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 철창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니 어제 본 것과 같은 디자인의 안내판이 있다. 윌리엄1세가 짓기 시작했고 그의 사망 전에 완공되긴 했으나, 그의 아들 윌리엄2세가 마지막 마무리를 해서 입구 아치에는 아들의 이름이 아라비아어의 초서체인 나스키naskhi체로 쓰여있단다. 궁전의 이름은 noble, splendid, glorious라는 의미의 알-아지즈al-aziz였지만 나중에 지자zisa로 불리게 되었단다. 궁전 1층 분수의 방은 이슬람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이완iwan 스타일의 공간이라고 한다. [이완은 방 한쪽이 열려 외부와 바로 연결되는 공간을 말한다고 한다.] 분수의 방 앞에 예전에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정사각형의 작은 연못이 있었고, 연못의 중앙에는 돔을 얹은 정사각형의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분수의 방에 있는 분수에서 나온 물이 연못으로 흐르고 정원으로 흘러 나가는 구조였나 보다. 이 분수 시설이 궁전과 정원의 온도를 주변보다 낮게 했단다. 에어컨 없던 시절 우리는 한 더위에 마당에 물 뿌리며 살았는데, 역시 왕실은 스케일이 달랐다. 정원에는 온갖 이국적인 과일, 꽃, 동물 등이 있었다고 한다. 코란에 표현된 천국을 궁전과 궁전을 에워싼 정원에 구현하려 한 것이란다. 그런데 노르만 왕조는 애석하게 오래 가지 못했고, 이 궁이 지어지고 100년도 안 되어 왕좌가 독일계 호헨슈타우펜 가문으로 넘어갔단다.
노르만 왕조 이후 이 궁전에 대해 몇 가지 사건만 알려져 있단다. 1400년경 마르틴martin 1세는 시칠리아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 분수 시설과 정원의 조각들을 가져가 바르셀로나 왕궁과 수도원 등을 장식했다고 하고, 그 후 몇 년 후에는 정원과 주변 땅이 보리 농사를 위해 임대 되었다고 한다. 1625년 팔레르모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는 격리된 사람의 물건을 보관하는 시설로 쓰였다고 한다. 이후 궁전의 포도 밭을 산 사람giovanni de sandoval에게 수리가 많이 필요한 궁전 건물을 덤으로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건물 정면에 그 가문의 문장이 붙어있게 되었단다. 궁전을 거저 얻은 새 주인은 폐허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나름 많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변형이 많았고 17세기 궁전의 전형적 특징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시칠리아 역사를 들으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적이 있을까?
그래도 복원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고, 아까 봤던 정원에 있던 오렌지와 석류 나무 등이 그 시절을 재현하려 심어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시간이 좀 지나서 많은 것들이 좀더 정비되면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다.
매표소 직원이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한다. 동양의 역사에 관심이 많단다. 한국 사람이 쓴 책을 읽었다는데 무슨 책인지 모르겠다. 중국어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종종 동양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 대항해 시대에 식민지 물색하려던 관심은 아닐 테고, 관심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후한 점수를 주게 된다. 정복할 의도 없이 다른 문화에 관심을 가질 만큼 열린 사람이 나쁠 수는 없다고 본다.^^ 분수의 방에 사람들이 많다. 다른 곳을 먼저 보고 나중에 보리라 하며 위로 올라갔다. 순서를 거스를 자유가 내게 없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처사였다.
2층은 이슬람 예술 박물관museo d'arte islamic.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이 전시돼있다. 지붕에 사용됐다는 암포라amphora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토기들이 어떻게 지붕에 사용됐다는 건지,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문과 창 위에 방의 천장 모서리에 무카르나스 장식이 남아있다. 팔라티나 예배당의 그림이 그려진 무카르나스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다. 이곳의 무카르나스에도 그런 그림이 있었다는 뜻인 건지... 토기 위에도 아랍어가 써있고, 청동 대야와 기타 용기에도 이슬람 무늬와 글자가 쓰여 있고, 나무 문짝, 창문 장식, 나무로 엮어 만든 가리개 등 모두 이슬람 스타일이다.
