다. 

산 카탈도와 마르토라나에 비해 역사에서 밀릴 뿐, 아름다움으로는 밀릴 수가 없다.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다. 일단 예쁜 건 알겠는데, 이 모든 장식에 의미가 있을 텐데, 의미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시선을 한 곳에 오래 둘 수 없고 어쩌면 누군가는 정신 사납다고 할 수 있는 이 공간에서 단순하고 정갈한 공간에서처럼 마음이 경건해진다. 교회를 만든 사람들의 마음과 정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질이 풍부하다고 모두 이런 교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도 또 이런 교회가 탄생할 수 있을까?


[안토넬로 가지니antonello gagini의 산타 카테리나santa caterina 조각]








수도원의 비밀들 i segreti del chiostro




나오는 길에 제과점i segreti del chiostro에서 점심 대신 시칠리아 마지막 카놀로를 먹고 가자 싶었다. 역시 교회 가는 줄은 없고 제과점 들어가는 줄만 길다. 이곳도 이름에서부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수도원의 비법으로 만든 단 것들임을 자랑한다. 요즘 디저트는 지나치게 모양에 치중한다 싶은데, 이곳 단 것들은 조금 투박해 보이고 그러니 오히려 전통이 있어 보인다. 먹어 보고 싶은 것은 많지만 정통 리코타 크림 카놀로를 선택했다. 그 자리에서 튜브 모양으로 튀긴 과자에 크림을 짜 넣어주고, 튜브 양쪽에 무엇을 붙여줄지 묻는다. 초코칩, 오렌지 필, 피스타치오, 알록달록한 스프링클 등을 선택할 수 있다. 내 선택은 언제나처럼 초코칩.^^ 

결국 금기였던 수도원의 비밀은 극강의 온갖 단 맛이었나 보다. ^^ 이곳 단 맛은 수용 가능한 한계를 훌쩍 넘었다. 카타니아 사비아에서 발견한 경계... 물론 사람마다 다를 거고, 내 경계가 사비아의 단맛과 우연히 일치했겠지... 아무튼 경계에 있는 단 맛은 달아 죽을 것 같은 위험 신호에도 불구하고 계속 먹게 했는데, 경계를 넘으니 빈속이었음에도 신호를 무시할 수 없다. 반쯤 먹고 버렸다. 에리체에서도 유명하다는 몇 개의 제과점이 수도원의 전통적 비법을 따른다고 자랑했고, 아그리젠토에서도 단 것으로 유명한 수도원이 있었던 걸 보면 수도원마다 대대로 전해지는 단 과자를 만드는 비법이 있었나 보다. 영화 속에서 악역을 담당하던 성직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두 턱에 배가 남산 만하고 커다란 보석이 박힌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은 터질 듯 살이 오른... 이런 비법이 남몰래 찌운 살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