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 풍경이 좋다. 내려다 보니 중앙에 수로와 분수 시설이 있는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바로 건물 아래에는 연못과 정자가 있던 자리가 있다. 바닥을 유리로 덮어놓은 부분을 보니 안에 토기가 들어 있다. 저것이 지붕에 토기를 사용했다는 것과 관계가 있는 장면인 것 같은데 아직도 이해는 안 된다. 3층에 교회로 쓰였다는 넓은 공간이 있다. 궁전 뒤편이 보이는 창으로 보이는 산이 너무 좋다. 더 가까이 보고 싶어 안내원에게 물어 창에 가까이 가보니 창이 높아 더 잘 보이지 않는다. 안내원이 웃으며 안에서 더 잘 보인다고 한다. 누군가 펠레그리노 산monte pellegrino이냐고 물으니 쿠치오 산monte cuccio이라고 한다.
분수의 방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분수의 방을 보려고 했는데 바로 나가는 문과 연결된다. 지척에 분수의 방이 있지만 금줄이 있어 갈 수가 없다. 그들이 관람하라고 정해놓은 순서와 방향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에 아직 적응을 못하고 분수의 방을 감히 지나쳤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곳이 이곳의 하이라이트인데 그냥 갈 수는 없다. 누군가 있다면 말을 해볼 텐데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 이것 한 번 넘는 게 질서를 엄청 파괴하는 것은 아니리라... 과감히 금줄을 넘었는데 관리원이 나타났다. 화들짝 놀라서 다시 되넘어 돌아갔다. 엉엉... 내 꼴이 얼마나 웃겼을까... 관리원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저 방을 들어올 때 못 봐서 보고 싶다고 하니 금줄을 열어준다. 그래도 될 걸 왜 막냐고?^^
분수의 방. 다 벗겨져 얼룩처럼 남은 프레스코 벽화, 아치 천정에 그려진 조잡한 솜씨의 기독교 천정화, 한 번도 물이 흐른 적 없어 보이는 먼지투성이 수로, 개조하려다 중단된 모습인지 파내거나 부순 흔적... 다행히 파괴의 손길을 피해 남아있는 모자이크를 보니, 잘 보존되었더라면 참 아름다운 공간이었을 것 같다. 이렇게 귀한 문화유산도 지키지 못할 만큼 팍팍한 세월이 흘렀단 뜻이겠지...
동선을 정상적으로 따랐다면 북쪽으로 들어가서 남쪽으로 나오는 것인데, 금줄을 넘어서 다시 북쪽으로 나오게 됐다. 그런데 들어갈 때 보지 못했던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작은 교회cappella della s. s. trinità 가 있다. 아랍-노르만 양식 특유의 붉은 돔도 있고, 세월이 느껴진다. 교회에서 나온 사람이 내 앞에 있던 서양 커플에게 와보라 손짓을 하며 데리고 들어간다. 왠지 차 신호 대기 중에 나타나 유리창 닦아주고 돈 내놓으라는 경우를 당할 것 같은 느낌이라 따라 가볼까 하다 그만두었는데, 따라가서 그렇게 삥을 뜯길 걸 하고 나중에 후회했다. 빨간 돔이 예사롭지 않던데 싶어 찾아보니 유서 깊은 교회였다. 왕이 이곳에서 머물 때 가까이에서 예배를 보기 위해 마련한 예배당이라고 한다. 사진을 찾아보니 무카르나스로 주변이 장식된 돔이 있는 공간도 멋있고, 옥상에서 지자 궁이 멋있게 보였다.
노르만 왕들은 이 땅을 정복해 아랍 통치를 끝냈지만 그들의 문화에 취했던 것 같다, 궁전에 하렘도 있었다는 것으로 보면... 겉으로는 기독교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이슬람교도라는 오해(?)를 받았다 하는데 이 궁을 보니 아니 땐 굴뚝에서 나는 연기는 아닌 것 같다.
궁전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싶어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공터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동·바 형들 같은 청년들이 내게로 접근한다. 헐...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데 맞닥뜨리고 싶지는 않다. 가던 방향을 바꿔 걸었더니 따라오지는 않는데 낄낄거림이 들린다. 트라파니에서 만난 알레시오가 그랬다, 트라파니는 매우 안전하지만 팔레르모는 위험할 수 있다고. 너무 겁 없이 아무데나 막 가고 그러지 말자...^^